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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살인집단 한대련 - 97년 한양대살인사건
게시물ID : sisa_2645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유대일
추천 : 3
조회수 : 1005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12/03 22:24:06

97년 대한민국은 문민정부 말기에 접어들어 시끄럽다

K-16.png

이회창VS이인제

K-11.png

김현철 구속

K-21.png

국민회의 김대중 + 김종필 단일화 

 

 

정치권은 이러는 반면  

1997년 제 5기 한총련이 출범하려고 했다.

 

97년 6월 초 제 5기 한총련 출범식을 강행하기 위해 한총련 학생 1만여명이

 

경찰의 봉쇄에도 불구하고 한양대에 모여 한총련 출범식을 강행했다.

 

이것을 해산하려던 도중에 경찰들도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한총련의 과격성을 잘 보여줬다.

K-8.png  

 

 

 

97년 6월 3일 또 한양대에서 끈질기게 출범식을 가지려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양측의 무수한 부상자가 발생했고

 

1262명이 연행되고 222명이 구속되었으며 136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러한 경찰과의 충돌 도중에 

 

 

한 남학생이 출범식장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한양대 내에서 선반공을 하고 있는

 

故 이석 군이었다. 그의 나이 23세. 

 

한총련 년놈들은 이 학생분을

 

경찰의 프락치, 첩자라고 생각하고

 

납치해간다.

 

이들은 일제시대를 연상시키는 고문을 가했다.

 

손목을 묶고

 

3시간동안 무릎을 꿇리고

 

"너 빨리 우덜 프락치인거 시인하랑께!"

 

촛불시위 때 좌좀들이 그렇게 욕했던

 

경찰진압봉으로 그의 머리, 온 몸을 구타했다.

 

그렇게 방치된 이석 군은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과다출혈과 내부 기관 파열로 숨지고 만다. ㅜㅜ    

 

 

이 한양대 사건 이후 학생운동 지도부에 대해 전국적으로 검거선풍이 불었고

 

한양대도 한총련에 대해 1억 1천만원의 피해배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래는 한총련이 이 사건이 일어나고 발표한 발표문 전문이다. 더 화가난다.

 

 

 

제 목 :[애도/한총련]고이석씨에 관한 기자회견문 

한총련 입장
━━━━━━━━━━━━━━━━━━━━━━━━━━━━━
류지웅 학우의 죽음에 이어 오늘 또 한 청년의 죽음을 맞이한 우리는 비통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故 이석씨의 죽음과 유가족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한총련은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도의적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故 이석씨는 프락치로 확인 되고 조사과정에 가격을 당한 후 잠을 자다가 죽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경찰프락치 발견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류재을 열사의 장례식 도중에도 
수많은 프락치가 발견되었고 그중 한명은 경찰로부터 성폭행까지 당하며 프락치
활동을 강요 받은 바 있습니다. 
출범식 행사가 진행되는 30일부터 한양대에서는 수많은 프락치가 발견되었고 
모두 그냥 돌려 보냈습니다. 
행사기간중 한양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기부, 사복 경찰, 프락치들 수는 출범식
을 준비하던 학생수보도 더 많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시위진압에 나서야 하고 수많은 비정상적인 
청년들이 프락치로 활동해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이 바로 무고한 청년들의 죽음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권은 좀도둑으로 파출소와 경찰서 법원을 출입하는 어린 청년들에게 다가가 
구제해준다는 조건으로 프락치를 강요합니다. 
대부분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비행청소년이며 심지어는 장애자도 있습니다. 
협박과 돈으로 수많은 소외받는 청년들에게 비정상적인 활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4월 16일부터 23일까지 있었던 류재을 열사 장례식에서 확인된 것은 이런 프락치 
활동이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발견되는 대부분의 프락치를 정권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대부분 
그냥돌려 보냅니다. 
하지만 돌려보낸 프락치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활동을 재개합니다. 

정권은 한보비리, 대선자금비리등에 대한 국민들 의혹과 항의가 거세지자 언제나 
국민들의 요구에 맞게 투쟁해왔던 한총련을 와해시키기 위해 지금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탄압의 양상은 다양하고 입체적입니다. 
살인적인 시위진압, 학생회실 전화 도청, 학생간부들의 무선호출기 도청, 미행, 
프락치활동, 한총련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음해 공작등 그 인력과 방식을 상상은 
초월해 총공세로 펼치고 있습니다. 

이번 출범식에서 보여주었던 정권의 모습은 극에 달했습니다. 
살인적인 시위진압 수많은 프락치 파견, 경찰 입장을 효과적으로 알려주는 언론, 
살인적인 진압등등. 언론은한총련의 평화적 개최에 대한 의지와 활동에 대한 보도는 
묵인 한채 학생들의 폭력성만을 부각시키면서 국민들을 불안케 했습니다. 

평화적인 한총련 출범식을 강경진압으로 일관한 이후 학생, 전경, 시민들의 피해와 
부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양지영(경희대 수원배움터 사회과학부 1학년), 
유수(중앙대 안성배움터 사진학과 4), 대경총련, 남총련 소속 학생등 50여명이 크게 
부상당했고 학생진료단을 거친 학생들을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시민 이철용씨는 진압경찰에 항의하다가 백골단 6-7명에게 구타당해 지금 중태입니다.


이같은 모든 불상사의 원인은 정권의 부패함에 있습니다. 
정권이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학생들을 이에 항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를 막는 전경도, 학생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프락치도 없을 것입니다. 

 

요약 - 1. 이석 군이 사망한 것에 대해 유감. 

            2. 이석 군은 프락치다. 

            3. 경찰이 막 프락치를 우덜에게 보내니깐 우리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당게. 

            4. 이 사건은 경찰이랑 김영삼 때문이다!!!

            5. 땡삼이 아웃!  

 

미친놈들 ... 

사람을 죽여놓고도 남탓을 하는... 이건 유영철 강호순 이런 놈들에 버금간다.

 

한총련 간부는 이 사건을 은폐. 축소시키려 했으나 다 발각되고

사건 가담자 주요인물들은 당당히 자진출두한다.

 

아래는 경찰의 조사내용이다.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4일 숨진 李石(이석·23)씨를 경찰 프락치로 오인, 조사하는 과정에서 구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물을 끼얹고 때리거나 담요로 몸을 감싼 채 폭행하는 등 현대판 「멍석말이」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3일 오후 5시경부터 4일 오전 2시경까지 9시간 동안 이어진 집단폭행에 견디다 못해 4일 오전 5시경 비틀거리며 탈출을 시도했으나 조사실 문앞에서 붙잡혀 4명에게 또다시 3시간반 동안 몰매를 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동부지청은 19일 이같은 사실을 새로 밝혀내고 이씨의 감금폭행에 직접 가담한 학생들도 지금까지 알려진 9명 외에 崔元碩(최원석·24·건국대 축산과 3년)씨 등 6명이 더 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날 『구속된 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수시로 이씨의 몸에 물을 뿌리거나 담요로 싼 채 경찰진압봉으로 때린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때린 부위가 목 머리 등 치명적인 부위는 아니라서 살인 혐의로 기소할지 여부는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씨 등 추가용의자 6명이 모두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 李准求(이준구·26)씨 경호 임무를 맡았던 건국대 총학생회 사수대인 「황소대」 소속임을 밝혀내고 전국에 지명수배했다.이들은 3일 자정경 서총련 투쟁국장 金鎬(김호·25)씨와 吉素延(길소연·23·여)씨 등 서총련 투쟁국원 7명으로부터 이씨를 넘겨받아 4일 오전 8시반경까지 집단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최씨가 조통위원장 이씨에게 프락치를 붙잡아 조사중이라고 보고했으며 서총련 투쟁국장 김씨가 프락치 조사를 총지휘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3일 오후경 5시경- 이상한 청년이 5층에서 발견됨
총학간부가 방으로 데려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손을 묶으려 하자 순순히 응함
대화하는 과정에서 프락치임이 확인됨
질문에 순순히 응하자 손을 풀어주고 진술서를 쓰게함

6시경: 갑자기 진술서를 받으려는 학생의 목을 조름
진술 받던 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구조를 요청. 밖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 이를 막음.

이후 학생 2인이 다시 조사함. 먼저 조사하던 학생은 나옴.
다시 손을 묶고 몇차례 가격으로 주의를 줌.
이후 다시 진술을 받음 
새벽 2시경 모든 진술을 마치고 3인이 같이 잠

4일 9시경 이석씨가 이상한 것으로 확인 진료단에 연락
진료단은 호흡 정지등 상태가 안좋은 것을 확인하고 바로 한양대 병원으로 보냄

 

* 프락치 자백서는 한총련이 강요해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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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말한 전문을 발표중인 한총련 간부. 사건 5일 뒤 사건 축소하려던 사실이 다 들통난다.

 

경찰 조사에서 96년 연대 사태를 이끈 '한총련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로

결국 이 사건은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것으로 밝혀진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야당도 이 사건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리고 이석씨 폭행 재연 현장

 

이 여자가 주요 인물중 하나인 길소연 이라는 년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석 씨 사망한 자리에 어떤 놈이 사랑한다 소연아! 용기 잃지마! 라고 낙서가 되어있다.

길소연 이 년을 사모하는 자지새끼 이거나 같은 빨갱이 집단인것이다.

밑에 낙서를 읽어보면 분명히 후자인 것을 알 수 있다.

조사받는 가담 인물

 

한총련은 부끄러운 줄 알지도 않고 사건 발생 3일 후  

"아따 우덜 추기경님 께서 우릴 쉴드쳐주시겄지?" 라는 생각을 하고

시위의 성지인 명동성당을 찾아가 "김영삼 OUT"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명동성당은 단호히 한총련에게 꺼지라고 한다.

결국 경찰은 잽싸게 버스로 체포해간다. ㅋㅋ

 

 

 

이석 씨는 한양대 병원에서 몇 명의 친지들만 모인 조촐한 장례식을 치르고 고향 해남에 묻힌다.

 

 

 .

 

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98년 7월 법원에서 한총련을 전격적으로 이적단체로 규정한다.

 

그러면 뭐하盧?

99년 길소연과 최호준 사건 가담자 중 주요인물 2명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었으나

특별사면으로 가석방.

김대중 정부의 아쉬운 점 중에 하나가.. 이적 의심단체에 대해 너무 관대한 시선이 있다는것이다.

 

 

 

독일은 저런 이적단체를 막바로 해산시켰다고 한다.

그러는 반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범민련에 빡빡이 새끼가 월북해서 나돌아댕겨도 감옥에서 밥만 잘 먹는다.

게다가 이제는 국회에까지 한총련 출신 국회의원이 들어왔다.

 

 

  

두 줄 요약

 

1. 한총련 개새끼

2. 부끄러운 줄 알지도 못하는 한총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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