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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 - 첫 눈이 오는 날에는 소원을 빌어요
게시물ID : readers_48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닮
추천 : 5
조회수 : 29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02 15:03:34

첫 눈이 오는 날에는 소원을 빌어요.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저기…… 선배님. 커피 드실래요?”

수줍은 듯 살짝 붉어진 볼에 바람을 불어넣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새 그녀의 친구인 듯한 여자 아이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미안…… 나 커피 좋아하지 않아서……”

죄를 지은 사람 마냥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그녀의 볼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강의실을 나섰다.

내 뒤통수를 잡아채려는 친구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다행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복학생이다. 그것도 삼수를 통해 학교에 들어가고 바로 군대를 다녀 온……

친구가 있을 턱이 없다.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사회로 나가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들어가 후배들과 수업을 들으면 후배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모두 나를 향한 욕 같았다.

같은 1학년 그러나 선배인 나란 존재는 후배들에게 상당히 껄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1학년 조별과제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장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조장이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하는 일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후배들은 나이 많은 선배니까 잘 아시겠죠? 라며 모든 일을 나에게 떠맡겼고 나는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하고 혼자서 조별과제를 끝냈다.

그리고 그 조별과제 점수는 C가 나왔다. 후배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나도 1학년이었다.

학교에 적응을 하기 시작 했을 때 쯤 그녀가 나타났다. 아니 그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수업시간에 가장 일찍 들어가고 가장 늦게 나왔다. 그녀는 내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예뻤다.

아니, 사실 그녀는 예쁘지 않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155cm 정도 될 듯한 자그마한 키 그리고 조금은 통통한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

그녀는 활발하고 귀엽고 재미있고 이런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는…… 사랑스러웠다.

사랑스러웠다. 한 여자를 표현했을 때 이 보다 좋은 표현이 있을까? 그러니까 그녀는 사랑스러웠고 사랑스러웠다.

쉬는 시간이 되면 이어폰을 끼고 자는 척을 하며 그녀가 친구들과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교수님이 조를 짜주실 때도 믿어 본 적도 없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결국 신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내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우연찮게도 전공시간에 계속 같은 수업을 들었고 그녀는 항상 내 뒤에 앉아 있었다.

오늘도 수업이 끝났다. 그녀도 이제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에 강의실에서 나가기 위해 천천히 책을 챙겼다.

강의실이 조용해지고 나는 강의실을 나려고 일어서려는데.

“저기…… 선배님. 커피 드실래요?”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한순간 정신이 내 통제를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간신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정신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가 부족했는지 심장이 할증 붙은 말 마냥 미친듯이 뛰었다.

두근…… 두근……

그녀의 친구들도 조용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내 심장 소리가 강의실을 덮은 것 같았다.

그녀도 약간 얼굴에 홍조를 띄웠지만 아마 지금 내 얼굴에선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을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미안…… 나 커피 좋아하지 않아서……”

매일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는 내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니.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숨이 막혀 쓰러질 것 같았다.

속으로 병신, 머저리를 외치며 그렇게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그리고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그녀가 학교를 오지 않았다. 설마 나 때문에? 아니겠지? 잡생각이 들었다. 수업시간 내내 그녀의 친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왜 안왔냐고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 친구들은 그렇게 계속 내 주위를 멤돌며 주문을 외웠다. 정은이 왜 안왔어? 라는 ……

주문에 효과가 있었다. 나는 내 의지가 아닌 주문의 힘으로 과사에 찾아가 그녀의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었다.

그리고 무작정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가서 문자를 보냈다.

-집 앞이에요-

30분 1시간 2시간…… 차마 전화는 하지 못하고 문자 한통을 보내고 하릴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나자 그녀가 나왔다. 그녀는 예뻤다.

“오빠 참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남자로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녀와의 사랑이 너무 빨랐던 걸까? 그녀와 나의 사랑은 정말 빠르게 끝났다. 어느새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그리고 첫눈이 내렸다.

첫 눈이 오면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나의 약속을 그녀가 기억할까? 헤어진 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그녀와 나.

서글픈 미련은 마음 속에 담아둔 채 창 밖에서 솜털처럼 가볍게 내리는 첫 눈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그녀가 다시 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소원을 빌며 나를 쳐다보는 듯한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는데 집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집 밖으로 나간 후 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멍하니 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한동안 감기에 걸렸다. 기말고사도 치루지 못하고 집에서 앓아누웠다.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서울에 폭설이 내렸다.

그녀의 눈망울 같은 함박눈이 사근사근 쌓였다. 눈이 쌓이는 만큼 내 그리움도 함께 쌓였다.

쌓이던 눈이 녹아가듯 내 눈에도 조금씩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흘리면 모든 것이 사실이 되어 버릴까봐 흘리지 못했었는데 결국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 거짓말처럼 감기가 사라졌다. 나는 감기에 걸렸던 것일까? 사랑에 걸렸던 것일까?

긴 한숨을 내쉬고 아직도 내리고 있는 저 함박눈을 내 몸으로 느끼고 싶어져 집 밖으로 나갔다.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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