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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 - 시선(視線)
게시물ID : readers_51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불불불1
추천 : 2
조회수 : 24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2/02 23:58:24

시선

- [視線] 어떤 대상에 대한 주의와 관심

 

1.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사진으로 보았던 것 보다 훨씬 더 귀여워 보였다. 마치 나와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나는 옆에 있는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더라도 뚱뚱하고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하는 폐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더라도 너무 추한 모습이다. 이런 내가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은 도저희 상상할 수 없다. 아마도 그녀도 내 실체를 보게 되면 분명히 실망하겠지. 그렇다. 애초에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더욱 빛났고 나는 더욱 추해져만 갔다.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보니 약속시간이 한 시간도 훌쩍 지나 있었다. 고맙게도 그녀는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당장 그녀 앞에 가서 너의 실체를 밝히던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전화를 걸어 그녀와의 만남을 포기하고 돌아가던지 결정을 하라고.

휴대폰 속 사진첩을 뒤져 그녀에게 거짓으로 보냈던 사진을 열어 보았다. 실제의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남자가 나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나에게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헛된 욕심을 부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 사진을 보고 나니 더욱 그녀를 실망 시켜선 안 된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다시  한 번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나를 기다리며 눈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 욕망에서 벗어 났다.

그래, 나 따위가 그녀를 기다리게 하는 건 죄악이야. 더 이상 그녀가 눈을 맞게 해선 안되!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 주었다.

저기 있잖아..”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초라하게 들렸다. 나는 빠르게 내 할 말만을 마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조금 더 들으면 다시 그녀와의 만남에 대한 욕망에 빠질 것만 같았다. 통화를 마치자 몰려오는 좌절감에 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갔다. 나는 스스로를 합리화 했다. 그래 잘한 거야. 난 잘한 게 분명해. 이전처럼 인터넷상에서만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에 만족하는 거야.

쓸쓸한 발걸음을 이끌고 돌아가려는데 휴대폰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에게서 도착한 문자였다.

[오빠 많이 아픈 건 아니죠? 꼭 약 먹어야 되요! 그리고 저는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마세요^^]

한손에 휴대폰을 그대로 든 채로 나를 재빨리 가던 길을 돌아가 그녀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어찌되어도 상관없었다. 내 실체가 드러나도 되었다. 그녀가 실망을 해도 되었다. 나는 그녀를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다시 보았을 때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보낸 사진속의 남자를 닮은 남자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2.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붉게 칠해진 입술과 달리 앳된 얼굴과 아담한 체구는 그녀를 아직 소녀로서 보이도록 하였다. 코트 아래쪽으로 드러나 보이는 치마의 체크무늬가 제법 눈에 익는다. 왜 일까? 그것은 아마도 두 번째 그녀의 것과 같아서 일 것이다. 두 번째 그녀도 고등학생 이었으니까. 두 번째 그녀와의 추억이 떠올라서 인지 싸늘하게 식어있던 몸이 조금 달아올랐다. 약간의 달아오름은 좋은 것이다. 적당히 상기된 얼굴은 호감을 주기에 적당하니까.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서투르게 칠해진 화장이나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보아 그 대상은 남자 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애인이겠지. 전화기를 붙잡고 한 시간째 기다리는 모습이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게는 좋다.

순간 그녀의 전화기에서 벨이 울리고 그녀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전화기를 귀로 가져갔다. 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귀를 최대한 기울였지만 양옆으로 재잘대는 아줌마들의 목소리 때문에 대부분 제데로 듣지 못했다. 망할 여편네들 같으니라고! 드문드문 들려오는 내용으로는 기다리던 애인에게 걸려온 통화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예컨대 지금 거의 도착했다는 정도의 내용이겠지. 제길! 안 좋은 예감에 조금 불안해졌다. 다행히도 곧 통화를 마친 그녀의 표정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아주 좋은 일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 후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았다.

통화를 마친 그녀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고민을 하는 듯했다. 그 행동이  제법 어울려 그녀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잠시 후 저 사랑스러운 얼굴이 공포에 휩싸인 체 지을  표정을 상상 하고 말았다. 아마도 내 상상보다 그녀는 훨씬 더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겠지.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를 짓밟고 싶다는 생각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지나친 흥분은 오히려 그녀에게 거부감을 줄 뿐이니까. 주변을 살피며 흥분으로 떨리는 손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나를 이렇게나 애달게 하다니 그녀는 분명 내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무언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잠시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그녀가 내 눈에 띤 지 두 시간이 지나고, 이제 그녀를 만날 때가 되었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사람 좋은 미소로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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