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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환상
게시물ID : readers_48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툭하면
추천 : 3
조회수 : 23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02 1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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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10년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그곳에 정확히 서 있었다. 나는 눈을 비볐다. 그녀일 리가 없었다. 정말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그녀를 향해 뛰었다.


 여긴 어쩐 일일까. 다신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니,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다고 했는데. 내가 보고 싶어서 왔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동안 잘 지냈냐고, 별일은 없었느냐고. 나는 그대가 떠나간 뒤 한동안 너무 힘들었노라고.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기도 했다고.



 10년 전, 그녀는 나를 떠나며 저를 잊어 달라 하였다. 내가 그대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냐고, 죽어도 잊지 못하리라 울부짖자 희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정 그러면, 그동안 마음이 안 맞아서 싸우고 서로 속상해 했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일 나가지 않는 휴일 늦은 아침밥 함께 차려먹었던, 소파에 누워 티비 채널을 돌리며 영양가 없는 얘기를 나누던, 가끔 같이 쇼핑 나가서 서로 잘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곤 했던 작고 예쁜 추억들만 기억해 달라고. 그 말에 나는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동안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리도 많았는데, 왜 항상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그녀를 외면하고 또 외면했을까.


 10년 전 그날에도 이렇게 눈이 왔었다. 10년 전 그날에도 그녀는 눈을 맞으며 나를 떠나갔었다. 그 이후로 다시는 못 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나와 마지막으로 인사했던 나의 집 앞에서, 10년이 지났어도 변한 곳 하나 없는 나의 집 앞에서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1초라도 더 빨리 달려가고 싶은데, 1초라도 더 빨리 그녀의 품에 안기고 싶은데 내 두 발은 쌓인 눈에 푹푹 빠지기만 했다. 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이를 악물고 달려도 꿈처럼 그녀와의 거리는 아득하기만 했다.




 -만약 내가 네 곁에 없다면, 어떨 것 같아?-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했던 질문.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핸드폰만 만지며 대답했었지. 그런 건 왜 물어봐? 어차피 계속 내 옆에 있어줄 거잖아. 너무나 철없는 내 대답에도, 그녀는 작게 웃으며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그래도, 정말 만약에 내가 네 곁을 떠나가야 한다면, 나는 네가 정말 보고 싶을 것 같은데.




 내가 그대를 잠시 잊고 있어서 찾아왔나요. 그렇게 힘겹게 그대를 떠나보내고,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떠드는 모습에 화가 났나요. 가지 말라고 그리 말해놓고, 다른 이들과 즐겁게 지내는 모습에 질투라도 났나요. 그렇다면 미안합니다. 평생 잊지 않을 거라 약속해 놓고 지키지 않은 것 미안합니다. 그러니 한번만 안아주세요. 예전처럼, 웃으며 나를 안아주세요.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그 목소리…… 듣고 싶으니.




 그녀는 아직도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려 했으나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차마 그러지 못했다. 푹푹 눈에 파묻히는 발을 힘겹게 빼내느라 힘겨웠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한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손만 내밀면 그녀를 잡을 수 있는데, 바보같이 그 순간 하얀 눈밭에 철푸덕 넘어지고 말았다. 아차 싶어 눈이 잔뜩 묻은 두 손을 털 새도 없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없었다. 그녀가 서 있던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마법이라도 걸린 것 마냥 새하얀 눈 위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있던 곳에 발자국조차 찍혀 있지 않았다.


 작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그리워한다고 해도, 한번 떠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올 리는 없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봐도 눈밭에 찍힌 발자국은 내 것밖에 없었다. 허탈감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눈밭에 엎어진 모양새 그대로, 나는 털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하얀 눈 위로 참고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제야 아까 목구멍 아래로 눌러 삼킨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전에는 항상 아무렇지도 않게 불렀던 이름이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니 왜 이리도 낯설고 어색한 건지. 이제는 생각만 해도 목이 메는 그 이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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