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 쓰고 있는 언어!!
어떤 사물을 보고 생각해서 근원을 찾아내는게 철학이라면 철학에서 가장 재밌고 멘붕당하기 쉬운 부분이 아마 이 언어부분 일 듯하다.
플라톤, 공자, 맹자, 등등 수많은 성인들도 책을 쓰면서도 책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 좀 더 쉽게 말하면 그들의 생각을 표현한 단어와 언어가 가지는 한계가 그들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 못한다는 말이다. 그들이 가졌던 생각이나 경지는 언어가 인간에게 가져주었던 장점을 뛰어넘은 놈은 경지였기 때문이다. 머 이유는 끝에 가서 밝히겠다.
언어의 한계는 간단히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얘기이다.
1.분절성
우리는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세상을 나누어 보기 시작한다. 지금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이것이 당연해 보인다. 간단한 예로, 물과 물고기가 있다. 단어로 표현하면 물/물고기로 완전히 분절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물에 있지 않는 물고기를 본적이 있는가? 여기서 약간의 생각이 필요하다. 아마 읽는이는 약간의 혼란이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봐라. 물고기는 물없이 살 수 없다. 또한 플랑클톤 따위의 먹이 없이도 살 수 없다. 그렇다면 물고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과 물고기의 먹이도 이해해야한다. 이렇게 범위를 넓히다 보면 세상만사가 다 연결되어 있고 물고기를 진짜로 이해하려면 세상을 이해해야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따로 떨어진 분절적인 독립체가 있을까? 세상 안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근데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이게 언어가 우리에게 주입시킨 선입관이다. 세상을 분절하여 바라보고 독립체로 본다. 또 그것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데이터를 내고 예상을 한다. 알 사람들은 알지만 이런 예상을 하고 세상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죽음을 피하려는 심리에서 나온다.
2.일반화
이 일반화의 특성은 분절성에서 나오는 약간 아류의 느낌(?)이다. 아까처럼 세상을 분절하려면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단어는 단어이기 때문에 구분이 가지 않는다. 조금 어려우니 예를 들어보겠다. A는 동그랗고 새빨간 과일이다. B도 역시 동그랗지만 좀 더 덜 빨간 과일이다. A는 달고 맛있고 속은 노랗다. B는 A보다 훨씬 달고 속도 더 노랗다. 머 대충 이런 A,B가 있다. A,B는 이렇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를 사과라고 부른다. 이들을 사과라고 부르는 순간 A,B가 가졌던 특성이 무시된다. 사과는 공통적으로 빨갛고 속은 노랗고 달다. 하지만 그마다 특징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언어의 한계가 일반화인 이유도 이처럼 특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생물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 대략 68억정도 된다. 그들을 인간이라 부르면 68억은 모두 구분없는 그냥 인간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라. 내 자신과 가장 닯은 부모조차도 자신과 다르게 생기고 차이가 나지 않는가? 물론 어떤 분들은 관형사와 부사로 수식함으로써 언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생각이다. 우리가 생각할때 사과라고 생각하지, 저 사과는 채도 몇이고, 당도가 몇이고,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근거로도 섬세하게 표현한다고 언어의 일반화의 한계가 극복되지 않는다. 그 한계보다는 일반화가 가져왔던 인간이 가지는 편견이 더 문제다.
필자가 이렇게 언어의 한계를 열심히 적는 이유는 지금 근대,현대적 사고가 가졌던 폐해를 지적하고 싶어서이다. 분절성이 가져왔던 세상을 분절하여 보는 태도, 일반화가 가져온 특성과 개성을 무시하는 태도. 이 두가지의 태도로 근대에서 시작된 폐해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냥 자신을 되돌아 봐라. 내가 세상을 얼마나 하나하나 분절해오고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또 단순한 일반화로 상대방이나 물건의 개성과 특징을 무시하고 그냥 기계의 부품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이 모든게 우리가, 내가, 당신이, 이 사회가, 인류가 가져서 좀 더 높은 수준으로 가기 위한 초석인 셈이다. 언어는 인류에게 커다란 발전과 의식이 도약 등을 비롯해 수많은 이득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 언어가 가져오는 폐해가 점점 커지고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극복해야 할 때이다. 앞에서 말했듯 성인들도 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이유는 뛰어넘는 순간 그들이 말했던 경지가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장자의 만물제동. 만물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는데 언어가 가졌던 분절성을 가지고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특징을 무시하는 일반화가 이 만물제동을 진짜 알 수 있게 해줄까?
웃기는 것은 내가 이 것을 언어로 전달한다는 점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거지만 높은 층을 올라가기 위해서 사다리를 쓰고 난 후 높은 층에서는 사다리를 아래층으로 떨어트려야 한다고 했다. 언어가 바로 이 사다리다. 나는 많은 이들이 이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낳은, 더 발전된 생각과 인품을 가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