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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나의 그녀
게시물ID : readers_45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eadStar
추천 : 0
조회수 : 1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1 22:26:10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었다.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긴 생머리에 떨어진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어 있을 정도니 오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오후 일찍부터 지켜봤는데 한밤중인 지금도 그대로다.

키도 조그맣고 볼륨감도 있는데다 긴 생머리.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다.

당장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고 싶긴 하지만,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좀 멀리서 관찰하긴 했지만 역시, 움직이질 않는다. 몇 시간째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한 치의 움직임도 없다.

또 한 가지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

분명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 한복판에 서있는데 전부 그저 비켜 다닐 뿐 그녀에게 눈길하나 주는 사람이 없다.

이쯤 되니 마네킹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생각해보니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사람 피부랑 똑같이 만드는 기술이 있긴 하더라.

여기까지 생각이 드니 이젠 허무하다. 그래, 날도 추운데 하던 일 끝마치고 빨리 집이나 가야지.

잠깐... 그녀가 움직였다. 바람도 불지 않았고, 누가 건드린 것도 아니다. 그녀 스스로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머릿속이 호기심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대체 뭐하는 누구이길래 저러고 몇 시간을 서있다가 이제야 움직이는 것일까.

조금씩 용기 내어 그녀에게 다가간다. 물론 나는 숫기가 없기 때문에 그 주변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녀의 바로 옆이다. 바로 뒤에서 언뜻 보니 코에서 김이 난다.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다.

궁금하다. 궁금해 미치겠는데 왠지 옆으로가서 빤히 쳐다봤다간 미친 사람 취급할 것 같아 그렇게 하질 못한다.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자세히 보니, 손도 폈다 줬다 하고 발도 꼼지락거린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그녀의 앞으로 가서 뒤 쪽을 보는 척 연기하기로.

어...? 그녀가 앞으로 한발자국 발을 디뎠다. 매우 힘겹게... 마치 오늘 처음 걸어보는 것처럼. 한 번 더 움직인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움직이기 시작한걸까.. 그녀는 걷고 있다. 그게 전부다. 특별히 어딜 향해 가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앞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걸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는 두 번째 이상한 점도 해결하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점을 남겨두는 것은 내 호기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길가에 붕어빵 파는 아저씨에게 물어보자. 물론 붕어빵은 사드려야겠지.

아저씨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역시, 내가 미친거다. 이제 답은 두 가지다. 환상 또는 귀신.

그래! 어짜피 나만 보이는거 그냥 용감하게 물어보자. 그녀가 대체 누구인지를!

그녀의 앞에 가서 당당히 섰다. 하지만 얼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다.

‘저...아까부터 계속 여기 계시던데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말이 머릿속에서만 맴돌고있다.

그녀가 날 쳐다본다. 어떻게 해야할까.

“저에게..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그녀의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말도 매우 떨리고 있다.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어떻게 말해야 이 상황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 자세히 보니 닮았네요.”

뭐라고?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닮았어요. 정말로. 혹시 이 사람 아시나요?”

그녀가 사진을 하나 꺼내든다. 어... 내가 아는 얼굴이다. 아니, 이 사람은 나라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일 정도로 닮았다.

사진이 떨어졌다. 사진을 줍기 위해 손을 내민다. 그러다 그녀의 손에 손을 부딪히고 말았다. 그녀의 손에서는 뭔가 표현할 수 없는 차가움이 느껴졌다.

“으흑..흐흑흑흐헣헣흐흫흐흐...”

그녀가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녀의 눈물이 땅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눈이 녹는다. 녹는다...

녹는다고? 갑자기 머릿속이 깨질듯이 아프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가기 시작한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다.


......


깨어났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제야 기억이 돌아온다. 나는 불에 타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한 사람이 내 눈에 들어온다. 꿈 속에서 보았던 그녀. 아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의 여자. 내 아내.

내 아내는 까만 내 사진을 보며 꿈 속에서 보던 것 그대로 울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나는 깨어난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가 맞는 것 같다. 난 화재 사고를 당했었다. 그상태로 며칠간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그리고 지금 죽은 것이다. 내가 꿈속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아니, 꿈보다는 무의식의 세계라고 부르는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아니지, 뭐가 되었던 상관은 없다.

내가 본 것은 아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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