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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에 대한 간단한 서술
게시물ID : history_4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악진
추천 : 2
조회수 : 91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1/04/14 18:28:34
강단사학과 재야사학 간의 논투에서 이병도만큼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있을까요?
네이버/위키 등을 검색하면 더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겠지만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의 간단한 서술을 하겠습니다.

1. 역사학자가 된 경위
이병도 선생은 한국최초의 사학 박사학위자입니다.
박사논문은 고구려의 수당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근대적 지식인 태반이 그렇듯이, 학문 자체를 일본에서 배워왔습니다.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자이기도 했지만 선진문물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창구이기도 했으니까요.

2. 경력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1925년 가입하여 10년간 적을 두고 있었고, 
조선사편수회가 식민사관을 뿌리내리기 위한 곳이란 것도 맞죠.
다만 조선사편수회에서는 실제 활동을 한 것은 없이 이름만 올려두었다는 증언이 있고
오히려 진단학회의 발기인으로서 한국 전통 역사문화언어를 연구하는 데에 중심적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서울대 역사학과의 설립에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오늘날 대학교 역사학계의 등뼈가 되는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냅니다.
정부기관에도 수차례 참여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3. 학문적 업적
1) 식민사관의 탈피 : 학문적 업적으로는, 현재 대학역사학계에서는 이병도와 그 제자들의 업적을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시각에 입각해있다고 판단합니다.
그것은 이병도 학파가 광복 후 50년간 가장 절박하게 매달린 과제가 식민사관으로부터의 탈피이기 때문입니다.
이병도의 제자 이기백 서울대교수의 <한국사 신론> 서문은 식민사관에 대한 최고의 논박입니다.
저 역시 식민사관에 대해 이보다 더 잘 논박한 글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2) 민족적 자긍심 고취 : 또한 식민지피지배민 & 동족상잔과 분단된 조국의 현실 때문에
자칫 네거티브한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는 것을 염려하여
주로 한민족의 우수성과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에도 연구의 주안점이 있었습니다.

-조선후기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었다는 연구도 일각에서 제기되었지만
(자본주의 맹아론은 자체적 근대화의 가능성이 높았다는, 민족적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서 제기된 논의입니다. 근대화 자체에 대하여 반성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족에 대한 칭송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요즘은 한 풀 꺾였죠.

-중국으로부터 유입하여 기존 지배계층을 쫓아낸 위만조선의 위만이
조선인이라는 연구를 한 것도 이병도입니다.

-신화적 존재로 치부되곤 했던 단군에 대해서도 존재 자체는 인정을 했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로서는
오히려 존재 자체를 인정함으로서 한 발짝 나아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이병도와 그 학파는 근대의 실패한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민족적 자긍심을 살리는 것을 과업으로 하였습니다.

3) 실증사관의 도입 : 당대의 주된 역사학의 방법론이었던 실증사학을 국내에 도입한 것도 이병도의 업적입니다.
사서와 유물유적에 엄격히 입각하는 방법론은 근대적 연구방법론이지만
이런 방법론 자체는 21세기 극복대상이기도 합니다.

4. 평가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과업을 인정을 하지만
민족주의적인 성향과 탈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모색하는 최근의 사학계에 있어서
이병도는 '존경하되 극복의 대상'인 스승입니다.

5. 가족관계
흔히들 얘기하는, 이완용과 친척이라는 것은 사실무근입니다. 본관은 같지만 다른 갈래입니다.
현 서울대 총장 이장무씨는 이병도의 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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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사학자들이 이병도를 친일파라고 부르고, 그 제자를 친일사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병도의 조선사편수회 경력에 기인한 것입니다.
친일사학이라는 명칭은 고대사에 있어서 한민족의 강역을 재야사학자들보다 좁게 인정하는 탓입니다.

대표적으로, 재야사학자들은 한4군이 한반도 내에 없었다고 보지만
이병도학파(대학역사학계의 주된 견해)는 한4군은 한반도 내에 있었다고 봅니다.

한민족의 강역을 좁게 보는 것은 민족적 자긍심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에 친일사학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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