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시계
게시물ID : readers_53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연.
추천 : 2
조회수 : 1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3 12:27:45

째깍. 째깍. 째깍. 조용한 방 안에 시계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익숙한 소리, 익숙한 풍경, 익숙한 시간. 그저 흘러갈 뿐이다. 가끔은 저 시계를 창밖으로 내던질까하는 생각도 든다. 규칙적이고도 꾸준히 흘러가는 저 소리가 무척 불쾌하다. 그저 흘러갈 뿐이다. 불쾌하게.

 

요즘 뭐하고 지내?”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의 저편에서, 당연한 듯한 말이 넘어온다.

별일 없어.”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로 뭐하고 지내냐고. 여전히 글쓰고 알바하면서 지내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이런저런 얘기할만한 것들이 있을 거 아냐.”

그런 게 뭐가 있겠어. 항상 똑같지.”

에이 하다못해 진상 손님 때매 짜증났다던가, 글쓰는게 막혀서 답답하다던가 뭐 어쨌든 할 말이 없진 않을 거 아냐.”

뭐야 내가 투정부리는 기계냐.”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아 몰라 됐어. 알바 나가야돼. 끊는다.”

.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아무래도 좋았으면 좋겠다.

 

째깍. 째깍. 째깍. 조용한 편의점에 시계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익숙한 소리, 익숙한 풍경, 익숙한 시간. 그저 흘러가고 있다. 그래도 가게에 있는 시계를 내던질 수는 없다. 난 알바일 뿐이니까. 규칙적이고도 꾸준히 흘러가는데 난 그걸 거스를 수가 없다. 그저 흘러가고 있다. 불쾌하게.

 

나 내일부터 휴가야. 단순히 뭐 휴가를 받았다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아무것도 안해. 놀아. 완전 놀아. 그러니까 전화좀 줘. 간만에 만나서 같이 술도 마시고 맛있는 거 먹고 이것저것 얘기하자.’

문자가 와있다. 뭐라고 답해야할까. 답을 해야할까. 해야만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난 집에 도착해있었다.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켠다. 문득 핸드폰을 본다. 습관적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문서 파일을 연다. 문득 핸드폰을 본다. 습관적으로 키보드를 친다. 습관적으로 키보드를 친다. 문득 핸드폰을 집어 던진다.

 

째깍. 째깍. 째깍. 조용하지만은 않은 술집에서도 시계소리만은 울려 퍼진다. 익숙한 소리, 익숙했던 풍경, 익숙하고 싶은 시간. 그저 흘러갈 뿐인 시간. 여기서 시계를 내던지면 술취한 진상이겠지. 여기서도 시간은 규칙적이고도 꾸준하게 흘러간다. 그저 흘러갈 뿐인 시간이. 불쾌하게.

 

, . 간만에 같이 술마시고 있는데 왜 그리 어두침침하냐. 좀 표정좀 풀어. ?”

술은 나쁘진 않다. 취하고 싶진 않지만. 너도 나쁘진 않다. 취해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래서 싫다.

그냥 저기압이라서 그래. 왜 예전부터 간간이 그랬잖아. 갑자기 며칠간 맛이 가는거.”

... 타이밍이 안 좋았나. 그래도 지금 밖에 시간이 없으니까 좀 어떻게 안될까?”

어떻게 되긴 뭐가 돼... 이렇게 살아온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난 이랬잖냐.”

하하... 뭐 그건 그렇지. 에이 기분이다, 오늘은 내가 쏠게.”

차라리 노래를 시켜라.”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지고 잔을 홀짝인다. 잔 너머로 살짝 그의 얼굴이 보인다.

너도 참 많이 변하긴 했어. 학교 다닐 땐 누가 쏜다 그러면 아주 감사히 받았는데.”

나이 먹을 만큼 먹고 그러면 쪽팔리지 않겠냐.”

살짝 웃으면서 답하는데 그의 어깨 너머로 축구선수가 헐리우드 액션을 펼치는 장면이 보인다.

예전엔 그 정도 자존심보다는 한끼 식사가 더 소중하다고 당당히 말하는 애였는데...”

야야, 농담은 적당히 해. 쪽팔린다.”

다친 것도 걸린 것도 없는 선수가 계속해서 심판에게 뭔가 말하고 있다.

하하. 그래그래. 살다보면 변하는 거지.”

결국 헐리우드 액션은 성공한다.

 

째깍. 째깍. 째깍. 조용한 그의 집에도 시계는 있나보다. 익숙했던 소리, 익숙했던 풍경, 익숙해지길 바라는 시간들. 그저 흘러가는 시간들. 내던질까 하고 봐도 시계는 보이지 않는다. 규칙적이고도 꾸준히 흘러가고 있는데 보이지를 않다니. 그저 흘러가는 시간들이 불쾌하다.

 

다음번에 휴가만들면 바로 전화할게. 그때는 저기압 아니었으면 좋겠다. 뭐 그런거 아니라도 가끔씩 전화하고 그래. 이러다가 니 목소리도 잊어먹겠다. 하하.“

답장을 보낸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래, 진짜로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때도 난 저기압일거다. 아마 계속해서 반복되겠지. 시계가 없이는 내 시간은 흐르지 않는데, 너의 시간은 시계가 없어도 흘러가니까. 너의 시간은 다양한 움직임과 색으로 물들여지는데, 내 시간은 규칙적이고도 꾸준히 하얀 백지가 되어가니까. 익숙한 소리, 익숙한 풍경, 익숙한 시간. 익숙했던, 익숙해지고 싶은, 익숙해지길 바라는.

 

째깍. 째깍. 째깍.

난 시계를 집어던졌다.









-----------------------------


오유 과거에 뭔가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갑작스레 쓴 단편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무려 5~6년만에 글 하나를 완결해서 써보네요. 뭔가 슬픕니다. 중편도 아니고, 이런 2페이지 단편이 5~6년만에 쓰는 글이라니.

예정도 생각도 없다가 갑자기 쓴데다가, 퇴고조차 안해서 엉망입니다. 원래 글은 토나오게 고생해서 겨우 완성하고 만족하고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읽어보면 창피하고, 심각하고, 쓰레기 같아서 좌절했다가 퇴고하고. 그래도 쓰레기 같아서 또 좌절했다가... 를 무한 반복하는 맛인데.

아 뭐야. 저기압 화자를 썼더니 이젠 내가 저기압인가.

아무튼 뭐 그래요. 이런걸 참고 봐주신분이 있으시면 감사드립니다. 홍시는 나도 올해엔 아직 못먹어봐서 안되요.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