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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산
게시물ID : readers_47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쁨하영
추천 : 0
조회수 : 17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00:53:39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조금씩 떨려왔다.

한겨울에 맨발로 산을 헤매는 것은 미친짓이지만,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멀어진 기억속에서 아른거리는 한 남자의 얼굴이 그녀를 산속에 가둬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오직 그 기억만이 그녀를 산속에 잡아두었다.

옷에 내려앉은 눈을 털며 그녀는 앞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얼마 걷지도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감겨져가는 그녀의 눈 앞에 무언가가 아른거리며,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따뜻한 기운에 정신을 조금씩 차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깜짝놀랐다.

동굴 안에는 그녀를 산속에 잡아두었던 남자, 그가 있었던 것이었다.

눈을 뜬 그녀를 보고 남자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셨어요? 아니 겨울인데 맨발에 그 옷차림으로 산을 오르셨어요. 아니면 길을 잃으셨나봐요, 워낙 험난한 산이라.."

그녀는 일어나며 남자의 말에 대답하였다.

"제가...길을 잘 몰라서..."

고운 그녀의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컵을 내밀었다.

컵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것을 보니 그녀를 위해 준비한것 같았다.

두손으로 컵을 받아든 그녀는 홀짝거리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보고있자니 남자에 관한것들이 조금씩 떠오르는 듯 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녀를 모르는 것 같았다.

남자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있었지만, 눈동자에는 그녀를 향한 걱정만이 가득하였고, 그녀를 산 아래 마을로 데려다 주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 산을 내려가자고 말한 남자는 잠깐 동굴 밖으로 나왔지만, 거센 눈보라에 다시 들어와야만 했다.

날이 저물지는 않았지만 저런 눈보라속에서는 산을 내려가는 게 힘들다고 본 남자는 그녀에게 말했다.

"밖에 눈보라가 너무 강하네요. 이 동굴안에서 하루 지내고, 내일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그녀는 남자가 덮어준 담요를 꼭 쥐었다.

 

동굴 속에서 하루를 보낸 둘은 어느새  친해져있었다.

순수하고 마음이 고운 그녀를 보고 남자는 사랑에 빠졌고, 산을 내려가면 계속 만남을 가진 뒤 청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밖은 어제와는 달리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기에, 남자는 그녀와 함께 짐을 싸고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몸이 좋지않아 잘 걷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자는 그녀를 업고서 걸었다.

둘이 있는 산은 워낙 험하고 낭떠러지가 많아 위험했기에, 남자는 그녀가 어떻게 이 산에 있었는지 의문이 갔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한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남자는 갑자기 멈칫했다.

옛날 좋지않은 추억의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산에 온 목적이 이곳에 들리기 위함이었지만, 남자는 등에 업혀있는 그녀를 의식하고는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그녀가 남자에게 물었다.

"왜 주춤하신 거에요?"

그녀의 물음에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여기서 좋지않은 일을 당한 기억이 있어서..하하..."

남자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건 그렇고 가벼우시네요..따로 몸무게 관리라도 하시..."

남자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발 밑의 눈이 푹 파이고는, 밑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비명을 지르며 밑으로 추락한 남자는 팔다리가 부러지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남자는 그와중에도 등 뒤의 그녀가 다치진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겨우 정신을 붙들고 있던 남자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애초에 없던 사람인 것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점점 죽어갔다.

온몸에 감각이 사라지며 심장이 멈춰갈 즘에, 눈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

남자는 그녀를 올려다보다 경악했다.

그녀의 얼굴에 다른 얼굴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1년전 그가 죽인 여자친구의 얼굴과 산에서 만난 그녀의 얼굴.

 

잠시 후 남자의 심장이 멈췄고, 여자는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남자의 시체 위에 눈이 쌓이며 세상에서 지워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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