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유과거일랑 포기하구.. 비평이나 해주십사 하구 올려보아요
게시물ID : readers_51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뇽꾸리
추천 : 2
조회수 : 213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12/02 23:46:57

좋은 글들이 너무 많네요~

올렸다가 비평 한줄 없이 묻혀서 아쉬운 마음에 읽고 느낀점이라도 써주십사 하구 글 올려 보아요 ㅜ..ㅜ

이미 과거일랑 포기 하구 ㅎㅎ 히힛

취지가 너무 너무 좋은 대회인 것같아요 ㅎㅎ 상품 없더라도 이렇게 종종 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

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활력이 되는것 같네요^ㅇ^좋은 밤 되세요

읽구 감상평이라도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닷 헤헷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검정 부츠를 신고 그녀의 작은 손 위에서 찰나와 같은 속도로 사라져 눈들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때처럼, 우리가 나란한 보폭으로 손을 잡고 걸었던 그 날처럼.

 

 

그녀의 시선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내게 머무르자, 귀가 후끈 달아올랐다. 치밀한 고요함, 새하얀 적막. 5년이란 시간이 무색할 만큼 내 신경은 오로지 그녀만을 향해 바짝 곤두서 있었다. 차마 그녀의 눈을 볼 수 없었기에 그녀의 새까만 머리카락에 쌓인 고운 눈 입자들만 바라보았다. 그 시절의 우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외로움에 노련해졌던 내 감각들이 왜 다시 희망이란 놈을 찾아서 움직이고 있는지, 나는 어느새 내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고등학교 동창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처럼 얼굴에 살풋이 미소를 띠운 채 내게 안부를 묻는 그녀의 입술이 야무지게 움직였다. 새하얀 얼굴에 도드라지는 저 붉은 입술이 좋았다. 저 입술을 참 좋아했었다.

 

“응, 잘 지냈어. 너도 좋아 보이네. 어디서 차 한 잔이라도 할까?”

 

지금이라도 나를 왜 떠난 것이냐고 그녀의 자그마한 어깨를 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에서 엿보이는 일상적인 평온함 때문에 나는 주춤거렸다. 쭈뼛거리며 용기 내어 한 제안에,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고갯짓은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한다.

 

 

그 날도 오늘처럼 눈이 내렸었다. 그 해, 첫 눈이었다. 우리들은 얼마 전에 개봉한 최신 영화를 보고 오던 길이었다. 그녀는 영화가 기대보다 별로였다며 투덜거렸고, 특히 여자 주인공이 자신이 낳은 아기를 버리는 장면이 비윤리적이라고 했다. 그녀는 영화의 구성도 아주 엉망이었으며, 여자 주인공의 연기는 특히 형편없었다고 악평을 쏟아냈다. 내가 느끼기도 그저 그런 B급 영화였지만 그렇게 화를 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날따라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3년을 만나온 내게, 그녀의 기분을 파악하는 일 정도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으나 그 날은 그녀가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잔뜩 차가워진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말하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래!’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눈에서 처연한 눈물이 끊임없이 샘솟고 있었다. 나는 결국은 주저앉아서 꺼이꺼이 울어대는 그녀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내게 이별을 말했다.

 

 

“오랜만에 너를 보니까,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구나, 싶네. 23살의 나 역시,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 우리. 내 앞에 앉아 있는 너도 벌써 30살 같아 보여.”

 

실없는 농담을 하고서는 킥킥 하고 웃는 그녀의 버릇은 여전하다. 짙은 녹색의 목도리를 풀어서 옆의 의자에 걸터 놓으면서 그녀는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 그녀와 헤어졌을 때, 그녀를 붙잡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매일같이 집 앞에 찾아가기도 하고, 혼자 우리가 사귀어온 날짜를 헤아리다가 기념일마다 연락을 하기도 하고, 술을 진탕마시고 새벽에 전화를 해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횟수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줄어들어갔다. 그녀대신에 다른 여자를 만나보기도 했다.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 보기도 하고, 친구들이 소개해 준 예쁘장한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해보기도 했었다. 그 외에도 몇몇을 만나보았으나 다른 사람 옆에서 단 한 번도 진심으로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늘 그녀 생각이 났다. 밥을 먹다가도, 볼일을 보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업무를 보다가도, 문득 문득 생각나는 그녀는 내 삶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녀가 이사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를 찾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날 받아줄 거라는 생각은 진작에 접은 지 오래였고, 이제는 그녀 없이도 살만했다. 그녀를 생각하는 그 시간들은 이제 내게 죽을 만큼 힘든 감정보다는, 풋풋함이나 아련함 같은 종류의 씁쓸함을 가져다주는 시간들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것이 나의 오만함이었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크지 않은 눈 속에서, 5년 전의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28살, 지금의 나를 발견한다. 묻고 싶은 말이, 하고 싶었던 말이 갓 나온 커피 잔의 김만큼이나 빨리 공중으로 분해되어 간다.

 

 

“그 때, 난 너무 어렸어.”

 

그녀의 손가락이 은밀하게 움직인다. 탁-. 탁-. 그녀의 손톱 위에 거의 벗겨져 가는 매니큐어가 그녀의 무신경함이 여전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는 좀처럼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묻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이토록 뜸을 들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그녀를 대함에 있어 언제나 치졸하고 고집스러운 사내 아이였다. 참을성 없는 내 어린 날들의 치기를 그녀는 너그러운 관용으로 보듬어주곤 했었다.

 

“책임의 무게를 지기에 너와 나는 너무 어렸어. 난 무서웠고. 너도, 누구도, 아무도 믿을 수 없었어. 내 인생의 오점을 남기기도 싫었고.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어쩌면 나는 너에게 말했어야 했어. 하지만 그 전에, 너는 내게 믿음을 주었어야 했고. 이건 나의 잘못도, 너의 잘못도 아니야. 이건 우리 모두의 잘못인거지. 아직도 그 날들을 생각해.”

 

수수께끼 같은 그녀의 말들은 커피만큼이나 썼다. 나는 그녀의 말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야만 했다.

 

“그 때의 난, 네가 그걸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지만 그 일은 내게 아직도 무거운 짐이야.”

 

그녀는 울지 않았다. 마구 뒤엉켜 난동을 부려야 할 내 신경들도 힘없는 노인처럼 고장이 난 듯 잠잠했다. 오늘 이 시점에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일은 다만 5년 전 그 시절, 일어났던 일이었다. 나는 그 것을 이렇게 오랜 시간이 난 뒤에야 알게 되었을 뿐이고. 잠시 약해졌던 눈발이 거세지면서 그녀와 내가 있는 자리의 창문을 연신 두들겨 댔다. 힘없는 공격이었다. 그녀도 나도 말이 없었다.

 

“이만 일어날게. 너와의 만남이, 내가 이제 그 문제에 대해서 버틸만해졌다는 걸 보여주는 증명해주는 것 같아 기쁘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모든 말들을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그녀는 눈이 녹아내린 물로, 더러워진 검정 부츠를 티슈로 닦으면서 후-, 하고 다시 한숨을 덜어냈다. 짙은 녹색 목도리를 목에 다시 매고, 그녀는 거센 눈발이 몰아치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지난 5년간 그녀가 겪어왔을 무거운 신음소리들이 내게 고스란히 옮겨왔다. 꽤나 후련한 표정으로 커피숍을 나가는 그녀에게서, 나는 미련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슬픈 긴장만이 나를 휘감았고, 나는 애써 다른 곳으로 생각을 옮겨보려 노력했다.

 

 

“후-.”

나도 모르게 그녀와 같은 농도의 짙은 한숨이 베어 나왔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