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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눈
게시물ID : readers_51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면성
추천 : 1
조회수 : 2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23:55:15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찬 유리너머 아래를 내려다보면 쌓인 눈 사이로 빈 구석에 그녀가 팔을 벌린 채 서 있었다. 하루에도 1시간씩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건물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 약 맞을 시간이네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유리에서 손을 때고 멍하니 약을 바라보았다. 내 안의 병을 치료하는 약을 맞기 전에 진토제를 보는 순간부터 구토감이 올라왔다. 이제는 숫제 가슴의 관을 잡는 간호사의 손에서 나오는 소독용 알코올의 냄새가 민감해진 코에 죽을 것 같이 풍겨왔다.

이제 겨우 사흘 째 인데, 벌써 죽을 것만 같네요.”

“-하지만 치료하러 왔으니까, 그 정도는 버텨내야죠.”

흐릿하게 보이는 얼굴로 웃으면서 관을 링거와 연결하고는 병실에서 나갔다. 관으로 연결된 통에서 들어오는 진토제에 속이 울렁거린다.

몸은 어떠니. 토할- 거 같아?”

엄마는 내 곁에서 나보다 더한 몰골로 나의 몸 상태를 물어보고 있다.

처음 조직검사를 위해 들어갔던 수술에서 엄마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혼절했었다. 그때 잠깐 실어증을 겪은 뒤로는 말이 약간 어눌하게 변했다. 그 후로는 항상 내 걱정만 하시면서 계시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겪는 아픔은 가시지 않는다.

아뇨, 괜찮아요. 이제 세 번째 맞는 건데전 걱정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 그래. 너도 몸- 어디 안 좋으면 얼른- 간호사한테 말 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창문 밖을 봤다. 그녀가 없다.

 

오늘은 치료가 중단 됐다. 어제 저녁부터 혈소판이 부족해진 몸이 코피를 멈추지 못해서, 결국 코 속에 거즈를 대는 것을 마치고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오늘도 엄마는 잠을 참지 못해서 주무시고 계신다. 엊저녁 피가 멈추지 않아서 간호사를 기다리는 동안에 피 묻는 솜을 갈아주겠다면서 당신께서는 눈뜬 밤을 지새우셨다.

그동안의 치료에 힘이 빠져버려 몸을 쉬이 가누지 못해서 일어나려고 하면 어지럼증을 느낀다. 하지만 이 시간은 그녀가 눈을 맞으러 나오는 시간이다. 그녀가 그곳에 있는 이유에 이끌려 외투를 단단히 입은 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있었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문 만을 보았다. 긴 코트, 거기에 걸맞은 장발까지. 그녀는 그런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정면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눈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암센터에선 볼 수 없는 장발이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달했다. 그녀가 먼저 나가는 것을 지켜보곤 뒤따라 내렸다.

 

그녀는 어김없이 그 자리, 그 곳에서 눈을 맞이하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만 쳐다보던 난 다리에 한기가 스며듬에도 불구하고 눈밭을 지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요?”

항상 궁금했던 그것을 그녀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곁눈질로 나를 훑어보곤 말았다. 확실히 나도 몰골이 좋진 않다. 머리는 이제 빠지기 시작해선 조금씩 비인 곳이 보이고, 어제까지 병원에서 나오는 음식냄새에 토까지 하면서 초라해지기 시작한 내 모습으로 남들과 대화하기는 거북했다.

단지- 아무도 와주질 않아서. 눈이라도 기다리는 중이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넌 그렇지 않니? 가족만이 나를 봐주곤, 남들은 그냥 얼굴만 내비치곤 다시 돌아가. 다시 나에게 와주는 사람은 없어. 그런 게 슬퍼. 그래서 눈이라도 맞으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 여기에 서있어.”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간다. 여기로 올라오기 전에 있었던 병원에서 사람들은 얼굴만 비추고 돌아가선 나에게 또 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치료받으려면 감기는 걸리면 안 되잖아요.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녀는 옅게 웃었다.

가족이 엄마밖에 안 계셔. 나이는 지긋하게 드셔서는 딸 걱정에 잠 못 이루시는 노파가. 하지만 그래도 내일 퇴원하니까. 내가 사는 곳에선 이런 날엔 눈을 보긴 힘드니까, 조금 더 맞고 싶어.”

그렇다면……. 이야기 잘 했습니다. 쾌차하세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얼른 그 자리를 떴다.

 

병실 문을 여니 엄마가 일어나서는 나를 봤다.

어디- 다녀왔어?”

잠깐 아래요.”

엄마를 바라보는 내 눈시울이 남몰래 차가워간다.

그래-.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가지.”

괜찮아요, 엄마.”

괜찮아요, 엄마. 아까 들었던 그녀의 말을 곱씹으면서 몸을 바라봤다. 그래, 여긴 치료하기 위해서 온 거야. 그렇게 되뇌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눈이 뜨겁게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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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내에 맞출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썼습니다.


그녀를 제외하면 전부 논픽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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