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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아침식사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403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57
조회수 : 10054회
댓글수 : 62개
등록시간 : 2014/03/24 14:09:08
 
 군생활 초반에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적응도 훈련과 근무로 인한 고단함도 아닌
음식이었다. 사실 나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다. 땅에 떨어진 음식도 흙만 묻어있지 않다면
거리낌 없이 주워먹을수 있을 정도로 비위가 강한 편이었고 다들 맛없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훈련소에서의 식사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대배치를 받고나서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대대에 도착해서 처음 취사장에서 국 한수저를
떠먹었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국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내 머리속에
든 생각은 음? 이건 뭘로만든거지? 똥? 이었다. 생존훈련이 취사장에서 부터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아마 전 사단에서 밥맛이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부대가 우리 부대였을 것이다.
 
항상 이것이 밥인지 떡인지 정체성이 모호한 찐밥이 나왔고 반찬 역시 조리가 덜 된건지 더 된건지
알 수 없는 반찬들 뿐이었다. 그 중에 최악은 아침, 그중에도 국이었다. 가뜩이나 입맛이 없는 아침에
취사장에 가서 나온 반찬들을 보고있자면 나오는 건 한숨 뿐이었다. 우리부대 메뉴중 '맑은'은 '맹물에 가까운'
이라는 뜻과 진배 없었고 '시레기'는 '쓰레기' '된장'은 '인분'에 가까웠다. 소고기 무국은 죽을때 까지 
밭을 갈다 쓰러져 죽은 황소의 고기를 써서 끓였는지 육질이 형상기억합금 못지 않았다. 아무리 씹어도 
본래의 모양을 유지했고 이게 고기를 먹는건지 타이어를 씹는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 중 베스트는 단연
임연수어국 이었다. 식판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정도로 맑은 국물과 거기서 올라오는 비릿한 비린내를
맡다보면 내가 국을 떠먹는 건지 수족관을 떠먹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 두부에 찍혀져 나오는
국방부마크 도장을 보고있노라면 과연 밥때문에 탈영한 사람이 있을까 하고 날 고민하게 만들었다.
 
훈련이라도 있는 날엔 우리들은 제발 전투식량이 나오기만을 기도했다. 훈련때엔 식사추진으로 주먹밥이
나왔는데 이 주먹밥이란게 따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그날 나오기로 한 메뉴를 일단 다 만든다음에
한곳에 넣고 뭉친것이 바로 이 주먹밥이었다. 내용물은 일단 먹어보기 전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밥 안에 시금치와 생선까스가 어우러진 새로운 퓨전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주먹밥을 먹느니 유통기한 2년 지난 전투식량을 먹기를
간절히 바랬다.
 
우리부대 취사병 중 처음부터 취사병 특기를 받고 온 인원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게 그 이유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취사병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디서 사고를 치고 전출을 왔거나 하극상, 소대 부적응 등 온갖 이유로
부대내를 떠돌다 취사병 보직을 받고 온 인원들이 절반 이상이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취사지원을 갔다가 취사병들에게 혹시 자격증 같은게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의외로 자격증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다. 정보처리 기능사 1급. 워드프로세서 2급. 보통1종.
그랬다. 그래서 매달 나오는 식사메뉴판이 그렇게 반듯반듯하고 반찬은 차로 밟고 지나간 듯한 맛이 나는거였나보다.
 
달이 바뀌고 새로운 메뉴가 나오는 날이면 우리들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식사일정표를 확인하고는 했다.
맑은 생태탕 소고기 맑은국 콩나물 맑은국 임연수어국 메뉴는 맑았지만 우리의 표정은 흐려져만 갔다.
고참들 중엔 아침을 먹는 사람보다 먹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일이등병이 식사거부를 할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아침의 취사장엔 일이등병만 가득했다.
고참들에게 반찬이 먹을게 없다며 고충을 토로해 봐도 반찬이 없으면 맛다시를 먹으면 되잖아? 깔깔깔 이라며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하는 발언 뿐이었다. 고참들이야 정 먹을게 없으면 컵라면이나 맛다시를 챙겨가서 먹었지만
사실 일이등병은 눈치가 보여 그럴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어느순간 나도 이 식사에 적응이 되어갔고 주먹밥에 들어있는 생선대가리를 웃으며
씹어 넘길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는 이 군대 식사에 적응이 되다보니 내 몸이 사제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백일 휴가를 나가서 오랫만에 그리운 집밥을 먹었지만 먹자마자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줘도 못먹는 몸뚱아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변기에 앉아 설사와 눈물을 동시에 쏟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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