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유과거] 산문 - 미련한 놈
게시물ID : readers_47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uniQue
추천 : 1
조회수 : 1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03:53:41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내가봤다고 느낀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녀는 항상 나와 함께였다. 그녀가 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그녀의 고요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그녀의 잠든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질였고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에 쪽 하고 키스를 하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한쪽 눈만 뜨고 날 보다가 다시 스르르 잠들어 버리는 게 대부분, 그렇지만 그렇게 다시 잠드는 날에는 그녀는 항상 지각을 했다. 그녀는 급하게 준비를 하고 밥을 대충 먹고 후다닥 출근을 했다.

 

그녀가 없는 동안 나는 하루 종일 그녀 생각을 하고 지냈다. 퇴근하면 뭐하고 놀지, 내가 뭘 해야 그녀가 웃어 줄지, 오늘은 누구 때문에 힘들어 할지.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난 이래야지... 그렇게 그녀 생각으로 내 작은 방을 하나하나 도배해나가다 보면 그녀의 구두 소리가 들렸다.

 

난 그녀의 구두소리를 알고 있다. 그녀는 항상 활기차서 땅에 닿는 구두소리가 남들에 비해 우렁찼다. 하지만 술에 잔뜩 취한 날에는 그녀의 활기참을 감당하지 못한 구두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녀가 도착했다. 솔직히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그녀가 그 날 힘든 일이 있었다는 뜻이므로 나는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줄 준비를 하곤 했다.

 

그 날은 그녀가 힘든 일이 있던 날이었다. 나는 그녀를 마중하러 나왔고 그녀는 곧 들어왔다. 그리고 울었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껴안아줘서 더 놀랐다. 사실 그녀가 날 껴안지 않은지는 꽤 오래 됐다. 그리고 동시에 동네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내가 그 날 그녀의 울음소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내게서 떠나지 않았을까? 날 버리지 않았을까? 그녀는 나를 껴안고 훌쩍이며 미안해... 미안해... 했다. 나는 다음날 그녀를 부은 얼굴로 만들어 괴롭힐 나쁜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 날은 토요일 이였다. 그녀는 소풍을 가자했다. 오래간만의 소풍이여서 나는 어느 때 보다도 흥분했었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곤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는 함께 도시락도 먹고 책도 보고 자전거도 타고 공 주고받기 놀이도 했다. 실로 오래간만 이었다. 승부욕이 강한 그녀는 내가 공을 좀 멀리 던지자 이에 질세라 있는 힘껏 던졌다. 그녀의 바램은 이루어 졌고 난 제법 멀리 날아간 공을 주우러 갔다.

 

낙엽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좋은 공원이 하나 있다. 난 그 곳에 격일로 아침마다 조깅을 하러 간다. 긴 공원 중간쯤에는 벤치가 하나 있다. 난 조깅을 하다 지치면 그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어느 날부터 다른 놈이 내 자리를 빼앗았다. 내가 쉬러 갈 때 마다 벤치에 길쭉하게 드러누워 널브러져 자고 있는 놈! 얄미워서 발로 툭 치면 한번 움찔한다. 그 모습마저도 옛다 니가 원하는 반응이 이런거냐? 하는 듯이 반응도 느리다. 결국에 포기하고 그냥 잔디에 앉아서 쉬다가 배가 출출해져서 소시지라도 하나 꺼낼 기미가 보이면 글쎄, 빛의 속도가 내 옆에서 실현 된다. 근데 그 자식의 능력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소시지 껍질을 뜯는 순간 코가 벌름 벌름 거리면서 촉촉한 눈으로 저 것을 제게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 하는데 내가 거기에 속아 넘어간 적이 방금까지 합쳐서 무려 30번째다. 내가 절대 소심해서 뺏긴 날짜를 세는 것이 아니다. 저 놈이 이 공원에 나타난 지 오늘로써 2달째라서 그렇다. 처음 나타날 때부터 소시지를 주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저렇게 똑똑하고 귀여운 놈을 누가 버렸을까 벌을 받아 마땅하다. 저 놈은 유기견이다.

 

 오늘로써 둥근 달이 4번째다. 그녀는 없다. 그녀가 내게 채워준 목걸이가 많이 헐렁거린다. 딱 맞던 것이 왜 이렇게 커졌을까... 싫다. 멀어지는 목걸이가 느껴지노라면 낙엽 속으로 사라지던 그녀가 떠오른다. 그녀가 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목걸이라도 가까이 있으면 좋으련만...

 

비가 온다. 그쳤다. 또 온다. 그쳤다. 어어 목걸이가 가까워진 느낌이다. 기분이 좋아서 방방 뛰었다. 난 원래 비가 싫었지만 이제는 좋아할 것 같다.

 

 보름동안 비가 오락가락 했다. 난 비를 싫어해서 보름동안 집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공원벤치에 있을 그놈이 걱정 되서 아침에 나갔다. 어라? 보름동안 누군가가 음식을 줬는지 자기 혼자서 꼬리 물기를 하며 신나한다. 소시지를 주고 추워서 집에 들어갔다. 이제 겨울이 오려나보다.

 

 6번째 둥근 달이다. 그녀는 없다. 하지만 난 더 기다릴 거다. 목걸이도 엄청나게 가까워 졌으니 꼭 올거다. 그치만 이제 날씨가 너무 춥다. 그녀가 조금만 서둘러서 날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 다시 그녀를 만나면 그녀의 울음소리가 부끄럽지 않다고 말해줄 거다.

 

 첫눈이 온다. 첫눈치고는 꽤 탐스럽다. 비는 싫지만 눈은 좋다. 그래서 공원에 나갔고 공원 중간에 자리 잡은 벤치에 갔다. 약간의 굴곡이 있는 공원의 흔하디 흔한 낮은 언덕 위에서도 벤치는 보인다. 개도 보인다. 맙소사, 예전 포동포동 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뼈만 앙상하게 보이는 몸통과 다리다. 그리고 왜 진즉 목줄을 보지 못했을까... 목줄은 잔인하게도 개의 목을 파고들어 있었다. 개가 쓰러졌다. 내 뒤에 앙증맞은 강아지를 든 여자가 큰 목소리로 통화하며 지나갔다.

 

 눈이 온다. 난 그녀를 더 기다리고 싶은데 이제는 힘이 든다. 하지만 난 계속 꿋꿋이 서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언덕 위를 본다. 나에게 소시지를 준 여자가 보인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나중에 꼭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어? 구두소리다. 내가 알고 있는,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구두소리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지나간다. 품에는 나보다 훨씬 어린개가 안겨있다. 아아 깨달았다.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그녀를 봤고, 그녀가 여기로 왔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다. 내가 본 그녀의 마지막 모습 이었다.

 

그녀가 행복해서 행복하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