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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내가 011을 못 바꾸는 이유.
게시물ID : humorbest_4031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필명숨김
추천 : 130
조회수 : 16564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11/03 19:04:34
원본글 작성시간 : 2011/11/03 17:12:16
내 동생은 나랑 3살 차이가 난다.

4남매 중 막내인 동생은 나랑 제일 친하다. 위에 두명은 나이차가 많이 나서 

이모 삼촌 같다고 유치원때 나한테 비밀로 얘기해 줬다. 


막내는 덩치가 좀 크다. 우리집에서 제일 크다. 180이 훌쩍 넘는다. 

나는 170 후 후반대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중학교에 입학한 막내는 

그때 이미 나보다 컸다. 그리고 운동을 잘했다. 수영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 


3남매에게 공부공부를 외치던 부모님은

넷째 정도는 운동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막내는 체육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난 걱정이 좀 됐다. 

아빠를 제일 많이 닮은 막내는 상당히 잘생겼다. 

근데 운동까지 하면 왠지 날라리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막내의 고등학교 입학식 전날 밤에

잠자리에서 조용히 말했다.

"00아 앞으로도 형말 잘들어야 됨."

-_-




의외로 막내는 성실했다. 아니 의외는 아니었다. 

공부 좀 한다고 이빨까는 형 누나들 밑에서 

운동을 해서 그런지

막내한테는 성실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았다. 

빡세지 싶은 체고를 

성실하게 다니고 있었다. 기록도 괜찮았다. 난 가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막내를

대신해 인터뷰 하는 상상을 했다-_-



나의 꿈은 막내의 2학년 여름방학때 깨졌다. 


전지훈련을 갔다가 물 속에서 무슨 사고가 났다고 했다. 

뇌에 산소 공급이 안됐다고 했고

그랬고

난 병원에서 엄청 울었다.



퇴원까지는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 

집에 돌아온 막내는 말을 잘 못했다. 

난 또 울었다.

한동안은 밤마다 울었다. 

난 막내랑 같은방에서 잤다. 밤에 막내가 자려고 누워있는 걸 볼때마다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 하루

소리 안내고 울고 있는 나에게 막내가

미안

이라고 말 한 날이 있었다. 되려 내가 서러워서 또 엄청 울었다. 



막내는 조금씩 나아졌다. 매우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졌다. 

말이 조금씩 늘었다. 난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막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속 떠들었다. 

한강에 보이는 오리배부터 내 전공이야기까지. 

넓은 범주의 말을 계속 들려 주는게 좋다고 해서 매일 그렇게 데리고 나가 떠들었다.

하루는

내가 니 보호자다 임마

말을 하고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떡대 보호자가 나라는 생각을 하니 그냥 좀 서러웠다.

남이 보면 니가 내 보호잔 줄 알겠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도 나왔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르고 막내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하게 됐을때

나는 내 번호를 막내에게 외우게 했다.

아빠나 엄마 번호를 외우게 하려다가

그냥 내 번호를 외우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랬다.

그게 안 비겁한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또 몇년이 지났다. 

내 동생은 많이 나아졌다.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또래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많이 정말 많이 나아졌다. 

변화는 느렸지만 가족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말도 곧 잘하고 운동도 열심히 한다. 조금만 더 좋아지면 검정고시를 준비해 볼 수도 있으리라는 꽤 큰 욕망!
을 나는 가지고 있다. 






점심시간이면 가끔 동생한테서 전화가 온다. 

'어 보호자'

로 시작해서는

대개 그날 드시고 싶은 음식으로 끝나는 짧은 통화.




동생은 여전히 내 번호를 외우고 있다.



















출처-snu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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