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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
게시물ID : readers_48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토끼
추천 : 3
조회수 : 2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14:35:24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붉은 코트에 흰색 목도리를 두르고. 무려 한 달 만에 보는 얼굴이다. 반가움이 앞섰으나, 두려움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곳에 온 이유를 다시금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


 그녀는 내 고교 동창으로, 같은 대학에 온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그 때문에 과도 다르고 내가 재수를 한 탓에 학년마저 달랐음에도,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라는 동질감으로 가까워졌다. 그녀는 잘 웃었고, 특히나 눈웃음이 예쁜 사람이었다. 말씨나 성격 모두 사근사근했고, 키도 크고 늘씬한 미인상이라서 인기가 상당히 많았다. 함께 다니다 보면 종종 비교를 당했고, 때론 질투가 났다. 나라고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것은 아니므로. 하지만 내가 봐도 그녀는 예뻤으므로, 곧 납득하곤 했다. 그게 문제였다. 그녀가 예뻐 보여서, 비교를 당해도 기분이 좋다는 것이.


 처음에는 몰랐다. 심장이 뛰는 횟수가 점차 증가하는 이유를. 그저 요즘 살이 좀 쪄서 혈압이 높아졌나. 술을 좀 덜 먹어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을 뿐이다. 정말로 몰랐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장난삼아 뽀뽀를 했을 때, 기분이 매우 나빠진 이유를.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가 수많은 과 친구들을 두고도 왜 나와 함께 다녔는지를. 누군가 이야기해주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표정이 잘 안 변하기로 소문난 내가, 그녀만 나타나면 환한 웃음을 짓곤 한다는 것을. 그래서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가 그녀에게 고백한 모든 남자를 모두 매몰차게 걷어차는 이유를. 그리고 그녀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위험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모든 이유와 사연에 대해서 알게 된 순간,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 길로 휴학하고, 자취방을 버려둔 채, 원래 살던 곳으로 도망쳤다. 전화번호를 바꿨고, 그녀의 번호를 차단했다. 메신저고 메일이고 전부 탈퇴해버렸다. 자주 가던 사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함께 가입했던 동아리 홈페이지를 탈퇴하기 전, 나는 그녀에게 쪽지를 남겼다.


 '우린 잘못됐어.'


 그게 끝이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벌게진 두 눈이 보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 내리는 소리만 사락사락 들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왜 그렇게 웃어. 왜 그렇게 아프게 웃어. 주머니 안으로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빠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작게 났다.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왜 왔어."


 먹먹한 목소리가 나왔다. 차갑게 얘기하려 했는데, 목이 메었다.


 "보고 싶어서 왔어."


 그녀가 눈가를 문지르며 말했다. 눈가를 문지르는 그 손이 붉다. 얼마나 서 있었던 걸까, 눈이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린 걸까. 마주치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가슴이 갑자기 시려서, 옷깃을 더 꽉 여몄다. 찬 바람에 눈발이 어지러이 휘날린다. 그 탓에 눈앞이 조금씩 흐려졌다.


 "이러지 마."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단호하게 얘기하려 했는데, 바람이 불어서 목소리를 흐렸다.


 "무서워?"


 그녀는 대답 대신 질문을 한다. 마음을 흔든다. 바람에 나부끼는 눈송이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내가 너를 망칠 거야."


 토해내듯 답했다. 참담한 기분이 든다. 속이 울렁거린다. 그녀에게서 한 걸음 물러선다. 그러자 그녀가 한 걸음 다가온다.


 "망치지 않아. 행복하게 해주고 있어."

 "그것도 한순간이야. 일탈일 뿐이야. 그 끝엔 후회밖에 남지 않아."

 "후회하지 않아. 나를 믿어."


 그녀가 다시 다가온다. 손을 뻗는다. 더 다가와 붙잡을까 봐, 덜컥 겁이 난다. 비틀거리며 두세 걸음을 더 물러났다.


 "너를 믿어, 지금은. 그래서 안 돼."


 이번에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가 멈춰 섰다. 왜? 그녀는 그렇게 묻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 전부가 아니야. 우린 앞으로도 한참을 더 살 거야. 하지만 너도 알잖아. 우린 아무것도 약속할 수가 없어. 아무도 우리를 몰라줄 거야. 붙들어 둘 방법이 형태 없는 것들밖엔 없어. 나는 그게 무서워. 멍청하다 욕해도 좋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면 불안해. 결국, 누군가가 잊어버리거나, 혹은 지워버린다면, 우린 그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야."


 끝에 가서는 목소리가 조금 울먹임으로 변했다. 그녀는 가만히 나를 보았다.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려는 듯, 맑은 두 눈으로, 깜박임 하나 없이. 마치 그게 위로 같이 느껴져서,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렸다.


 "기억할게. 약속해."

 "약속하지 마."

 "우리는 약속을 할 수 있어. 약속은 깨질 것을 예상하고 하는 게 아니니까. 우리를 모두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이해해줄 거야. 사람은 누구나 어떤 관계든지 간에, 마음으로 붙드는 거야. 지금 내 앞에 있는 너와 네 앞에 있는 내가 눈에 보이잖아. 옆에 있는 서로를 보면 돼. 그래서 눈에 네가 익어서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할 수밖에 없도록, 그렇게 함께 할게.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그녀는 내 불안을 하나하나 다 반박했다. 네 생각이 틀렸다고. 우리는 잘할 수 있다고. 조근조근 나를 다독였다. 그런 그녀의 말들에 알 수 없는 따스함을 느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가 잘못된 거라고,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바득바득 악을 써가며 우겨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겨울인데도, 눈이 오는 영하의 날씨에도, 그녀의 말 마디마디마다 따듯해져서. 어깨의 떨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마침내 그녀가 다가와 내 어깨를 붙들었다. 거짓말처럼 바람이 그치고, 눈이 그쳤다.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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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에 비해서 못 쓴 것 같네요 ... ㅜㅜ

그냥 참가에 의의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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