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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바람이 분다.
게시물ID : military_405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여름하늘
추천 : 10
조회수 : 60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3/30 09:59:55


 내가 상병을 달 무렵이던가.
 그 해의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고, 장마도 늦게 찾아왔다. 따뜻한 남쪽의 섬에서 맞이하는 여름은 사회에서 맞이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불쾌함을 나에게... 아니, 우리 부대원 모두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몸은 김장배추마냥 축축 처졌고 비릿한 바다냄새와 남정네들만 있는 공간 특유의 퀴퀴한 냄새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나의 섬세한 후각세포를 고통스럽게 했다. 무엇보다 대낮에 햇빛이 선명하게 전투복을 핥을 때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미친 전투복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비라도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졌으면...'

 그리고 얼마 뒤 장마가 찾아왔다.
 같은 습기이건만 빗방울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습기는 왜 그리 기분이 좋은지. 같은 물냄새건만 비냄새는 왜 그리 상쾌하고 시원한지!
 ...라고 생각하며 보름 가량 지났을까.
 장마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식재료는 바닥을 드러냈다.

 통조림류나 전투식량, 양념류, 쌀 등등은 비축분이 있었다. 그러나 채소, 고기 등등 요리의 주 재료가 없었다. 계속된 장마로 경비정이 출항하지 못해 부식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장마철에도 비가 조금 잦아들 때 한번씩 와서 부식을 수송해주곤 했다는데 올해는 인접한 연대에서 비올 때 출항한 경비정의 병사 하나가 물에 빠져서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우천시 경비정 절대 출항 금지'라는 명령이 각 대대에 전달된터라 우리는 빨리 장마가 그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 날부터, 우리의 식사메뉴는 오로지 고추장과 김. 그리고 된장국으로 고정되었다. 처음엔 다들 불평했지만 식재료가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다들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잠자코 현실에 순응했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식단은 처참해졌다. 처음엔 된장국에서 하나씩 재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감자+호박 된장국에서 감자 된장국으로. 그리고 결국엔 끓인 된장물로 진화했다.  그리고 곧 김이 사라졌고, 간간히 우리를 위로해주던 카레/짜장/꼬리곰탕 등등의 통조림마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취사병이 이것만큼은 내줄 수 없다며 마지막까지 지켜오던 꼬리곰탕 통조림이 열린 날. 땅에 떨어진 취사병의 눈물이 장마의 마지막을 알렸다. 



 그 날 저녁, 거짓말처럼 맑아진 하늘을 바라보는 부대원들의 눈가가 축축히 젖어들었다. PX도, 황금마차도 없는 이 섬에서 하루 세 끼 식사만이 유일한 먹거리였던 우리들에게 발갛게 물든 저녁 하늘은 만찬장으로 향하는 레드카펫처럼 보였다. 부대원들은 도란도란 모여서 내일 경비정이 뜨면 취사병이 어떤 요리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줄 것인지 행복한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었다. 기대감으로 가득찬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음 날, 경비정이 정비로 인해 출항이 연기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대원들의 얼굴은 산타클로스가 아빠란 사실과 그 아빠가 야근으로 인해 선물은 커녕 집에도 못들어왔다는 사실을 듣게 된 어린이처럼 변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추장과 된장 끓인 물을 마주해야 했다. 반찬투정하는 어린아이같은 표정을 한 최병장은 남은 통조림이나 전투식량이 없는가 취사병에게 조심스레 물었으나 어제 먹은 꼬리곰탕이 마지막이었노라 힘없이 말하는 취사병의 목소리는 혹시나 했던 우리들을 절망하게 했다. 그 와중에 눈치없이 "여기다가 계란후라이랑 참치좀 넣으면 꿀맛일텐데 말입니다" 라고 괜한 소리를 뱉은 나는 최병장의 혀에서 참치와 계란후라이를 넣은 비빔밥의 맛이 생생하게 느껴질 때 까지 맛에 대한 묘사를 해야했다.

 사흘이면 정비가 끝나고 오겠다던 경비정은 엿새가 지나서야 섬에 도착했다. 비벼먹을 고추장마저 떨어져서 맨 밥에 된장 끓인 물만 먹어야 했던 부대원들은 경비정이 떴다는 소리에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싱글벙글하며 부식을 가지러 나갔던 부대원들은 한 달치의 부식을 한번에 가져오느라 매우 힘들어 보였지만 얼굴은 설렁탕을 손에 든 김첨지마냥 기쁨과 뿌듯함으로 가득해 보였다. 할 일이 없는 부대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취사장에 모여들었다. 부대에 소녀시대가 찾아온다고 해도 저거보다 들떠있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부식박스를 모두 풀어보았을 때, 우리는 소녀시대의 위문공연은 취소되고 사단장님만 부대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군인들처럼 변했다. 습하고 더운 날씨속에서 경비정에 몇주간 방치되었던 식재료는 이미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걸 보는 우리들의 머릿속에 그동안 대대 군수과가 우리들에게 저질렀던 횡포가 하나하나 떠올랐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닳아서 너덜너덜해진 장비들을 신품으로 교체해주길 여러차례 요구했지만 번번히 무시되었고, 치약이나 비누, 휴지 등 소모품은 그냥 휴가자에게 돈을 주며 사오라고 하는것이 관례가 될 정도로 보급이 안나왔다. 우리들이 먹을 수 있었던 유일한 간식거리인 컵라면과 건빵과 맛스타는 항상 보급량의 절반정도만 나왔었고, 식자재도 대대에서 가장 오래된 물품만 골라서 주는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었다. 심지어 연초도 모자르다고 덜주는 놈들이었으니. 오죽하면 타 부대 병사들 사이에선 "우리의 주적은 간부다" 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 부대에선 "우리의 주적은 대대 군수과 씨x놈들이다" 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 

 깊은 슬픔에 잠긴 자들과 극심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자들 가운데서 취사병은 "최대한 먹을 수 있는건 살려봐야지..."라며 전쟁의 잔해를 뒤적이는 피난민처럼 썩은 식재료를 뒤적거렸다. 취사병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로 그나마 상태가 양호했던 아주 일부의 파와 감자와 당근정도를 건져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근이 들어간 된장국을 먹는 경험을 했다.

 결국 정년퇴임까지 1년 남짓 남아서 항상 허허 웃으며 "좋은게 좋은거다. 유도리있게 해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던 우리 사람좋던 기지장님(원사. 기무대 출신)마저도 도저히 참을 수 없으셨던지 대대 군수과장에게 전화로 쌍욕을 퍼붓고 다음날 새벽같이 대대에 쳐들어가서 행보관과 담판을 짓고 부대로 복귀하셨다. 다음부터는 격오지 보급을 최우선으로 해주겠다는 행보관의 약속과, 기지장님의 사비를 털어 구입한 15근의 삼겹살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양손 가득 들고서. 


 그 날 저녁.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삼겹살을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내 얼굴을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길고도 지독했던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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