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사람들] 고시원 생활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누구 좋으라고 독립운동 하셨나? 괘씸한 대한민국"

고시원에는 노인들도 꽤 많이 산다. 도시재개발이 이뤄지면서 저소득 노인들이 거주할 판잣집이 자꾸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200~300만 원 보증금조차 없이 정부 보조금으로 한 달 한 달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들이다. 

고시원에 사는 노인치고 한 많은 사연 없는 사람 없겠지만 곽기수(74) 할아버지의 인생역정을 들어보면 한국사회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나는 해방된 이후에도 보육원으로, 고아원으로 떠돌며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본침략자들과 싸운 분들의 후손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도 되나? 친일파들은 대부분 잘산다. 우리 독립투사들의 후손은 너무 못산다.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나? 독립운동을 하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세상이, 대한민국이 아주 괘씸하다.”

고시원에 살고 있는 곽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 후손이다. 

“원래는 나도 연금(보상금)대상자다. 하지만 1973년 박정희가 법을 개정하는 바람에 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는 독립유공자가 해방 전에 돌아가신 경우엔 호주승계 1인의 손자녀(3대)까지, 해방 이후 돌아가신 경우에는 자녀(2대)까지만 연금을 주도록 했다. 독립유공자의 사망일자를 가지고 차별을 하는 엉터리 법이 35년이 되도록 바뀌지 않고 있다.” 

상식 밖의 이야기여서 얼핏 이해가 잘 안 갈수도 있다. 이런 얘기다. 

1962년 제정된 ‘국가유공자 및 월남 귀순자 특별원호법’에 의해 독립유공자들의 호주승계 손자녀 1인까지 연금을 주도록 돼 있었다. 손자녀 1인까지만 연금을 주기로 한 이 법도 문제는 많았다. 독립운동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1945년까지 50여 년에 걸쳐 이뤄진 활동으로, 해방될 당시 이미 1, 2대가 안계시고 손자녀(3대)나 증손자녀(4대)만 있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한 차별, 궁핍한 생활, 배우지 못한 것 등 모두 같은데 손자녀 중 호주승계 1인에게만 연금혜택이 주어진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일본군 출신 박정희는 한 술 더 떴다. 1973년 법을 개정해 “손자녀의 경우에는 1945년 8월14일 이전에 사망한 독립유공자 손자녀 1인에 한하여 보상금(연금)을 지급하고, 이 보상금을 받을 권리는 다른 손자녀에게 이전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독립운동의 공헌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망일자가 해방 이후면 손자녀 1인에게조차 일절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친일파들의 재산몰수는커녕 친일파들이 고위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독립유공자들이 하늘에서 대한민국에 대고 저주를 퍼부을 일이다. 

곽 할아버지의 조부 곽재기 선생은 의혈단원으로 밀양경찰서 폭파기도 사건으로 잡혀서 6년간 옥고를 치르고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 1952년 돌아가셨다. 아버지 곽대헌 선생은 일제시대 때 만주로 가서 독립꾼 기마대 훈련 중 말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 다행히 조부의 기록은 남아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독립장까지 받았으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어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후손들이 그 증거자료를 찾아 제시해야 한다.

곽 씨는 2005년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생계보조자금 25만원과 아는 사람들이 도와주는 돈으로 생계를 꾸린다. 대부분 고시원 비용으로 들어간다. 밥은 고시원과 유족회 사무실에서 대충 때운다. 

“별의 별 인간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이지만 그래도 고시원이 제일 편해. 여긴 밥도 있고 나만의 공간이 있거든.” 한 달 고시원 비용을 지불한 날이 곽 할아버지가 제일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