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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래서 아쉬운 -너의 이름은 - 약 스포
게시물ID : animation_4068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ksow12
추천 : 7
조회수 : 35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1/07 17:47:02

 낡고 늙은 것들이 이 영화에서 낄 자리는 없다. 더욱이 죽은 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다.

이 영화는 달달하고 향기롭고 세련되었다. 그 자리에 죽은 사람들이 누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느낀 건 도대체 이 영화가 도호쿠 대지진과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보자. 이 영화를 보고난 후 타키와 미츠하의 사랑 이야기에 여운이 남을 망정 잊혀진 재해의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나, 안타까움을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

 너의 이름은? 의 질문은 단순히 운명에 의해 맺어졌지만 안타깝게 떨어지게 된 사람에 대한 애정고백일수는 있어도 이 영화는 절대로 늙고 낡은것들, 그리고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도는 아니다.

그리고 그건 신카의 마코토의 강점이자, 한계이다.

 신카의 마코토의 영화는 딱 하나의 주제를 계속해서 변형해서 차용한다. '소통의 단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부터 시작한 이러한 소통의 단절은 계속해서 그의 작품내내 변주되어 왔다. '시간,공간,언어,' 등의 단절로 인한 소통의 단절은 불가항력적인 방해물에 의한 단절이고 인물들은 그 방해물들을 넘기위해 고군분투 해나간다. 거기엔 서로에 대한 사랑, 서로에 대한 믿음, 서로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그 애정과 사랑, 그리고 극복해 나가자고 하는 의지는 결국 오롯이 두 사람만의 것이다.

 결코 이는 낡고 늙은 것들이 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거기엔 아름다운 두 사람만이 남아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공간만이 남는다. 그렇기에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아름답다. 미려하다. 애절하다. 소통할 수 없는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부제는 청춘의 아픔이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보고 더 이상 소통될 수 없는 우리의 과거 시절을 반추하며 추억에 잠긴다. 애저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그곳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계속해서 늙고 낡고 죽은 사람을 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신카이 마코토가 보여준 한계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멸망하건, 우주가 멸망하건, 혜성이 떨어지건, 상관 없다. 단지 중요한건 두 인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초속 5cm의 이사를 통한 단절과 별의 목소리의 범 우주적인 단절이나. 혜성에 의한 단절은 서로 다를바가 없어진다. 중요한건 세상이 멸망하거나 재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두 사람의 단절이 끊긴다는 것이고, 결국 이는 신카이 마코토의 한계로 이어진다. 조연들은 주인공의 애절함에 함몰되고 사랑 이야기 그 뒤의 어떠한 의미도 남지 않는다.

달콤한 사탕을 먹는듯한 기분이다. 눈부시게 달콤하고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타키는 혜성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너의 이름은? 의 질문은 오로지 미츠하에게만 닿아있다. 조연들은 함몰되고 그 자리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상과 연출과 캐릭터의 사랑 이야기만이 공간을 채운다. 그건 꿈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쉽사리 깨는 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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