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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생활 어떻냐고요? 경험담 들려드림 [스압]
게시물ID : humorbest_4041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흐트무지크
추천 : 111
조회수 : 19430회
댓글수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11/07 00:56:36
원본글 작성시간 : 2011/11/07 00:03:45
- 12월, 1월
그냥 신나게 놀음
주변에서 '재수해? 어머 힘들겠다 ㅠㅠ' 라고 하는데
이때까지는 하나도 이해 못했음
'그냥 고3 때처럼 즐겁게 공부하면 되는거 아닌가?' 이런 생각함

- 2월 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추가 합격 못함 
기분이 좀 묘해짐 그렇지면 여전히 놀음
졸업식날 서울대 고대 한대 이대 중대 등등 좋은대 붙은 애들이 활짝 웃는걸 보면서
그리고 걔네들 싸이에 배너가 달리고 새터다 오티다 하며 놀러가는 걸 보면서
뭔가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기분

- 2월 중후반
재수 종합반 개강 시작
시설이 완전 걸레... 내 모교는 시설이나 선생님 수업이나 어느것 하나 빠지는게 없었는데!
5교시 도중 문득 든 생각 '아 수능 잘 못보면 어떡하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짐 그것도 수업 시간인데
빨리 지붕 뚫고 나가고 싶어짐 수업 귀에 안 들어옴
야자를 쨈 친구랑 같이 영화 보러 감
집에 와서 침대에 얼굴 쳐박고 펑펑 울음
고3 6월 모의평가 이후로 공부에 자신감 없어진적은 처음임

다음날도 역시 수업은 귀에 잘 안 들어오고 야자를 쨈
참고로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야자를 짼 적이 한 손으로 셀 정도
집에 일찍 들어오면 엄마한테 혼쭐나고 또 미안해지니까
괜히 혼자서 서울 여기저기 유랑하고 다님 지금도 혼자 유랑하는 버릇 남음
한동안 계속 그럼

- 3월
수업도 귀에 잘 들어옴 공부도 다시 열심히 하게 됨
물론 가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옴
첫 모의고사에서 엄청난 성적을 거둠 자신감 폭ㅋ발ㅋ

- 4월
학원 친구들과 친해짐 (참고로 재수 종합반은 초반에 애들이 서로 말도 안함)
고1 때 좋아했던 여자애가 먼저 대학 가서 남자친구를 사귄다는걸 알게됨
등등의 이유로 공부를 조금 소홀히 하게 됨
구체적으로 말해서 집중력이 흐려짐 자꾸 잡념이 들고 나도 모르게 먼저 대학간 친구들 싸이를 뒤적거림

길 지나갈 때마다 혹시나 먼저 대학간 친구들을 마주칠까봐, 내 초라한 몰골 보일까봐 전전긍긍함
(이때부터 약간의 대인기피증이 생긴거 같음 지금도 나도 모르게 그럼)

- 5월
학원 생활에 완전 적응됨 그냥 학교 다니는 기분 공부도 열심히 함
사설 모의고사를 봤는데 S대 경영 합격 안정권이라고 함 
학원 담임선생님도 내가 성적 급상승했다고 엄청 칭찬해주심
자신감을 넘어선 자만감에 빠짐 

공부라는 것은 약간의 불안감과 위기 의식을 갖고 해야 무한한 집중과 몰입이 가능하고
무한한 집중과 몰입이 가능해야 성적을 조금이나마 올릴 수 있는데
이때부터 그 '약간의 불안감과 위기 의식'이 사라짐

-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봄
고3 본수능보다 성적이 안 나옴
정확히 말해서 언수외탐 백분위가 그때와 같은데
전년도보다 수험생이 수만명 증가했는데 대학 정시 모집 인원(예정)은 오히려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적이 안나왔다고 할 수 있음

엄청난 자괴감과 슬픔에 빠짐
내가 고3때에는 '재수생들은 모의고사 보면 언수외 290은 거뜬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나는 뭔가 무엇이 문제인가' '이러다 재수 망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몹시 불안해짐

(이 무렵 상당수 친구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수능 끝나고 알게됨)
(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4월쯤 생긴 '대인기피증'은 이때에도 여전. 수능 끝나는 날까지도 여전. 지금도 조금 그럼)

- 7월
날이 무척 더워짐
작은 일에도 화가 남
이를테면 언어 문제를 지문을 대충 읽어 틀렸다던가 수리 문제를 계산 실수로 틀렸다던가 친구가 옆에서 깐족거린다던가 지하철에서 내리기도 전에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먼저 탄다던가
혼자서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함
'아 우리 집에 돈이 많았으면 내가 이런 짓(재수)은 안할텐데' '아 저놈(먼저 대학간 애)은 왜이렇게 멋있어졌지 난 얼굴이나 몸매나 걸레같은데'
7월 하순이 되자 이런 스트레스는 극에 달함 
공부를 하다가 괜히 소리를 지른다던가 

다른 친구들은 야자를 째고 노래방이나 PC방 당구장에 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나는 그런 짓을 하면 안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그러지 않음
그러다보니 탈출구가 없어 스트레스가 갈수록 심해짐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바보같음 종종 놀걸

- 8월
이건 정말 세상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음 (궁금하면 겪어보셈ㅋ)
"자살"하지 않은 것이 다행
자주 이를 악 물어서 어금니가 주저않(은 것 같)기도 함 

엄마랑도 자주 싸움
친구하고 주먹다짐을 한적도 있음 (우리 학원만 그런지 몰라도 이 무렵 남자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남)

지금 생각해보면 '성적이 오르지 않아 수능을 또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 것 같음
고3 애들이야 수능 망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얼마나 하겠음
그런데 재수생들은 이미 한번 망쳐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또 망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무척 강함

다만 삼수생 형들끼리 대화하는 것을 엿들었는데 어떤 형(몸과 마음 모두 굳건하게 생겼는데도)이 '...나 정신병자 될거같아' 라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을 듣고
조금 마음이 놓임 '아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이 무렵 상당수 친구들이 나와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수능 끝나고 알게됨)

- 9월, 10월
평가원 모의고사
인생 살면서 언수외에서 이런 점수를 받은 적은 처음임
대충대충 봤던 고1 첫 모의고사도 이런 점수는 아니었음
(ex. 살면서 언어 1등급을 놓쳐본적이 거의 없었는데 4등급이라니)
중학교 때 수능봤어도 이거보단 잘나왔을듯
...

두달 남짓 남은 시점에
성적이 오르긴커녕 폭락, 그것도 엄청난 폭락을 겪으니 
여름에 겪었던 스트레스를 초월함 해탈

아까 말했듯, 공부에는 약간의 불안감과 위기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거슨 정말... 뭐랄까... 인생이 끝난 느낌...
마치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이랄까...
당연히 공부는 잘 되지 않음

웃음을 잃어버림
아니 살 이유를 잃어버림

다만 4월 편에서 말했던 여자애가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됨
이거 아니었으면 정말... 

- 11월 초
왜 그런지는 몰라도 심경에 약간 변화가 생김
언어는 원래 어릴때부터 잘했으므로 만점 받겠다는 자신감
수리는 계산 실수만 안하면 만점 받겠다는 자신감
탐구는 원래 걱정 안했음

다만 외국어는 정말정말 어려워서 불안감에 떨어서 살음 하루에 5시간은 영어 공부만 한듯
근데 그 불안감이 너무 커서 수능 일주일 전에는 글이 잘 읽히지 않음
매우 쉬운 문장도 한번에 못 읽고 두세번씩 읽고 나서야 이해함

수능 시험장에서 이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런 불안감이 내 점수를 더욱더 갉아먹겠다는 생각이 들음

머리를 식히기 위해 여의도 한강공원 가서 조명과 야경을 한번 봄
오는길에 전철을 탔는데 객실내 전광판에 뜨는 자살방지 문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뻔함

수능 전날
그냥 왠지 모르게 걱정이 안 들음 
작년 수능 전날만큼은 아니지만 오히려 자신감이 생겨남
영어 지문도 굉장히 잘 읽힘 

게다가 아까 말한 여자애한테 긴장된다고 하니
수능 잘보라며 긴장 안드는 방법을 장문의 문자로 보내줌
기분이 더욱 좋아짐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함
만일 이날도 불안과 스트레스에 휩싸여있었으면 난 삼수 혹은 자결을 했을...

- 수능 당일
잠도 푹 잘잤고 
MBC 뉴스투데이 여자 앵커의 미소를 보면서 기분 좋게 집을 나섬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우리 반에 나 포함 고교 동창 재수생이 5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음이 엄청 편해짐
시작 전에 수능 N제 언어를 한두 지문 풀었는데 역시 다맞음 ㅋㅋ
자신감 폭ㅋ발ㅋ

시험 시작

...이건 그냥 어려운게 아니라 너무너무너무 어려움

근데
평소 모의고사였으면 급당황하여 시험을 내리망쳤을 텐데
'에라이 그냥 삼수나 하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시험을 봄
그랬더니 오히려 글도 잘 읽히고 문제도 잘 풀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잘 풀림

너무 마음이 편한 나머지 탐구 시간에는 문제를 대충대충 읽음 (이거 때문에 한 과목 완전 망했다 ㅅㅂ)

- 결론
결과는 만족스러운 정도 
원서질도 잘해서 원하던 학교에옴
다만 7~10월에 스트레스로 뇌세포가 많이 죽었을 생각을 하니 안타깝긴 함





이번에 수능 보시는 여러분
불안감이 가장 큰 적입니다

정말정말 불안하시면 '에라이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보세요
오히려 그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에이 얼마 안남았는데 공부해봤자 무슨소용이여' 이런 생각하시면 절대 안됩니다
저같은 경우는 수능 전날 한 공부 덕분에 대략 10점 더 받았습니다
1점에도 수백 수천명이 몰려있는 경우가 많은데 10점이면... 얼마나 위력이 큰지 아시겠죠?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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