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잘못 파악한 겁니다." 최외출 영남대 국제협력 부총장(사진)의 첫 마디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조국을 만드세." 소문대로 최 부총장의 휴대폰 통화 연결음은 '새마을 노래'였다. 아이들이 부른 버전이었다.
6월7일 머니투데이는 1면 톱기사로 "최외출 '지역위원장', 제2 새마을운동 시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에 최외출 영남대 지역 및 복지행정학과 교수가 내정되었으며, 6월 말께 공식 발표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또 "안전행정부는 지역상생협의체 신설, 지역발전협의회(가칭 새마을운동본부)를 구성해 세부 실천전략의 수립 및 추진·점검에 나서며, 국토부는 도심 재생사업, 산업부는 지역 연고 자원의 산업화 등을 추진하는 한편, 총리실과 기획재정부는 새마을운동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집중할 예정"이라며 "이와 같은 내용으로 하는 '제2 새마을운동 추진방안'을 최근 안행부와 산업부,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가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에게 보고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지역발전위원회 내정설이 보도된 최외출 영남대 국제협력 부총장. |경향자료 사진하지만 6월10일 < 주간경향 > 과 통화한 최 부총장은 "영남대 박정희리더십연구원 원장 자격으로 '새마을운동의 현재'에 대해 말하라면 또 모르겠지만, 정부가 어떤 분야에 어떤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튿날 대구시에서 열린 새누리당 경상북도 도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 앞서 지역 기자들을 만난 최 부총장은 다시 "학교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고"라며 '지역발전위원장 내정설'을 부인했다.
지역발전위원장 내정 보도 "사실 아니다"
최 부총장의 행적이 주목되는 까닭은 그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로 끊임없이 거론되어 왔기 때문이다. 최 부총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영남대 지역사회개발학과에 '새마을장학생 1기'로 입학했다. 그와 박근혜 대통령이 첫 인연을 맺은 시기는 1970년대 말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이 새마음봉사단(나중에 '구국여성봉사단'으로 개칭) 명예총재 자격으로 전국 순회강연을 하던 때다. 최 부총장은 1998년 박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하자 나중에 입법보좌관을 맡은 정윤회씨 등과 함께 박 후보의 선거캠프에 합류한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유세에서 박 대통령이 면도칼 테러를 당하자, 당시 학교 근처에서 다른 교수들과 식사를 하다 TV 속보를 본 최 부총장이 한걸음에 서울로 달려가 박 대통령의 세브란스 병실을 지켰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제2 새마을운동'은 박근혜 정부 정책 어젠다가 될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3월22일 중랑천 쓰레기 정화활동을 벌이는 새마을회 회원들. |강윤중 기자
지난 대선에서 기획조정 특보를 맡아 후보 연설문 등을 만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최 부총장은 인수위 참여 이후 인선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이른바 '원로그룹' 사이에서 의견조정 역할을 해온 '숨은 실세'로 거론되었다. 청와대 조각 당시 '비서실장 0순위'로 거론되었으나 다시 영남대로 돌아가 최근 국제협력 부총장으로 임명되었다.
6월11일 강의를 주최한 경상북도의회 도의원은 "'새마을운동 세계화의 필요성과 과제'를 주제로 한 특강이었고, 딱히 배포자료 없이 파워포인트로 준비한 자료를 놓고 열성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며 "(지역위원장 내정설 등) 그런 보도가 있어서였는지 언론사 기자들도 많이 와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도의회 의원님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며 열정적으로 강의를 진행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최 부총장의 '낮은 자세'는 이른바 친박 인사 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도운 한 친박 원로 인사는 "인수위가 끝났을 때 '아무것도 맡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말한 그런 점이 박 대통령이 (최 부총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979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새마음 발대식에 참여해 충효사상에 대해 연설하는 박근혜 새마음운동본부 명예총재.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외출 교수 행보 주목하는 이유
새마을운동의 계승·재점화는 최 부총장으로선 필생의 과제다. 보도대로 지역발전위원장을 그가 맡고 새마을과 관련한 각종 운동을 벌인다면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서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다. MB정부 때의 '4대강 사업'이나 '녹색성장'과 같은 위상을 '제2 새마을운동'이 갖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지역발전위원회의 화려한 부활이다.
지역발전위원회는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시기에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로 출범했다. 하지만 MB정부 들어서는 4대강추진본부, 녹색성장위원회 등 정부 역점사업에 밀려 사실상 명맥만 유지되어온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에 '실세 측근'이 위원장으로 부임한다면 사실상 대통령 직속위원회 중 정권 어젠다를 실천하는 핵심 위원회가 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언급이 부쩍 잦아졌다. 6월 10일, 방한 중인 라스무센 GGGI(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이사회 의장(전 덴마크 총리)을 만난 박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농촌 개발전략이면서 친환경 개발전략인 새마을운동은 GGGI가 개도국의 농촌 개발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GGGI는 MB정부 당시 개도국의 녹색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다. 새마을운동과 ODA(공적개발원조) 등을 주제로 논문을 써온 임형백 성결대 지역사회과학학부 교수는 "현재까지 ODA는 기획재정부 EDCF(대외경제협력기금)와 KOICA(한국국제협력단) 중심으로 진행해 왔는데, 실제 보도대로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면 안전행정부 주도로 넘어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진행해온 개발도상국 등에 대한 공적원조 중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부분은 일부였는데, 다른 공적원조도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되어 드라이브가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과연 박근혜 정부는 DJ 정부 시기 '제2 건국' 사업처럼 '제2 새마을운동'을 핵심 어젠다로 삼을까.
"제2 새마을운동을 벌이자"는 제안은 이미 인수위 시절 당시 고용노동분과 간사단 회의에서 안상훈 위원(서울대 교수)이 '사회적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제2 새마을운동'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나왔다. 안 교수의 제안에 대해 당시 간사장을 맡았던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는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정작 2월 말 정리되어 나온 '박근혜 정부 140개 국정과제'엔 '제2 새마을운동'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당시 인수위 고용노동분과에 정부 파견으로 참여한 한 정부측 인사는 "당시 그런 언급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따로 문서로 정리한 것은 없는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역시 해당 분과에 참여했던 한 여권 인사는 "문서로 정리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다"라며 "합리적 핵심은 140개 국정과제에 녹아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만약 (제2 새마을운동이) 추진된다면 1970년대 식으로 관 주도 사업이 아니라 민간 차원의 운동으로 추진되는 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선 머니투데이 보도에서 안행부가 '제2 새마을운동 추진방안' 작성을 주도했다고 하지만 막상 안행부가 지난 4월 5일 내놓은 2013년 업무보고에도 제2 새마을운동은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조직개편은 있었다. 안행부는 지난 3월 말, 종전의 민간협력과에서 공동체지원과와 지역활성화과를 분리했다. 신설 부서의 위상과 관련해서는 아직 정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안행부는 5월 하순 다시 2명의 직원 외에 외교부에서 파견된 인사로 '국제행정발전지원관실'이라는 부서를 만들었다. 이들 신설부서에 배치된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제2 새마을운동 추진방안'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그런 문서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한 안행부 국장급 인사는 "이미 인수위 때 논란이 된 사안이라, 제2 새마을운동 관련 명칭을 채택할지 여부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현재까지는 공식적으로 쓰이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지역발전위원회 쪽도 마찬가지다. 지역발전위원회 정책총괄국 관계자는 "우리도 보도된 내용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며, 적어도 이쪽에서 기획된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지역발전위원장은 공석이다. 최 부총장의 위원장 내정 여부와 관련해 이 관계자는 "BH(청와대) 인선과 관련해서는 이쪽에서도 알 수 없는 사안 아니겠느냐"며 "최 부총장이 온다는 소문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10일 청와대에서 라스무센 GGGI 이사회 의장을 접견하면서 "새마을운동은 GGGI가 개도국의 농촌 개발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안행부, '공동체 지원' 부서 신설한 까닭은
'제2 새마을운동'과 관련,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다. 3월 22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는 '사단법인 새마음실천중앙회'라는 단체가 출범했다. 안행부에 등록된 사단법인인 새마음실천중앙회의 전신은 새마음포럼이다. 지난 대선 시기, 새마음포럼은 박근혜 캠프의 SNS 여론전략 핵심 조직으로 거론되었던 조직이다. 당시 SNS를 무대로 윤정훈 목사가 벌인 활동이 선거법 위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날 사단법인 창립 행사에는 새누리당 디지털정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하진 의원 등 국회의원을 비롯, 충북·포항·경주·통영·전남·대구 등 20여명의 전국 지역본부 대표들이 참석했다. 3월22일 열린 행사에 참석한 신윤표 교수(전 한남대 총장)는 "'제2 새마을운동'을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할 것인가"를 주제로 연설을 했다. 신 교수는 1970년 박정희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당시부터 새마을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6월14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신 교수를 만났다. 그는 "지금이 '제2 새마을운동'을 펼칠 적기"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기 위해 35만명을 한국으로 파견할 예정인데,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안할 정책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정리 중"이라면서도 "다만 지금 우리가 펼치게 될 '제2 새마을운동'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 입장은 < 주간경향 > 이 접촉한 새마을학회의 핵심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새마을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한 학계 인사는 "새마을운동은 특정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마을 단위의 자조활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 때 발흥했다가 유행처럼 사라지는 운동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려면 중앙정부 중심이 아닌 근린자치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감이 필요하다"며 "다시 말해 커뮤니티 공동체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한국의 공동체운동은 70년대 모델이 아닌 형태로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새마을운동 초창기의 계몽운동보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만들기 사업이나 지역사회의 풀뿌리공동체 운동과 공통성이 더 많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학회 임원은 "새마을학회가 최근 들어 누구를 정부에 입각시키기 위해 모임을 갖거나 한 적은 없다"며 "지금은 새마을운동의 방향성을 새로 정립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정부 조직, 관 주도로 하는 것보다 민간 차원의 NGO활동으로 새마을운동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관계자는 6월 14일 < 주간경향 > 과 통화에서 "어떤 경로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민봉 수석은 그런 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과연 박근혜 정부는 일부의 보도처럼 '제2 새마을운동' 카드를 국정운영 어젠다로 꺼내들게 될까. < 주간경향 > 취재 결과로는 공식적인 경로로 '제2 새마을운동'은 아직까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반면 민간 차원에서 새마을운동의 계승 주장은 계속 나오고 있다. 앞으로도 지켜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