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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그대에게 쓰는 편지란
게시물ID : readers_50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제이니
추천 : 7
조회수 : 43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12/02 20:23:03

몇가지 지키지 않은 것들이 있어 글 삭제하고 다시 올립니다

죄송합니다..ㅜㅜ

 

눈팅만 하다가 써봐요^^

 

-

[그대에게 쓰는 편지란]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하고 시작하는 소설이 있어.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니 생각이 나네. 사랑하는 나의 사람.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당신이 이리 귀하게 생각될 줄이야. 여기 강원도에 와서 느끼는게 많아지네.

이 맘쯤이면 여기는 항상 눈이 오지. 그래서 당신이 여기 오자고 한거 맞지? 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당신. 당신이 앞으로 내 손을 잡고 눈길을 걸으면서 웃는, 까르륵 거리는 웃음을 보지 못한다는 게 나는 못내 아쉽게만 느껴지네. 당신은 지금 내 옆에서 링-겔을 맞으면서 아이같이 자고 있어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겠어.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이 앙상하게 마른 손과 뜯겨진 입술이 내 눈에 밟혀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당신은 알까?

나는 유난히 내 새끼들보다도 더 당신 속을 썩였던 것 같네. 우리 헌석이 돌 즈음이었나? 그 아이를 낳고 나서 우리 관계가 많이 소원해졌지. 요즘이라야 애들이 많이 배워서 애 낳고 나면 우울해지고 기분도 멜랑꼴리해진다고들 하지만-우리 때야 뭐 그런게 있나. 장모도 없어 산후조리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뒷끝이 안 좋았다는 당신의 얼굴은 항상 찌푸려져있었고 원래의 당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 거기다 대고 나는 매일,

"거, 남의 세간살이 봐주는 사람 낯짝이 왜그래? 어디 제사지내러 가는 줄 알것어?"

하고 당신 속을 긁어대는 이야기만 해댔지. 참, 남의 집살이가 그렇게 쉽지 않은 걸 어렸을 적부터 알아왔으면서도 힘든 당신에게 왜 그리 쏘아부쳤는지, 계속 생각할 수록 미안해. 하지만 나는 그때 깨닫지 못 했지. 내 평생에 당신에게 두 번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데 첫 번째가 바로 이 담이야. 어느 날인가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눈을 뜨고서 알아차렸지. 방에서 눈을 떴는데 웬 모를 여자가 눈 앞에 있어 힘껏 밀치고 식겁해서는 방문을 열어보니 당신은 그 추운데 마당에서 수도꼭지만 뻑뻑 닦고 있었어. 그 때 당신은 울었었나, 화가 나 있었나. 나는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했었을까? 사과를 해야 했었을까? 그런데 나는 당신의 그 모습이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가만있는 당신과 등에 업힌 헌석이에게 놋대야를 집어던지고는 잠이 덜 깬 여자 멱살을 잡고 다시 휭, 하니 나가 버렸어. 나중에 얘길 들으니 당신이 있는 방에 들어가,

"예술가는 예술을 행해야 하는 법이야! 울상짓고 있는 여편네 보고서는 예술이 나오지 않아."

하면서 당신을 벽으로 밀쳐놓고는 그 여자를 부둥켜 안고 내가, 당신이 보는 앞에서 잠을 자 버렸네.

그 후로도 미안하다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 집안 세간을 다 부쉈더랬지. 그래, 알아. 둘째 민석이가 그때 내가 던진 접시 파편에 눈썹을 맞아 지금도 눈썹이 끊어진 것마냥 흉터가 있지. 그러면서도 둘째 민석이, 셋째 원석이, 넷째 나경이 이렇게 네 남매를 낳았네. 당신이 참 힘들었겠지. 왜 그랬을까. 꼴에 체면을 챙겼었나. 글쓴다고 유세를 떨었었나. 술을 마시면, 술을 머리 끝까지 차 오르도록 퍼 마시면 글이 써질 것 같았었나. 나름 소설가라고 자부했던 내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권태(倦怠)로와진 히-트작가'라고 쓰여진 기사에 내 사진을 보니 참 슬펐네. 당신도 알잖아. '자부하는 상', '당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두 작품을 내가 얼마나 끔찍이 아꼈는가. 그런데도 나는 당신에게 다시는 못 지울 일생의 두번째 잘못을 저질렀지.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한 번 맛을 들이고 나니 그 '대마'라는 게 얼마나 사람을 매혹시키던지. 탐스럽게 열린 복숭아 열매를 표현하고 싶으면 대마를 펴서 생동감 있는 '환각'을 보면 되었고 매혹적인 여인의 몸뚱아리를 글로 써 보자면 그걸 피고서는 환상으로 내 눈앞에 펼쳐진걸 만져보면 되었었고. 그걸 글로 옮기면 어찌나 흡족했던지 당신은 알까(물론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또 연기 자욱한 방에서 번지르르하게 생긴 백호를 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아득하게 애 울음소리가 들리더라는 거 있지. 처음엔 무시하려다가 당신이 어디 갔나, 하면서 나가려던 차에 울음소리가 뚝 그치더라고. 그래서 궁금해서 문을 열어제꼈더니 헌석이가-벌써 8살이었더라고. 그 아이가 갓난 나경이를 안고 착하지, 울지마, 하고 달래며 안아들고는 원석이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집 청소를 하는데... 난생 처음 그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어.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에 대마 같은 생각일랑 훠이, 하고 달아나버렸지. 그 후에도 몇 번 손을 대긴 했지만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게 까마득한 옛날인 것처럼 기억조차 나질 않네. 그러고서 방에 다시 들어와 내가 쓴 원고를 보니 웬 지렁이 새끼가 한마리 꾸물대더만.

여보, 당신한테 참 미안한 일 많이 했네.

처음에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하고 쓴 이야기가 당신에 대한 이야기란 걸 당신은 알았을까. 다시 마음을 먹고 이 책 한 권을 써내려가면서도, 애들이, 나경이가 대학을 갓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당신과 나는 여전히 남남 같아서 선뜻 다가가지 못했어. 시간은 많았지. 그 긴 시간동안, 내가 이 책을 써 내려가는 시간의 몇 갑절이나 되는 시간을, 당신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당신은 나를 무서워했어. 나도 당신에게 퉁명스러웠지. 이런 시간을 서로가 견뎌내기엔 무리였을까. 당신이 병이 났네. 어느 날 자주 가던-그 때는 가지 않던 호프집에서 전화가 왔던 날 비로소 후회했어.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구나.

당신은 뇌종양이랬어. 의사가 하는 말이 더 가관이었지.

"악성이셔서 많이 아프셨을 텐데... 평소에 두통약을 많이 드시거나 아프다고 하신 적 없습니까?"

"아닙니다. 이 사람이 아프긴.. 안아파요."

"여기 보시면 위에 이 점 큰 거 보이시죠? 간이랑 여기 아기집이랑.. 장까지 다 이 점들이 있잖습니까. 이게 다 암이 전이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당신은 울었어. 세상에 태어나서 당신이 그렇게 울은 건 처음 봐서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하고 당신을 그냥 쳐다볼 수 밖에 없었지. 나중에야 원석이놈이 아버지, 엄마 좀 안아서 다독여주세요, 하는 말을 듣고서야 당신을 9년만에 처음 손을 잡고 끌어안아봤네. 올 때도 처가집 부엌일에 거칠어져 있던 손이 이제는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곱고 튀김기름에 화상을 입어 더욱 미워진 손을 보니 하염없이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걸 당신을 알았을라나. 정신을 차린 것 처럼 말이지....

우리 마지막이겠구나. 이 눈 내리는 풍경이. 당신은...

내 평생동안 바라봐야 했었던 걸 지금 보고 있네. 평생동안 쥐고 있어야 할 손을 차가운 바늘이 꽂힌 다음에야 쥐고 있네.

다음 생에는 부디 나랑 다시 만나서 나한테 듬뿍 사랑받는 사람으로 태어나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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