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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고스에 나온글
게시물ID : humorstory_1427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피머신
추천 : 3
조회수 : 4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9/15 22:06:46
우선 긴 글이고 유머글이 아닌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한번 읽어주시고 학교에대해 한번 생각해주세요.

[끝내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합니다. 이유는 한 가지!! 참고 학교를 더 다닐 이유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곳에 부모로서도 단호히 말리지 않는 타당한 이유를 쓰려고 합니다. 요즘 시대, 특히 고등학교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학교가 자식에게 왜 필요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격형성? 가치관정립? 전인교육의 산실? 밝은 미래? 인재육성? 알찬 실력? 듣기 좋은 문구는 식상한지 오래고 저는 사실 학교에게 아무것도 바란 것이 없었습니다. 명문고 타이틀? 유리한 대학 진학? 그런 욕구가 있다 해도 첨단고가 충족시켜줄 수는 없습니다. 

학교가 학교라서 맹목적으로 다녀야 했던 우리들 시절도 이제 지나갔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학교는 친구가 많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선생님들도 만날 수 있고 그러면 자연히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친구들 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생각할 것이니까요... 이도 저도 아니면 문제풀이에 능숙한 학생으로 길러줍니까? 

그건 분명 아닙니다. 학교에서 충분치 못해 학원으로 과외로 쉴 새 없이 돌려지는 아이들은 문만 열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 아이들의 웃음과 함성이 가득 찹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꾹 참고 학교 다니라고 날마다 날마다 새벽잠을 깨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즐겁진 않고 참고 견디는 시간이 1년 반이면 너무 길었습니다. 공부와 경쟁이 지나쳐 힘들어도 힘든 줄도 모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공부를 잘 하고 싶어도 마음만큼 되지 않아 ꡐ;내탓이다ꡑ; 제 가슴만 할퀴는 가엾은 아이들도 많습니다. 공부에 관심이 없어도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고등학생들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힘들어 죽고 싶은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어도 우리는 모릅니다. 왜냐면 고등학생에게 공부 외엔 다른 관심이 없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말도 않고 죽어버리는 소중한 아이들도 많아져서 우리들을 미치게 합니다. 

그래도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학생은 죽을 맛인데 보장도 못 받는 미래를 담보로 교실의 불빛은 시들 줄 모르고 창창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엄마로 또는 교사로 역량 없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는 바꾸거나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학교 그만 다니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너무 싫으면 부모도 싫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더 크게 아프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설득할 수도 없습니다. 대학이 능사가 아니고 끝도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저 목전의 목표만 생각하여 그것이 대학이라 한다면 더 짧게 준비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달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현실적인 목표와 미래를 열어주지 못해도 이상이나 꿈을 위한 특별한 만남이 가능한 곳이라고 줄기차게 믿어 왔습니다. 사제 간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상처도 주고 치유도 주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만 주는 일은 막아야 하고 막을 수 없으면 떠나야 합니다. 학생은 학교의 사실상 주인이지만 학교와 교사가 권력을 행사한다면 절대 약자이고 마니까요.

내 아이가 절대 약자로 얻는 것 없이 불행한 학교생활을 참고 견뎌야만 한다면 하루도 한 달도 너무 길기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학교란 것이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어서 천만 다행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떠나게 하지 말아주세요. 학교는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다양함을 존중해주시길 부탁합니다. 내 돈을 주고 물건을 사면서도 내 맘에 들지 않다고 입맛에 맞지 않다고 말하지 않고 자제하는 양식을 우리는 배워 알고 있습니다. 공산품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닌 바에야 한 사람도 똑같을 수 없으며 미숙하기까지 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어찌 그리 간단하게 하시려합니까. 

내가 바라는 학생상이 수월내기가 아니라면 내 맘에 맞는 학생으로 획일화 시키려는 것은 불가능하며 더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 내 아이도 사실은 두발규정 때문에 학교를 기피하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른 이유 없이 (학교폭력,따돌림,무단결석,도벽,부정행위,음주흡연등등 생활지도가 요구되는 사례) 머리카락이 길어서 복장이 남달라서 요주의 학생이다! 라는 편견에 대해 자유로운 교사가 얼마나 될까요. 

더 이상의 학생이 시시한 학교두발규정 따위가 근원이 되어 학교를 떠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두발과 복장에 대한 규정은 반드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하게 해야 합니다. 상명하달이 아니고 지시가 아닌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게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머리모양을 통제하고 머리카락 길이와 구렛나루 길이로 편견을 갖고 속단하고 모욕주어 아이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학교가 또 어느 사회에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 사회도 달라져야합니다. 

학생들과의 마찰을 우려해 교육부는 학교장 재량으로 학생 참여 방식의 규정을 권고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학교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학생들 머리 길이를 단속하여 학교 문제를 줄일 수 있으며 기성세대 감각으로 아이들 머리스타일을 획일화시킨들 교육의 질이 높아집니까. 그저 말 잘 듣는 아이들이 이 시대를 이끌어갈 역량을 가졌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인격도 있고 개성도 있고 저마다 색깔도 있습니다. 사람이니까 사람에게 존중도 받고 싶은 아이들에게 공감할 수 없는 맹목적 단속은 오히려 교사의 가르침과 권위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머리 길이는 학생을 판단 할 객관적 기준이 절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아이가 학교 구성원으로 있을 때 학교 체질 변화를 위한 시도를 하지 못했음을 비겁했다 고백합니다. 그것은 자식을 둔 어미로 아이의 불리한 입장이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약자인 아들을 약자로 만든 못난 어미가 마지막 꿈틀거리는 몸부림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교사와 아이들이 쓸데없는 규정으로 분리되어 서로를 유린하는 소모적 행태를 막고자 합니다. 입시를 앞둔 학생이라도 거울을 봅니다. 고등학생도 사람이니까 생각도 하고 밥도 먹습니다. 입에 맞는 음식을 고르듯 마음에 맞는 옷도 헤어스타일도 나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실천하는 아이가 되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면서 하찮은 복장과 두발의 길이나 모양에 어찌 그리 집요하게 집착하시는지요. 저도 교사입니다. 학기 초나 방학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의 머리를 사생결단의 의지로 단속하느라 교사는 60년대 장발 단속하는 허접한 경찰꼬라지가 되고 맙니다. 사명감으로 단속하는 교사도 있지만 많은 교사는 불필요한 단속에 의한 학생들과의 괴리로 고심하거나 당위성을 못 느껴 모른척하기도 합니다.

두발과 복장을 자율화시키면 당분간은 통제당한 여한을 푸느라 정신없을 겁니다. 혹자는 잠시의 부작용을 참지 못하여 자율화를 요구한 식견을 비난하는 일도 비일비재 할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학생들도 자기가 좋은 대로 자기가 편한 대로 표현에 대한 자정이 있을 터인데 조급한 기우와 삼류 볼품없는 의식은 우리 아이들을 아직도 식민지 잔재 하에 허덕이게 합니다. 두발 단속으로 생기는 편견도 줄이고 선입견 없는 교사의 순수한 열정은 아이들에 대한 긍정적 대화로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 학교는 단속 외엔 목표를 잃어버린 느낌도 지울 수 없게 했습니다. 우리 소중한 아이들을 지도하는 학교는 일본 식민지하에서 비롯된 학교 두발 규정을 백년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청산하지 못해 무비판적인 단속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삼년도 안 된 학교가 백년 된 무가치한 문화를 따르는데 우리는 ꡒ;옳지 않다ꡓ; 말도 못했습니다. 자퇴를 결정하면서 비로소 학교 안의 큰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여 상심할 또 다른 내 아들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싶어 하찮은 두발규정으로 말이 길어졌습니다. 교사는 실력보다 이해심이 많아야 합니다. 좀 더 많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아이들이 어떻다고 비난하기 쉽지만 요즘아이도 옛날 아이도 잦은 비난을 받으면 비난에 익숙해지는 법입니다. 비난을 가르치지 말아주세요. 존중해 주는 것이 존중 하는 법을 가르치는 길입니다. 

아이들이 교사를 따르고 존중할 바탕을 만들어 주십시오. 존중해야 된다고 훈시해서 존중 받는 것이 어디 존중입니까. 존경하는 선생님도 있고 존경되지 않는 선생님도 우리 곁엔 많습니다. 존경하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존경하는 선생님이란 ! 나이도 직위도 뛰어난 실력도 아니랍니다. 공감해주는 선생님, 이해를 잘해주시는 선생님 ! 사랑이 있는 선생님 ! 그런 선생님의 사소한 말 한마디로 아이들이 길을 찾고 오랫동안 받은 감동을 못 잊는 것이 사제 간의 정입니다. 천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와 사랑 없이는 어떤 교육도 공(空)입니다. 지식전달만이 교육은 아니니까요. 

지적과 핀잔과 비판과 독설, 그리고 폭언과 폭력으로 아이들을 다스리면 아이들은 불신과 배타로 되돌려줍니다. 교사는 학창시절 대부분 모범생이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ꡐ;모범생ꡑ;이란 본받아 배울만한 학생이란 뜻입니다. 교사의 소싯적 경험이 기준이 되고 모범생이 기준이 되어 가르치는 학생이 거기에 미치지 않아 미움을 사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자괴감에 시달려야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혹자가 모범생보다 문제 학생이었던 사람이 교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을 할 때 흘려들을 수 없었습니다. 내 경험과 기준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부족한 아이들은 불쌍하고 교사는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가르침을 받을 대상이고 교사는 가르침을 줘야하는 대상이니까요. 

성적 2%의 아이가 1%에 들지 않아 자살을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50%의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고 자긍심을 표현하는 나라가 또 있습니다. 우리는 전교 2등이 1등이 아니라고 죽음을 선택하는 나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판단력이 미숙한 것이 아니고 100등도 200등도 정말 잘한 것이라고 칭찬 한번 하지 않은 무지막지한 우리 사회 탓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쟁심을 조장했던 몰지각한 어른들 때문입니다. 얼굴이 모두 다 다르듯이 잘하는 것도 다르고 하고 싶은 것도 모두 다른 우리 아이들을 상대로 존중만 받고 싶은 어른들은 평균 점수로 서열을 만들어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ꡒ;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ꡓ; 친구를 상대로 치열하게 경쟁하여 우위를 점하라고 강요합니다. 어른이니까 되지 않는 존경까지 강요받는 우리아이들이 다시 어른이 되어 같은 우를 범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모범생을 ꡐ;범생ꡑ;이라 비꼬는 아이들 세대와 모범생이 아니면 존중 못 받아도 싸다는 당연한 학교풍토에서 1학년과 2학년 1학기를 견딘 우리 아들은 참말 장합니다. 내 아들은 교복도 줄이고 머리까지 길고 싶어 안달이었으며 지나친 두발단속에 승복할 수 없어 고민이 많은 아이였지 결코 절대로 절대로 나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도 첨단고에서 세분이나 세면서도 학교에 미련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네 꿈이 무엇이냐 물어주는 선생님은 찾기 어렵고 하루에도 세 번씩 네 번씩 머리 잘라라. 잘랐어도 더잘라라. 더잘라라. 규정에 안어긋나요! 그래? 그래도 더잘라라. 선생님들은 머리밖에 안보이나봐! 백번도 천번도 머리 잘라라. 잘라라. 잘라라. 그러다 학교 다니겠다는 마음이 싹둑 잘리고 학교에서는 희망도 싹둑 잘리고 학교를 떠나며 한 가닥 미련도 싹둑 잘리고... 말았답니다. 

여담입니다. 한 일 년 쯤 된 일입니다. ꡒ;우리 아들은 그림을 잘 그려요ꡓ; ꡒ;그래요? 금시초문이네요. 정말인가요?ꡓ; 6개월이 지나서 학부모가 하는 말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반응이었습니다. 보충수업 자율학습을 빠지려는 핑계로 의심을 감추지 않는 용기에 저는 놀랐습니다. 그렇구나. 정말 머리밖엔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웃음은 나왔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별 기대도 없었으니까..요. 이제 그만 다니겠다고 합니다. ꡒ;그래 오래 참았다ꡓ;. ꡒ;그래 그만 다니자ꡓ; 이것은 허락이 아닙니다. 허탈하고 부끄러운 포기입니다. 학교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떠나고 싶은 아이에게 학교에 근무하는 엄마라는 사람이 포기를 가르치고 말았습니다. 

절반은 나의 잘못이고 절반은 학교의 잘못입니다. 나의 잘못은 학교 밖에서 더 좋은 길을 찾도록 도움으로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절반의 책임은 학교에 묻겠습니다. 함부로 아이들에게 기득권자로 군림하고 싶거든 뜻도 없고 정신도 없는 그 남루한 교사의 복장을 벗어야합니다. 허울 좋은 학교의 위상은 없어져도 괜찮습니다. 이런 결정의 댓가로 첨단고, 또 다른 사랑하는 내 아들과 딸들에게 함께 나누고 같이 변화시키고 같이 마치지 못했던 이유로 나는 고요히 돌을 맞아도 좋고 단 하나의 미련마저 털어 내버리게 도와준 첨단고등학교에는 내 분의 해소가 아닌 맹세코 남겨진 학생들을 위하여 돌이라도 힘껏 내 던지며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변화하지 않으면 더 많은 아이들이 불합리함으로 얻은 통증에 눈 감고 입 다물고 한없이 상처만 깊어질 거라고.. 치유 없는 상처로 아이들이 자꾸만 자꾸만 학교도 떠나고 세상도 떠나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것은 결국 학생들만의 상처는 분명 아닙니다. 차마 돌 대신 결연한 심정 담아 띄운 글에 경솔한 평가도 삼가 해 주시고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다만 잠시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어찌 죽음만이 우리가 충격 받을 중대한 사건이라 말하겠습니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의 죽음의 결심도 학생들을 더 이해해 줄 계기가 되지 못하는데 별 볼일 없는 놈의 자퇴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만 심지가 굳건한 아이의 건조한 자퇴도 죽음과 같은 아우성으로 여겨주시고 남은 학생들에게 따뜻한 이해와 사랑으로 갚아 주시면 바램이 없겠습니다. 

자기 성찰은 잘 안되시는 절대적인 기여자 교감선생님도 정독해 주세요. 다시는 함부로 말하는 습관으로 아이들을 상처 주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바람대로 xx이 학교를 떠납니다. 무수한 교감 선생님의 독설에 비굴하게 굴복하는 학생이 아니어서 불쾌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보충수업 안하려면 전학가라. 학교규정 안 지키려면 전학가라. 현실적으로 전학 가는 방법이 없는 아이에게 틈만 나면 하셨던 협박에도 비중 두지 않는 눈치여서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허술한 교육관으로 받은 xx이의 작은 상처도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어미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어야 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존중을 요구하셨지만 그런 욕구가 강하다고 존중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고 자신의 상처만 깊어지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스스로 가한 상처는 어김없이 만만한 학생들에게 풀어 내지 않으셨습니까. 토요일 아침 오랜 시간 선생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 자신의 실수는 덮거나 축소시키고 학생 앞에서 학생의 아버지를 과장 날조하여 비난하는 무모함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사들 앞에서 아이를 상대로 아이의 아버지까지 모욕하는 당신이 얻는 건 무엇입니까? 직책의 견고성이나 상향이동입니까? 오랜 교직경력에 축적된 노하우를 평교사들에게 과시하고 싶으셨습니까? 아니면 교사들과 똘똘 뭉쳐 아이를 따돌리고 싶으셨습니까? 아님 스트레스 풀었습니까? 자식 앞에서 아비를 모욕하면서도 예의를 따지고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훈계를 할 수 있는 교사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강자의 횡포가 심한 선생님이 계시는 한 첨단고의 한계를 약자가 된 아이는 극복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계시는 한 힘들게 인내하며 끝까지 첨단고를 다닐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내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두고두고 몸소 단속해주시겠단 협박 아닌 협박을 xx이가 자퇴로 거절한답니다.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친절해지셔야겠습니다. 교사답지 못한 단속으로 갖는 아이들의 반감을 짐작하셨을 테니까요. 다시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각오만 새로워지셔도 명예를 존중하는 (하하) 첨단고를 내 아들이 떠나는 것은 남은 아이들에겐 나름의 의미도 되지 않겠습니까!!! 

학교를 책임지신 교장선생님 ! 조금 더 아이들을 위한 학교풍토 조성에 심열을 가지셔야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즐거운 학교를 다닐 수는 없더라도 교사의 권위에 제압되어 굴복하는 것부터 가르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도 귀 기울이고 주장도 주의 깊게 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일어서려 할때 일으켜 세워 줘야 할 스승이 행여 부지불식간 번번이 주저앉히는 꼴이 되고 있지 않은지 돌이키고 또 돌이켜야한다고 수없이 환기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좋은 관리자를 운운하라 한다면 학생과 교사에게 군림하려 들지 않고 덕으로만 자신과 주변을 다스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아이들을 더 이해하는 교사가 되라고 끊임없이 독려해 주시는 교장 선생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올 해 첨단고는 유난히 큰 상처가 겹치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사랑하는 아이들의 불행한 소식을 듣지 않도록 남이 아닌 나를 탓하고 강자가 더 노력하는 모범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홈피관리담당 선생님 ! 실명으로 당당하게 올리는 글, 삭제하시지 마세요. 적어도 향후 일 년은 첨단고의 토양에 티끌만한 자양분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삭제하시면 더욱 단호하게 수정하여 보다 많은 교육자의 귀감이 되게 하겠습니다. 2007년 9월1일 xx엄마 ooo씁니다


출처는 네이트

현고등학교 재학중인 학생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그저 말 잘 듣는 아이들이 이 시대를 이끌어갈 역량을 가졌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인격도 있고 개성도 있고 저마다 색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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