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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주의] 희대의 싸이코패스 살인마,"알버트 피쉬"
게시물ID : panic_405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림자망토
추천 : 82
조회수 : 14178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3/01/04 17:50:48

(워낙 유명해서)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좀 더 디테일한 얘기들을 하고자 글 올립니다.

내용이 다소 혐오스럽기에 원치 않으신분은 본 글을 읽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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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like children, they are tasty"

"난 애들이 좋아, 맛있거든."


미국의 연쇄살인범, 알버트 피쉬(Albert Fish)

Gray man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해외의 연쇄살인범이라고 한다면 잭 더 리퍼, 에디 게인, 테드 번디 등을 

떠올리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가장 끔찍한 연쇄살인범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이 알버트 피쉬다.

미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리학자, 프로파일러들 역시 알버트 피쉬의 사례를 연쇄살인범 사례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사례로 뽑으며

알버트 피쉬를 희대의 싸이코패스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알버트 피쉬의 과거


아버지가 죽고난 후, 피쉬는 워싱턴에 있는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를 해야 하는 등,

무척이나 힘든 생활을 했다. 

고아원에서2~3년을 지낸 후에, 알버트 피쉬는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가 생활한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는 체리나무에서 떨어져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는다.

그후 현기증과 두통을 경험한다.

 

알버트 피쉬는 낮은 공교육을 받았고, 페인트공이나 잡역부로 공사현장에서 일을 했다.

스물여섯 살의 피쉬는 열아홉 살의 여자와 결혼한다. 피쉬의 아내는 바람이 난다.

상대는 자기 집에서 하숙하던 남자로 우둔한 스타일의 잡역부였다.

피쉬는 둘의 사이를 눈치챘고, 아내에게 그 사내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어느날 아내는 자기가 낳은 자식들이 자야 할 매트리스까지 모두 걷어 가지고 사라졌다.

그 일은 1917년 초에 일어났으며 그때 피쉬의 막내자식은 세 살이었다

  

첫번째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사라지고난 후, 피쉬는 매우 이상한 행동들을 했다.

달밤에 발가벗고 춤을 추며 자기는 그리스도라고 외쳤으며,

보름달이 뜨던 밤에는 큰 고기 덩어리를 날 것으로 씹어 먹기도 했다.

 

알버트 피쉬의 이상행동을 이야기하면서,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알버트 피쉬핏줄과 정신병과의 관계이다.

피쉬의 가계를 살펴보면 정신병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 아버지 형제 중 하나는 종교적으로 정신이상이었고 그상태로 병원에서 죽었다. 

배다른 형제 하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동생 하나는 정신박약이었고 뇌수종(hydrocephalus)으로 죽었다. 

고모 한 명 역시 완전하게 미쳤다고 생각되어지고 있다. 

형은 만성적인 알코올중독자 였고, 여동생도 정신장애에 시달렸다.



 엽기적인 살인...


알버트 피쉬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약 40여명의 어린이를 살해하고,

100통이상의 음란 편지(음란 전화와 비슷한 시도로 생각된다)를 여성에게 썼다고 한다.

알버트 피쉬는 강박적인 작가로 외설적인 기록을 남겼고, 자신의 잔혹한 행동을 생생히 묘사한 편지보내기를 좋아했다.

한 편지에서 그는 1927년,빌리 게프니라는 4세 소년에게 자행한 일들을 설명했다. 

그는 소년을 납치해 쓰레기 수거장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나는 소년을 그곳으로 데려갔다.
아이의 옷을 벗기고 손과 발을 묶었으며 쓰레기장에서 주운 더러운 헝겊을 입에 물렸다.
그런 다음 아이의 옷은 태워버렸다.아이의 신발은 쓰레기 더미에 던져넣었다. 그 후 그곳을 빠져나와, 새벽 2시에
59번가로 가는 전차를 탔고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후 2시쯤에 나는 장비들을 챙겼다.
꽤 묵직한 채찍도 있었다. 채찍은 직접 만든 것으로,손잡이가 짧았다. 혁대를 반으로 잘라서, 약 8인치 길이로 줄이 여섯가닥
달린 것이다. 나는 아이의 등 뒤에서 맨 몸에 채찍질을 했고, 다리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아이의 코와 귀를 베어내고 아이의 입은 양쪽 귀까지 찢었다. 눈알도 도려냈다.
이 때 아이는 죽었다.나는 아이의 배에 칼을 쑤셔넣었고, 입을 대고 피를 빨아마셨다.

나는 낡은 감자 부대 네 개와 돌 한더미를 모았다. 그런 다음 아이를 잘라냈다. 나는 자신을 통제했다.
아이의 코와 귀, 뱃살 몇 조각을 손에 넣었다. 이제 아이의 몸 중앙을 곧장 잘랐다.
바로 배꼽 아래에서 두 다리의 가랑이 사이로 5cm를 더 베었다. 그렇게 잘라낸 것들은 신문지로 쌌다.
아이의 머리, 다리, 팔, 손을 잘랐고, 무릎 아래까지 다리를 베어냈다. 
이것들은 돌과 같이 모두 부대에 담았고, 끝을 묶은 뒤 노스비치를 향하는 길을 따라 널려있는 더러운 연못에 던져넣었다.
물은 1m가 넘는 깊이였고, 곧장 잠겼다. 나는 남은 고기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체 앞부분들, 아이의 고추와 불알, 그리고 작고 근사한 지방은 나중에 오븐에 구워 먹을 것.  
나는 귀와 코, 뱃살을 스튜로 끓였다. 양파, 당근, 무, 셀러리, 소금, 후추를 넣었다.

맛이 좋았다.




 Grace,그리고... 


그가 이토록 유명한 연쇄살인범 중 한 명이 된 것은 체포 과정이 드라마틱했기 때문.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방불케하는 이야기였다.

수 많은 아이들을 죽이고 먹어치우던 중 피쉬는 신문에 광고를 싣는다. 

자신이 농장주라고 한 뒤 거짓 구인 광고를 내 광고에 응답하는 청년을 사로잡아 죽일 생각이었던 것. 

이 당시 피쉬는 노인이었지만 살인의 경험으로 청년을 간단히 무력화 할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한 청년이 피쉬에게 연락을 취하고, 피쉬는 그 청년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 집에서 청년의 여동생인 그레이스를 만나게 되며 타겟을 그 쪽으로 수정하게 된다.


 


 피쉬는 그 집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손녀가 이 근처에서 생일파티를 열고 있는데 그레이스를 데려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마땅치않아 했지만 아버지는 상류층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기회라며 
그레이스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해 준다. 

실로 안타까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사라지고, 피쉬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에 연락하고 난 뒤에야 

그레이스의 가족들은 피쉬가 쓴 이름이 가명이고, 신문 광고에 나온 농장 따위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당시 퇴직을 1년 앞둔 형사 윌리엄 킹은 퇴직까지 반납하며 이 사건에 6년간 매달리지만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 조치로 수사를 종결했다는 가짜 기사를 신문에 

싣게 된다.


그러자 피쉬는 안심을 했는지 그레이스 가족을 자극하는 편지를 보낸다. 




◀ <Grace의 모습>



친애하는 버드 여사에게. 

1894년의 일입니다. 선원이었던 친구 하나가 타코마 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친구가 도착한 곳은 홍콩이었는데, 다른 두 명의 사람들과 함께 배에서 내린 그는

부둣가로 가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들 일행이 다시 돌아왔을 때, 배는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그 당시 중국은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고기도 파운드 당 1달러에서 3달러 사이에서 팔렸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극빈자들 사이에서, 열두 살이 안 된 아이들은 배고파하던 다른 사람들의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팔려나갔습니다. 열네 살 미만의 소년이나 소녀들은 길거리에서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스테이크나 스튜용으로 잘려진 고기를 살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몸은,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칼에 잘려졌고,

그중에 엉덩이 살은 가장 부드러운 부분으로, 돈가스와 같은 요리의 재료로써 가장 비싼 값에 팔려 나갔습니다.


친구는 그곳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때문에 인간의 고기 맛에 길들여졌습니다. 그 결과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7살과 11살 먹은 두 명의 소년들을 납치하게 됩니다. 친구는 두 명의 소년들을 자기 집으로 끌고 가 그들을 발가벗기고

묶어 벽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소년들의 옷가지들은 모두 불에 태워 없앴습니다. 친구는 몇날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소년들을 때리면서 괴롭혔습니다. 맛나고 씹기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친구는 먼저 열한 살짜리 소년을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그 소년의 엉덩이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는 그 사내아이의 머리와 뼈 그리고 내장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요리했고, 말끔히 먹어치웠습니다. 

오븐 속에 넣어 구워 먹기도 했고, 데치거나, 삶거나, 튀기거나 스튜를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다음 차례가 된 작은 소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친구집에서 가까운100번가 409번지에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한테 사람 고기가 맛이 좋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었던 까닭에, 나도 사람고기를 먹어봐야겠다고 결심 하게 되었습니다.

 

1928년 6월 3일 일요일,저는 15번가406번지에 있던 부인 댁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선물로 팟치즈와 딸기를 내밀었고,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그레이스는 제 무릎 위에 앉아 뽀뽀를 하며 재롱을 떨었습니다.

저는 따님을 먹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따님을 파티에 데려가겠다는 핑계를 댔을 때, 부인은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따님을 데리고 미리 봐두었던 웨체스터에 있던 빈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후에 저는 따님에게 일단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고,따님은 들꽃을 꺾어 들며 놀았습니다.

저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버렸습니다.

안 그랬다가는 따님의 피가 제 옷에 묻을 테니까요.

 

준비를 끝내고, 창가로 가서 밖에서 놀고 있던 따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따님이 들어올 때 까지 벽장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발가벗은 저를 보자, 따님은 울음을 터트리면서 아래층으로 달려 도망치려 했습니다.

저는 따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때 따님은 엄마한테 이르겠다고 말하더군요.

 

먼저 저는 따님을 발가벗겼습니다. 어찌나 발로 차고 물고 할퀴던지...저는 따님의 목을 졸라 죽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따님의 몸을 조각조각 썰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려진 고기를 가지고요리를 했고, 

요리가 된 그것들을 먹어치웠습니다. 오븐에 넣고 구워 먹었던 따님의 자그마한 엉덩이는 무척이나 감미롭고 부드러웠습니다.

제가 따님을 모두 먹어치우는 데는 아흐레가 걸렸습니다.

 

하려고 했다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따님에게 퍽(fuck)을 하지 않았습니다. 

따님은 처녀로 죽었습니다.


수 년만에 생긴 단서로 킹은 피쉬를 역추적할 수 있었고 결국 그를 체포하는 데에 성공한다.

경찰이었던 윌리엄 킹에게 그날 처음 만나게 된 피쉬는,회색 머리카락과 터부룩한 수염, 물기에 젖은 듯한

푸른 눈의 노인으로 언뜻 해가 없을 것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킹이 조사를 위해 함께 경찰서로 갈 것을 요구했을 때, 갑자기 노인은 자기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이윽고 면도칼을 꺼내 들어 킹 수사관을 향해 내밀었다. 

늙고 자그마한 몸집의 피쉬는 체격과 체력에서 경찰인 킹의 상대가 아니었다. 

킹은 자기에게로 향한 노인의 면도칼을 쥐고 있던 손목을 움켜쥐고 날카롭게 비틀었다. 면도칼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킹은 재빨리 

피쉬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6년간의 추적 끝에 윌리엄 킹은 마침내 승리자가 되어 늙은 살인마에게 말을 했다.1934년 12월 13일의 일이었다.

늙은 형사가 늙은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는 순간 뱉었던 말은 "Finally, I got you."

 

복역 중 그는 뉴욕시티의 저명한 신경과 의사 프레드릭 워댐 박사의 정밀 진단을 받았다. 

박사는 피쉬의 삶을 '전대미문의 도착적인 삶' 이라고 결론 지었다. 

늙은 피쉬세상에 알려진 모든 성도착과,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성도착까지도 일상적으로 행했다는 것이었다.

피쉬가 가장 즐기는 활동들을 이야기했을 때, 워댐 박사는 결국 그렇게 진단을 내렸다.

그가 가장 즐기는 활동들이란,

알코올에 적신 헝겊을 항문에 집어넣은 뒤 불을 붙이기도 했고, 가시 박힌 장미를 자신의 성기에 삽입한채 

거울로 쳐다보면서 놀다가 장미를 뽑아내고 꽃잎을 먹기도 했다.



▲ 앨버트 피쉬의 골반 X-Ray 사진


교도관들은 피쉬가 웅크리고 앉을 때 불편해 하는 것을 알았는데,

피쉬는 자신의 사타구니에 바늘을 쑤셔넣었고, 그것들이 아직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는데, X-Ray 검사결과 그의 골반 부근에는 실제로 바늘이 20개가 넘게 꽂혀 있음이 드러났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서, 워댐 박사는 피쉬가 무려 [17가지 성적 도착]에 시달린다고 결론을 내린것이다.

박사는 

'한 개인이 이러한 모든 성적 이상증세를 보유했다고 하는 기록은 법학이나, 의학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는 설명을 항소 법원에 제출하는 등 자신의 환자가 전기의자에 앉는 것을 막으려 헛된 시도를 했다.

아무리 미쳤다고는 하지만 교활한 방법을 통해 수사망을 피하고 자기 몸을 지킬 줄은 알았던 피쉬이기에 

당시 판사와 배심원들은 혼란스러워 했지만, 결국 사형으로 결정이 났다. 

이에 대해 한 배심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미쳤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지만, 우리 앞에 있는 그것을 살려둬선 안된다는 공포감이 
사형을 선고하게 만들었다."

결국 1936년 1월 16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사형당일 그의 행위가 흠좀무스럽다. 
사형집행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자신을 짜릿하게 할 수 있는 경험이라면서 기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사형집행이라는 판결엔 만족해하지 않았으나, 바싹 구워진다는 말을 듣고는 눈이 반짝했다고 한다.) 
집행실로 걸어들어갔다고 하며, 자신의 몸에 전극을 붙이는 집행관을 손수 도와주는 등 죽는 순간까지도 자학적인 짓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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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엔하위키 미러,  앨버트 피쉬(Albert Fish)|작성자 이사한 닉스 +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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