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유과거] 산문 - 차가운 길과 절취선
게시물ID : readers_52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느하루
추천 : 1
조회수 : 2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3 00:07:10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습니다.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다음에 또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그렇게 마냥 떠나가는 기차를 보고 하염없이 그저 서 있기만 했습니다.

서늘한 공기와는 다르게 기차 안은 자리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 많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나는 외로이 창밖을 바라보며 좁다란 의자 사이사이를 걸어 다녔고,

오지 않을 연락들과 이미 멀어진 누군가를 그리워했습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이 덧없다고 느낄 때

나에게 유일한 의미가 되어 주었던 이를 기억해 냈습니다.

그 사람은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의 곤란한 표정 너머에서

다음 기착지를 알리는 안내 방송 사이에서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그 목소리에게, 나는 그 상념들에게 덧없는 속마음을 고백해야 했습니다.

이마 위로 번지는 땀방울을 닦을 틈도 없이 나는 나의 감정을,

나의 생각을 모두 토로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습니다.

좁다란 길 사이에 서서, 기차와 기차를 연결하는 덜컹거리는 소리에 둘러싸여

나는 무엇인가를 염원하며 기도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나는 알 수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지금까지 기차역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을지도 모르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이것이 진정 옳은 행동인지에 대한 고민에 답을 내릴 수 없어 괴로웠습니다.

이런 괴로움을 뒤로한 채 웃으며 달려갈 수 없었습니다.

이미 거절당한 사람은 웃으며 달려갈 용기 또한 없었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음악도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만지작거리며,

텅 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며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어떤 표정으로 당신을 마주해야 할지,

그리고 정말 이것이 잘 하는 일인지도-

기차에서 내리고 이미 쓸모없어진 기차표를 들고 역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독한 사람이 되리라 다짐합니다. 나는 절대 감정을 호소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나는 타인을 위해 눈물짓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기차 밖의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시 겨울이 오고, 내가 바랬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꿈속에서 마주하며 뒷걸음 질 쳤던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웃음과 표현들로 당신을 대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눈 내리던 기차역의, 그 때의 당신처럼 평온했던 말투.

농담 섞인 재잘거림들, 나는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내가 했던 고민과 고뇌와 다짐들을 한켠으로 미루어 두었을 만큼 당신과의 만남은 달콤했고.

나는 또 똑같은 반복을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겨우 내가 내 감정에 솔직해 질 수 있었을 때엔 수많은 변명들이 나를 붙잡았고.

나의 솔직함이 오히려 화살이 되어 되돌아 올 때엔 나는 숨을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주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 감정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운 나의 생각들이.

나만을 생각하며 상대방을 원망하며 지냈던 내 모든 지난날에 대한 일들을 당신이 알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불편했던 관계가 어느덧 편한 사이가 되면서, 

나는 또 예전과 같은 실수들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도 많이 줄었습니다.

이제는 삶의 순위를 억지로 짜 맞추는 법도 배웠습니다.

내가 상처받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속 마음을 상대방이 이해해주길 바라고,

내가 말 하지 않아도 어떤 작은 틈 새로 그들이 나를 똑바로 바라봐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글귀들 사이에서,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말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오늘도 다짐합니다. 나는 오늘도 외면합니다. 그러면서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나를 온전히 인정할 날이 오기를, 변명으로 나를 감추려 하지 않기를.

그것을 보듬어줄 사람이 너이기를. 내 마음은 아마 그런가봅니다. 

보고픈 마음이 넘칠 때, 나는 그 자리, 그 장소에 가지만. 내 마음은 아마 그런가봅니다.


딱, 거기까지만. 그 앞에서 한 번의 손짓, 하나의 작은 행동만 하면 되는 그 순간까지.

내 마음은 딱 그만큼만 나를 행동하게 할 수 있나봅니다.

늦은 저녁에 밤거리를 걷는 것이 유쾌하지 않은 날도 있고,

차가운 바람에 두꺼운 장갑을 꺼내 시린 손을 숨기고.

미끄러운 언덕길을 오르며 춥다는 말을 연신 내 뱉을 때에도,

눈 쌓인 놀이터에서 미친 사람처럼 발자국을 남기며 서성일 때에도,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차가운 눈길 위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냥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리웠다고 변명합니다.

나는 누군가가 기대한 일을 하지 못했고 나는 충분히 납득하지 못했으며,

나는 또 마지막 한걸음에서 되돌아옵니다.

나는 꿈에서 조차 당신을 기다리기만 하고, 당신을 찾으러 가는 순간 눈을 뜹니다.

나는 꿈에서 조차 그리워합니다. 꿈에서 조차 내 마음은 거기까지만. 그 언저리에 머뭅니다.


눈이 내리던 기차역에 당신을 홀로 두고 온 그 순간에도,

나는 멀어져 가는 당신의 모습을 그리워만 했습니다.

슬픈 것 같지만 행복해 보이는 표정, 아쉬운 것 같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 한

그 안도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그저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새겨 넣기 위해 오직 그리워만 했습니다.

내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랬고, 내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당신이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저 그렇게 있어주기만을 바랬습니다. 당신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만 당신을 그리워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행복이 아니라 단지 나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나는 당신이 필요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나를 떠나보냈던 당신이 현명한 선택을 했음을,

그로 인해서 내가 당신을 원망하지 않고 그리워 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음을 오리려 고마워해야 함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텅 빈 기차역에 당신 홀로 서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떠나가는 사람을 더 이상 배웅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그저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비록 용기가 없어 당신의 배웅을 뒤로 한채 긴 여행을 홀로 시작했으나,

당신은 이 삶의 여행길을 함께 걷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한때, 당신의 소울 메이트였던 이로부터-


=====================================================================

시간이 지났네요.. 

예전에 써놓은 글이 있어 약간 수정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왠걸.. 시간이 지날줄이야.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