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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실례합니다
게시물ID : readers_47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esuaR
추천 : 1
조회수 : 19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03:36:16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12월의 마지막 날,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거리의 한가운데 그녀가 서 있었다.

추운 겨울바람이 마음마저 후벼 파는 이 날씨에 누굴 기다리고 있는 걸까.

수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는 거리 위로 그녀의 시간만이 멈춰있는 것 같다.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동안, 그녀만이 못 박힌 듯 얼어붙어 있다.

 

뭐해?”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등을 툭 건드렸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친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잠깐 좀 지켜보고 있었어.”

지켜보다니, ?”

 

친구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왜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

친구의 물음에 내 자신에게 답을 구해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눈이 쏟아지는 이런 궂은 날씨에 그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건 그렇고, 다른 애들은 언제 오는 거야?”

글쎄. 곧 오지 않을까?”

 

친구에게 무성의한 답변을 하면서 여전히 내 눈은 그녀를 향해 있다.

붉은 코트도, 곱게 멘 목도리도, 흩날리는 긴 머리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특출 나게 예쁜 얼굴도 아니다. 몸매가 끝내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키도 평범하다.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길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지금도 내 시선은 그녀를 향해 있다.

 

근데 너, 아까부터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친구의 눈동자가 내 시선을 쫓아가보지만 엄청난 인파 덕에 추적은 실패하고 만다.

추워죽겠는데 다른 애들이 안온다고 투덜대는 친구를 뒤로한 채 내 시선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있다.

추위도 모르는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내가 오기 전부터 있었으니, 아마 30분을 훨씬 넘겼겠지. 누굴 기다리는 걸까.

 

, 왔다 왔어.”

 

친구가 누군가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친구가 마주하는 방향에서는 두 명의 남녀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나온 친구들 덕분에 그녀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자리 잡았다.

친구들을 뒤로한 채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우리 둘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쓸쓸한 눈빛과 굳어버린 얼굴로 그녀는 내게 공허를 말했다.

아아,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녀에게 눈을 뗄 수 없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왜 유독 그녀만을 볼 수밖에 없었는지.

 

그녀는 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포기하던 내가 그녀의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 사람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절망뿐인 내가 그녀의 작은 입김 속에 담겨있었다.

그녀는 지나간 내 자신이었다.

 

, 뭐하고 있어? 안가?”

어서 가자. 춥다.”

빨리 와.”

 

친구들이 어서 오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묘하게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 허무함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마음의 통증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조금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어서 가자니깐?”

 

친구 하나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다. 친구 너머로 다시금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어느새 다시 하늘을 보고 있던 그녀가 살짝 미소 짓는다. 그 미소에는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묻어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 어디가?!”

 

친구의 부름을 무시한 채, 인파를 뚫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언제까지고 추억에만 잠겨서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설령 내가 가야하는 길 위에 후회와 고통이 가득하더라도 나아가야한다.

나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밤하늘을 보며 추억을 곱씹는 게 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내일을 기약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실례합니다.”

 

밤하늘의 추억을 바라보던 그녀가 천천히 나를 바라본다. 다짜고짜 말을 걸어서 놀랄 만도 하지만 아무 말도 없다.

그녀의 기다림에 내가 참견할 권리는 없다. 생판 모르는 남인데 설교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민폐를 끼치는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친구들이 그랬듯이, 이번엔 내가 이끌어줄 차례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래요?”

 

뭔가 말하려는 그녀의 손을 멋대로 붙잡은 채 친구들에게 향했다. 바닥에 굳게 붙어있던 그녀의 발도 한 걸음 앞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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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는 맨날 눈팅만 하다가 과거제를 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가입해서 글을 써봤습니다. 

형편없는 솜씨지만 끄적여보았습니다. 날도 추운데 감기들 조심하세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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