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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던 날.
게시물ID : readers_53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으우왓
추천 : 0
조회수 : 1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3 15:50:08

안녕.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하늘에선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바닥에 쌓인 눈이 품은 너의 발자욱.

그 발자욱 위에 서서 사라져가는 너를 바라본다.

한발 한발 찍어내린 우리의 추억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

달려가 널 붙잡고 싶지만 네게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나는 여전히 네 발자국 위에 떠날줄 모르고 서 있다.......

 

“뭘 그렇게 보냐?”

 

“아..아..아닙니다.”

 

철중이는 어느새 내 등 뒤로 와서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철중이는 고개를 빼꼼히 내어 내 어깨 너머로 내 수첩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수첩을 집어 넣었다. 철중이는 ‘뭐야 싱거운놈’이라고 중얼거리고는 입에 말보로를 꼬나물었다.

 

“웅아. 불 좀 댕겨주라”

 

“네. 김철중 병장님”

 

철중이는 방한모를 거꾸로 뒤집어 쓰고 빗자루를 기대어 놓곤 '후...' 소리를 내며 담배를 피웠다. 하는 일도 없는 주제에 갖은 폼은. 나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벽에 기대어 놓곤 주머니에서 구겨진 디스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따지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간 담뱃불은 사방을 덮고 있는 적막을 태워간다.

 

“웅아. 나 진짜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 봐도 되냐.”

 

내가 대답을 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철중이는 내 답을 듣지도 않고 말했다.

 

“그 수첩 뭐냐?”

 

무례한 자식. 나는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하려고 했으나. 얼마남지 않는 기간동안 잘 해주고 싶어 웃는상을 얼굴에서 지우지 않은채 답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한테 받은 겁니다.”

 

“흐음.....”

 

철중이는 담배를 한모금 빨고 코로 뱉으며 말했다. 그리고 먼 산을 한번 바라보며 침을 탁 뱉었다. 그리곤 나무 벤치 위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슬슬 털어내곤 앉았다. 그리고 가볍게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어떻게 만났는데”

 

“흐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코로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처음 만났을까. 나는 느닷없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했다. 철중이는 내 대답을 기다리다가 기침을 한번 하곤 다시 내게 물었다.

 

“어떻게 만났는데. 말해봐.”

 

“그러니까 그게 말입니다....”

 

계속 되는 채근에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려 봤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때 쯤 일 것이다. 그때 당시의 나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외톨이였다.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였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도태되면서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져 갔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앉아서 무엇인가를 끄적이곤 했다. 그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였다.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 쯤에 어머니는 다니시던 교회 목사님을 따라 동네의 작은 교회로 옮기셨다. 부모님의 강권이 못 이겨 따라나선 교회에서 나는 그녀를 처음 보았다. 하얀 성가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던 그녀 박윤정. 그래. 이것이 아마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일 것이다.

 

“교회에서 처음 봤을 겁니다.”

 

“오 교회, 그래서 어떻게 좋아하게 됬는데?”

 

“그게 말입니다..”

 

나는 교회는 계속 나갔지만 그녀와 나 사이의 교류는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었다. 예배가 끝나고 성가대원이 문앞에서 서서 인사하는 시간에 우리는 스쳐가는 인사를 나누는 그런 사이 였다. 이름도 몰랐을뿐더러 그렇게 관심도 없었다. 나를 사랑하기에 바쁜 시절이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서로 몰랐던 시절이 지나고 내가 수능이 끝난 11월 쯤이였을 것이다. 나는 수능이 끝나고 교회에서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그녀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심코 돌아보았을 때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이웅’이라고 말하며서 웃는 얼굴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이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순간일까? 정확하진 않지만, 시작이라면 아마 이때가 어울릴 것이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특송을 준비하기 위해 청년 성가대원을 모집하고 있었고 워낙 작은 교회라 청년이라고 부를 사람이 없었던 그 곳에서 나와 그녀가 만났다.

 

“성가대원을 하지 않겠냐고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같이 했지 말입니다.”

 

“오, 성가대원. 그래서 어떻게 됬는데?”

 

“그래서... ”

 

청년 성가대라고 모인 사람들은 솔직히 성가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규모였다. 중학생 두 명에 고등학교 1학년 한명. 그리고 그녀와 나. 이렇게 다섯이 전부였었다. 결국 그녀와 나이가 같았던 나는 항상 붙어다녔었다. 그렇게 한달이란 시간 동안 우리는 매일같이 만나며 참 많은 일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몇 안되는 동생들에게서 양보를 배웠고 그녀에게서 남을 좋아하게 되는 일을 배웠다. 그녀는 거의 모든 순간을 웃으며 보냈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 또한 쉼 없이 웃곤 했다. 나는 그렇게 그녀에게 빠져들어갔다.

 

“성가대를 하면서 붙어다니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됬습니다.”

 

“그래서? 고백은 했어? 아니면 바로 사귄거야?”

 

“에이. 사귀것도 아닙니다. 바로 까였습니다.”

 

“왜 어쩌다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내가 스스로 깨달은 것은 침대에 누워 그녀와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를 보며 잠 못 이루는 나를 발견했을 때 였다.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올라서 부정하려 애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였다. 나는 매일밤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잠 못 이뤘고 터질 것 같은 이 감정을 나눠 주고싶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만나고 싶어 지금 당장.’

 

무슨 용기로 문자를 보낸걸까.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전송버튼을 누르고선 편지지가 발송되는 장면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여기서 전송실패라고 뜨면 없던일이 되겠지 차라리 그러면 좋겠다.. 라는 심정도 있었지만 메시지는 정확하게 그녀에게 전송되었다. 한참을 휴대폰을 보다 바로 오지 않는 메시지에 괴성을 지르다가 휴대폰을 침대에 던지기도 하고 온몸으로 침대위를 구르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내가 왜 이랬을까. 왜 이랬을까. 하며 정신이 붕괴되는 것처럼 굴었다. 시간은 느리게 지나갔고 나는 오지 않는 메시지에 휴대폰을 너무 던져서 고장이 난 것이 아닐까 싶어 전원을 껏다 켜길 반복했지만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어 내 머리통을 쥐어박고 있을 때 그녀에게 메시가 왔다.

 

‘지금 당장? 왜? 무슨일인데?’

 

나는 답장을 받자마자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떤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있어 보일까. 나는 수없이 문자를 썻다 지우며 어울리는 말을 찾으려 애썼지만 보낼 말을 쉽게 찾을 순 없었다. 결국 나는 정말 간단한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할 말이 있어.’

‘지금은 안돼. 내일 어때? 내일 우리집앞 공원에서 5시에 만나자.’

 

나는 메시지를 받고 한참이나 그 문자들을 들여 본 것 같다. 그리고는 또 다시 가슴이 벅차 올라 온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났고 문 밖으로 나가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기도 하고 물을 한 모금 마셔 보았지만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찾아 깨끗하게 빨고 정성스럽게 다리고 약속 시간 보다 빨리 집을 나섰다. 꽃을 좀 사갈까 싶었지만 너무 오버하는건 아닌가 싶어 편의점에 들려 따뜻한 캔 커피를 품고 그녀를 만나러 갔던 기억이 난다.

차가운 벤치 위에서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가 조용히 뒤에서 나타내 옆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매일 보던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얼굴을 들었지만 오래 쳐다 볼 수 없었다. 아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녀가 웃으며 내 어깨를 흔들었지만 나는 그저 주머니에 품어논 캔커피를 건내며 땅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였다. 말해야 돼 속으로 수만번을 되뇌이고 나서야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윤정아 그러니까.. 내가...음... 너를....”

 

“아. 눈 온다.”

 

하늘에서는 어느새 싸라기 같은 눈들이 하나 둘씩 내리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한참 내리는 눈을 쳐다 보았다. 나는 멀리서부터 쌓여 가는 눈을 바라보며 내 마음을 굳혔고 나는 정면만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 좋아해.”

 

이렇게 멋 없는 고백이 있을까. 사귀자도 아니고 좋아한다니. 난 이런 멋없는 말을 뱉은 멋없 내 자신을 탓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 나도.”

 

“아니...저 그러니까. 그 친구라기 보단 멀고 사랑에 가까운거...야.”

 

“그래 알겠어.”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이거 잘 된건가 싶어 머리를 갸우뚱 하며 그녀를 쳐다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 사실.. 네가 무슨 말 할지 알 것 같았어. 그래서 어제밤 내내 네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 해봤는데. 딱히 적당한 말이 생각 나지 않더라. 그래서 이걸 사왔어.”

 

그녀가 내민 것은 조그만 수첩이였다. 살구색의 딱딱한 겉표지 위에 천으로 장식된 양이 두 마리가 있는 손바닥 만한 수첩. 그녀가 말했다.

 

“나 얼마 안돼서 해외로 나갈 것 같아. 아버지가 해외 발령이 나셔서.. 거길 따라가려고 했어. 내게도 좋은 기회니까 말이야. 거기서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할 생각이야. 그래서 이걸 줄게.”

 

나는 수첩을 받아 들고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사실...나도 네게 할 말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 하진 않으려구. 그 수첩에 내가 생각 날 때 마다 어떤것이라도 써줘. 뭐든지 다. 그리고 내가 돌아와서도 네가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때 그 수첩 내게 돌려줄래? 그러면 나도 그 때 말해줄게.”

 

그녀는 말을 마치며 일어 섰다. 벌써 주위에는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안녕.”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이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잠시 서있다가 뒤 돌아서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 모습이 눈에 덮여 사라질 때 까지 바라보다가 그녀가 준 수첩을 한번 훑어 보았다. 수첩속에는 조그마한 양 두 마리가 수첩 위와 아래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서있던 자리에 남은 그녀의 발자국 위에 서서 그녀가 지나간 자리를 보았다. 나는 왜인지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아 왼손으로 슥슥 닦은 뒤 수첩을 열어 글을 썼다.

 

“그렇게 된거지 말입니다.”

 

“와....그래서 걔는 언제 돌아 오는데?”

 

“아마 내년 초봄쯤 될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 뒤로 계속 연락은 했어?”

 

“이메일로 가끔..했지 말입니다. 사실 이 수첩을 같은걸로 몇 개 사놔서 계속 적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돌아올 때 주려고 군대에도 가져온거지 말입니다.”

 

“오.....근데 너 전역 얼마나 남았지?”

 

“이제 120대 진입했지 말입니다.”

“그럼 걔 돌아 오면 만날 수도 있겠네?”

 

“그렇게 되면 좋은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연락도 뜸하고 이젠 날 잊어 버렸을거 같기도 하고.”

 

“그래.......좋겠네..”

 

철중이는 그 말을 끝으로 말이 없었다. 그저 침을 한번 뱉곤 말없이 담배를 한 대 꼬나물곤 불을 붙일 뿐이였다. 나도 담배를 한 대 더 꺼내어 불을 붙이고는 말 없이 담배를 피웠다.

 

“야, 11시 30분이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애들 모으겠습니다.”

 

“그래.”

 

철중이가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자 하늘에선 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깨에 쌓인 눈을 탁탁 털어버리고는 애들을 불러 모았다. 철중이는 저 멀리서 뭐라고 궁시렁 대며 식당으로 먼저 가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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