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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경험에서의 소유와 존재2
게시물ID : lovestory_404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악진
추천 : 1
조회수 : 6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2/20 20:12:04
우리가 몸담고 살고있는 사회는 전적으로 소유지향과 이윤추구로 처방된 사회이다. 따라서 존재적 실존양식의 실례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다수 사람들은 소유를 겨냥하고 실존을 당연한 것으로, 그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방식으로 여긴다.

-학습
-대화
-독서
-권위
-지식
-신앙: 소유양식에서의 신앙은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도식적 틀로 구성되어 있고, 그 타인들(대개 관료적 기성종교 체제)에 굴복하고 있는 탓에 그 틀을 고민없이 받아들인다. 그것은 하나의 큰 인간집단에 소속될 수 있는 회원권이며, 그렇게 회원이 됨으로써 그는 자기인생의 어려 난제들을 고뇌로부터 면제된다. 
 근본적으로 신은 우리가 내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지고의 가치이다. 그러나 소유양식에서 신은 하나의 우상이 된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물에 불과하게 되며, 말하자면 인간은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 굴종하게 되며 그럼으로써 소외에 빠진다. 우상은 한낱 사물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소유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것에 굴종하고 있음으로 해서 우상 역시 나를 소유하는 것이다.
 존재양식으로서 신앙은 1차적으로 특정한 이념에 대한 찬성이 아니고, 내적인 성향 즉 일종의 마음가짐이다. 이 경우에는 신앙을 '가졌다'고 하기보다 신앙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는 에크하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도가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영원히 탄생되는 과정"이다.

-사랑: 소유양식으로 체험되는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가두며 지배함을 의미한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생명감을 불러일으키기는 커녕 목을 조여서 마비시키고 질식시켜서 죽이는 행위이다.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상 사랑의 부재를 은폐하려는 내용의 오용된 표현이기 일쑤이다.
사랑을 바탕으로 결혼했건 전통방식으로 인습에 따라 결혼했건간에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는 예외인 것같다. 사회적인 편의, 전통, 경제적타산, 자식을 낳는 것, 상호간 의존 또는 두려움이나 증오가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진보가 이루어졌지만, 현대인이라고 해서 사랑하는 상대를 더 많이 만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신세대 남녀들도 아마 옛 부부만큼이나 서로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같다. 전통사회에 비해 오늘날 남녀들은 파트너를 자주 바꿔본 후 결혼상대를 결정하지만, 전통사회보다 현대의 부부들이 정말로 더 사랑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많은 부부들이 사랑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조율하며 사랑하는 대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 이를 테면, 돈, 사회적 지위, 가정, 자식을 공유한다. 따라서 사랑으로 시작된 결혼일지라도 때로는 우호적인 공동자산체, 즉 2개의 이기주의가 투자한 "가정"이라는 이름의 법인체로 변질된다. 이 법인체의 주주들은 흘러가버린 감정이 부활하기를 갈망하면서 다른 상대라면 자신의 열정을 일깨워줄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 빠진다. 그러면서 자신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사랑은 한낱 우상일뿐 자신의 존재의 표현이 아니다. 이런 사랑이 실패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사랑이 자주 실패한다고 해서 결혼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결혼이라는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배우자의 소유지향적 성격구조에,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구조에 있다. 그룹결혼, 스와핑, 그룹섹스 등 새로운 공동생활을 주장하는 이들은 한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보다는 파트너의 숫자를 늘려서 끊임없는 새로운 자극으로 권태를 물리침으로써 사랑의 난점을 기피하려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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