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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날개
게시물ID : readers_48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끼리리리릭
추천 : 4
조회수 : 29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02 11:39:22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다. 아니 서 있기보다는 날고 있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이 지랄을 맞으며 날고 있다. 눈이 오는데 신기하게 밝은 보름달이 보인다. 흡사 그녀를 비춰주는 조명인 듯하다. 나는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또다시 하늘을 난다. 그녀의 날갯짓에 방해가 될까봐 나는 조금 멀찍이서 그녀를 바라본다.

 

짝짝짝

 

- 뭔진 모르지만 아주 멋지네요.

 

그녀가 도약을 멈춘 뒤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녀는 잠시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발견하고 웃으며 옆으로 다가온다.

 

- 고맙습니다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약간 처진눈에 아담한 코와 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이 도약질을 매일 하는지 참으로 탄탄하고 매혹적이다.

 

- 뭐하시는 거에요?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입을 뗀다.

 

- 본 그대로에요. 저도 뭔지 몰라요.

- 네??

 

어떻게 자신이 방금 열심히 하던 것을 ‘모른다’라고 할까. 이상한 여자 아닐까? 문득 무서워진다. 나는 괜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서 주위를 본다. 산 아래 만들어 놓은 이 공원에 웬일인지 사람이 없다. 눈이와도 비가와도 항상 사람이 많던 이 공원이 사람이 없다니 진눈깨비가 참 지랄같은 것은 맞나보다.

 

- 그런데 이런 날 우산도 없이 여기서 뭐해요?

 

혼자서 속으로 이 정신없는 날씨를 욕하던 내게 그녀가 묻는다.

 

- 그건 내가하고 싶은 말인데. 음... 저는 그냥 우울해서요. 날씨도 우울하고 저도 우울하고 인생도 우울하고 그래서 항상 사람 많은 이곳은 덜 우울할까 했는데 더 우울하네요 젠장.

 

난 정말 우울해서 이곳에 있다. 왜 우울하냐고 묻겠지? 그런데...

 

- 그렇군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저쪽으로 달려가더니 우산을 들고와서 펼쳐서 나에게 씌운다.

 

- 이래도 우울해요?

- 날씨도 우울하고는 뺄게요.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우산을 내게 건낸다. 그녀보다 큰 나와 함께 쓰려고 우산을 높이 들고 있기 힘든 모양이다. 나는 그 우산을 받아 그녀와 함께 쓴다. 그녀는 답을 알까?

 

- 저는 제가 왜 우울한지 모르겠는가를 몰라서 우울하고 더 우울해요. 혹시 이청준 ‘병신과 머저리’라는 소설을 아세요? 소설에서 형은 시대의 아픔을 겪고 그 상처를 스스로 극복해나가요. 그런데 저는 그 소설의 동생처럼... 시대의 아픔도 없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상처를 가지고 사는 것 같아요. 상처를 모르니 꼬맬 수도 없더라구요. 저는 왜 아플까요? 왜 우울하고 왜 힘들까요?

 

나는 외치듯 말한다.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친구 선배 후배 모두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산다. 우리는 왜 우울한가. 왜 외로운가. 왜 힘든가. 왜 가끔 세상이 미운가.

그녀는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다. 처음에는 신비롭고 조금 무섭게 보이던 그녀가 문득 친근하게 느껴진다.

 

- 저랑 춤출래요? 저를 따라해보세요. 되게 재미있어요!

 

그녀가 뜬금없이 말한다. 진눈깨비가 거세어 지고있다. 하지만 나는 마법에 걸린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앞으로 걸어가서 양팔을 위로 들고 누웠다. 그리고 그녀는 팔을 휘저으며 땅에 얼굴을 비빈다. 아까는 하늘을 날았다면 지금 그녀는 땅을 헤엄치고 있다. 달빛을 받으며 땅을 헤엄치는 그녀는 신비롭다. 그러나 무섭지 않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를 바라본다.

 

- 쿠오아아악

 

나는 괴성을 지르며 우산을 접어서 옆에 살짝 던지고 이 질퍽한 진눈깨비 지랄의 중심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눅눅한 바닥에 누워 몸부림에 가까운 막춤을 춘다. 그녀를 따라하려고 했지만 그녀를 따라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녀 역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아마 누가 본다면 두 미친년놈들이 쌍으로 지랄한다고 하리라.

 

- 쿡쿡... 하..힘들어.. 헉 쿡쿡쿡 이게 뭐야 헉헉...킥킥

 

웃음이 나온다. 그녀도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소 더럽혀진 얼굴이 매력적이다. 그녀는 웃으면서 일어나 뜀박질을 한다. 처음에 보았던 날갯짓이다. 그녀는 흡사 이 대지를 발밑에 두고 어딘가로 가려는 듯 계속 날갯짓을 한다. 그녀는 작은새다. 자유로운 작은새.

 

 

 

큰 새도 날갯짓을 시작한다. 원체 날개가 무겁고, 처음하는 날갯짓이라 큰새는 어색하다. 그러나 큰 새도 날개도 크다. 큰새는 자기 날개에 채워진 수갑이 자기 몸의 일부인 줄 알았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우울해했다. 어느 날 큰새는 흰 깃털을 진눈깨비 위로 굴르면서 날갯짓을 배운다.

유쾌하다. 솔직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기쁘다. 이제 우울하지 않을 것 같다.

 

 

 

- 헉헉

 

나는 숨을 고르며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그녀의 날갯짓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나는 그녀를 잡지 않는다. 그녀는 다른 큰 새들에게도 날갯짓을 가르쳐 줄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조용히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크게 외친다.

 

 

- 고맙습니다. 죄송한데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그녀의 뒷모습은 진눈깨비 속으로 사라짐으로써 대답을 대신한다. 잠시 후 메아리치듯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항상 뛰어요. 그리고 제 이름은...

 

아쉽게도 그녀의 이름은 바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겨울.

한 해의 마무리

많은 청춘들이 눈물을 흘리며 이기지 못하는 소주병을 잡는다.

이런 친구들의 손을 잡고 나는 뜀박질을 하러 나간다.

그들은 나보다 더 큰 새이다. 그들은 날고 싶다. 날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에서야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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