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이거이거 버려요. 출판해주는 곳 아무도 없을 테니까. 안가고 뭐하세요? 가세요 가. 소설쓰면 다 소설인줄 아나 뭔"

 

또 퇴짜다. 벌써 6번째라서 그런가 이젠 익숙하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썩 가볍진않다.

 

"다녀왔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하며 집에 들어왔다.

 

"그녀야! 어떻게 됬어? 해준데? 출판맡아준데? 그렇데? 말해봐 그년아!"

 

아, 참고로 내 이름은 김그녀다. 김그녀. 듣기만해도 뭣같지 않은가! 들어도들어도 뭣같아서 엄마아빠한테 개명을 요구했지만 참으로 고귀하고 신성하신 무당님께서 이 이름이 아니면 안된다나 뭐라나..그래서..완강하게 거절-당했다. 망할무당년

 

"6연패 성공!"

 

일부러 활력소 같은 느낌으로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우리딸! 사랑하는 우리 밝은 달! 몸에 힘들어가게 해주는건 우리딸밖에 없네? 하---참"

 

예상했다. 이건 나의 백조깃털이 더욱 더 한껏 뽐내게 되었을 때 말하는 일종의 갈구기다. 이럴땐 애교가 필수다. 애교는 이럴 때 쓰라는 거 아닌가.

 

"맞지? 내가 엄마 힘내게 하는데는 선수라니까? 그치?"

 

"지금 아빠 올 시간 됐으니까 참는다 으잉? 엄만 밥하러나 간다."

 

나에게 좋은소식과 나쁜소식이 생겼다. 좋은소식은 엄마의 갈굼을 피했다는 것.

나쁜소식은 아빠가 곧 온다는 것이다.

아빠가 오는게 뭐 어떠냐고?

평소에 아빤 위트, 재치, 유머러스 이 말이 곧 아빠일정도로 재밌으신 분이다.

하지만 이 상황처럼 내가 퇴짜를 맞을 때면 이 때의 아빠의 딸바부심은 정말 버틸 수가 없다.

 

'거 출판사 어디야? 어디 감히 우리의 딸을 거부해? 그녀야, 말해보렴. 응? 응? 거기서 너 무시했지? 응? 아 어떤 듣보잡 회사 따위가 어디서! 쳐 죽일 놈 어디야, 어디냐고-?' 이러신다 정말로.

 

그보다 더한건 모든 출판사에 전화해서 어딘지 알아내고, 직접찾아가 따지신다.

이것 때문에 출판 팅긴 것을 아빠에게만은 말할 수 가 없다.

역사적인 첫 퇴짜 때 말했다가 저 꼴이 났다.

내가 못쓴건데 내가 신중못한건데 내가 재미없게 쓴건데 모든 건 내 탓인데.

그런데 출판사에 찾아가서 따지고 엎어버리니 곤란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 사건으로 뭔가 마음속에 따뜻한 무엇이 맺혔다.

내가 실수해서 욕을 먹더라고 나를 감싸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게 바로 가족이구나.

 

 

"아 참, 그녀야 아빠 어떡하게?"

 

엄마가 요리를 하다말고 말했다.

 

"..당연히 아빠한테 말하기 없기!..."

 

"엄마생각도 그러하다"

 

그러하다? 엄마께서 또 상황극 한다. 요즘 사극을 보는지 여왕 목소리를 따라한다.

 

"그 쫌 하지마 오글거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왜- 재밌는데"

 

역시 엄마다.

 

"아 엄마나 밖에 나가봐야돼 약속있어."

 

"밥은? 다했는데? 먹고가지? 급한일이야?"

 

"응 밤에 올지도 몰라"

 

"그럼 갔다와. 하지만 외박은 절대 안된다 알지? 무슨일 있으면 전화하고!"

 

"아 예 다녀오겠습니다."

 

탈출이라 해야하나? 어찌됬든 약속은 태초에 없었다.

엄마 속인 건 좀 미안하네.

 

 

나온 이유는 그냥 공원 걸으려고 나왔다.

퇴짜 맞을 때마다 한적한 공원에 간다.

혼자 걷다보면 씁쓸쓸쓸한 기분이 살며시 놓아진다.

지금이 8시니까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으나 웬일로 사람, 아니 커플들이 북적북적했다.

괜스레 옆구리가 서늘하다.

커플들을 보니 씁쓸쓸쓸한 기분이 더욱더 팽이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게 꿈이었으면....'

 

나의 인연, 나의 낭군은 어디갔나 하며 커플들이 없는 벤치에 앉았다.

한 10분쯤 멍하니 앉았을까?

갑자기 어느 고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다가와서

 

"사랑합니다 결혼해주세요"

 

라는 말로 갑작스러운 헌팅을 당했다.

 

뭐지? 나를 아나? 나 모솔인데? 왠 갑자기 청혼 드립이여? 근데 고등학생이잖아.. 받아주면 아청법에 걸리나?

이렇게 생각할쯔음 멀리서 친구로 보이는 남고생 2명이 다가와서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장난이었습니다... 이 놈이 내기에서 져가지고.... 벌칙으로 청혼하기였는데....."

 

아------ 그럼 그렇지.. 나따위가 뭘 바랬을까. 역시 신은 내 편이야 내 편일세.

죄송하다는 말로 떠나가는 남고생 3명.

고백이란 말이 유유히 날아가고 장난이라는 말이 대신한다.

꽤 괜찮았는데..허허. 기분이 좋으면서도 슬퍼진다.

설레었었던게 쪽팔려진다.

 

쪽팔림을 뒤로하고 공원을 걸었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듯이.

 

살며시 웃었다.

 

 

 

내 걸음에 따라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

나를 반긴다는 듯 흔들리며 춤추는 나뭇소리,

검은도화지에 하얗게 반짝이는 작은 별의 시선.

 

살아있는 느낌, 내가 존재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름답다는 말밖에 못할 글을 쓰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글을 쓰자,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또다시 연필을 잡자 또다시

 

 

눈이 온다.

어둠밖에 없는 곳에서 빛이 내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망이 보인다.

꿈이 보인다.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