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파들파들 시들어가는 대학교 1학년생임. 오늘은 장장 두달간의 준비가 빛을 보는 학년말 과제의 발표날. 설래기 때문인지 이틀 연짱으로 레드불과 함께하는 철야작업인지 두근세근 두방망이질을 하는 가슴과 데치다 만 시금치같은 죽상을 가리고 발표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평소 입지도 않는 세미정장을 입음. 거울앞에 선 나는 추레한 몰골이 어딘지 모르게 프로페셔널한 디자이너의 매력을 뿜고 있었음. 생각외로 따듯한 새벽공기와 의외로 시려운 손을 부비며 탄 버스는 딱 좋은 정도의 안락함과 노곤함이 느껴졌음.
그렇게 버스에 타서 지친 몸과 질주하는 뇌의 묘한 갭을 즐기며 버스는 동이 트는 한남대교를 건넘. 아침해에 비치는 은빛 한강물은 퍽 아름다웠음. 내 옆에 은은한 베르가못향을 풍기며 앉아있는 여성분도 아름다웠음. 그렇게 한창 창밖을 감상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아침에 갓 구운 빠리의 단팥빵처럼 훈내 단내를 풍기는 남성이 나를 보고 그윽하게 윙크를 하는게 아니겠음...! 마..막 오곡라떼처럼 뽀얀 빛에 땅콩 고소미 냄새가 날 것같은 피부의 소유자였음.
당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묘한 기대를 품은 나는 마치 초콜렛같은 달콤함이 묻어나도록 살짝, 비스킷 위에 떨어지는 꿀처럼 아주 살짝 맞윙크를 날려줬음. 그랬더니 그 남성분이 찬란한 아침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나에게 다가왔음!!! 와 나 진짜 무슨 미륵보살 현세하신 줄..!
아무튼,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음. 20년 철통솔로인생 막을 내리는구나 하고. 수줍게 오유를 만지작거리는 내 귓가에 그 남자분이 이렇게 속삭였음. 첫눈 소복히 쌓인 지리산에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같은 목소리로
"옆에 제 애인인데 자리좀 양보해주심 안될까요?"
너무 황홀했던 나는 등신쪼다같이 "애인"만 듣고 네... 하면서 살포시 자리에서 일어남. "응?! 시발?!" 난 내 궁둥이로 커플년놈 시시덕거릴 자리를 아침부터 덥혀주고 쓸쓸하게 버스를 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