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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에서 눈 치운 썰
게시물ID : military_114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로배웠어요
추천 : 23
조회수 : 2495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2/12/06 22:09:32

때는 바야흐로 1997년 초.

강원도 동해안에 위치한 해군부대에서 일.

새벽 4시부터 아침 8시까지 현문당직이었음.

현문은 배에서 육상으로 통하는 다리가 놓여 있는 출입구.

나는 현문부직사관을 서면 당직병들은 두시간만 서게 하고 재움.


그날은 당직병이 입대한지 얼마 안된 이병이었음.

그날따라 이상하게 잠도 안 깨고 피곤했던 나는

당직병에게 현문을 맡겨 놓고 현문이 내려다보이는 30mm 똥포 사수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음.

잠깐 졸았나 봄.

화들짝 놀라서 깨어 보니 사수석 앞창이 하얀거임.

"ㅆㅂ 날이 샜구나. ㅈ됐다"를 외치며 뚜껑을 여는데 뭐가 후두둑 떨어짐.

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함박눈이 펑펑 내려서 쌓여 있었던 거임.


사수석에서 나와서 보니까 우리 당직병이랑 옆배 당직병이 눈싸움을 하며 놀고 있음.(둘이 동기)

그쪽 배 부직사관은 그런 당직병들을 아빠미소로 쳐다보고 있음.

빗자루를 가져다가 후갑판을 싹싹 쓸고 육상까지 나가서 폭풍 빗자루질을 했음.

그리고 사관실에 전화를 했음.

당직사관, 자다가 전화 받음.

참고로 당시 당직사관은 사관학교 졸업하고 뭔 교육을 길게 받고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신임소위였음.


나 : 현문부직사관입니다.

당직사관 : 어. 이 새벽에 왠일?

나 : 지금 눈이 옵니다.

당직사관 : 어 그래?

나 : 많이 옵니다.

당직사관 : 어 그래? 그럼 당직병이랑 눈사람이나 좀 만들어 놔.

나 : (이 인간이 미쳤나?) 눈 치워야 됩니다.

당직사관 : 어 그래? 그럼 좀 치워.

나 : 이걸 저랑 당직병이 어떻게 다 치웁니까?


우리 배는 길이만 100m 짜리임.


당직사관 : 둘이서 살살 치워봐.

나 : (대략 어이없음) 장난하지 마시구요. 애들 깨워야 합니다.

당직사관 : 애들 지금 한창 자고 있을텐데 어떻게 깨우냐? 아침에 치우면 안될까?

나 : 아침에도 치워야 하지만, 지금 한창 쌓이고 있을 때 좀 치워놔야 합니다.

당직사관 : 아침에 한꺼번에 치우면 되잖아.

나 : 그럼 더 힘들어집니다. 일단 지금 좀 치워놓고 아침에 마저 치우는게 훨씬 낫습니다. 애들 고생도 덜하구요.

당직사관 : 왠만하면 아침에 하지?

나 :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안됩니다.

당직사관 : 그렇게 많이 와?

나 : 네

당직사관 : 알았어. 좀만 기다려봐. 내가 나가서 볼게.


잠시후 당직사관이 주섬주섬 챙겨입으면서 나옴.

눈 내리는 걸 보더니 깜짝 놀람.


당직사관 : 눈이 언제부터 내린거야?

나 : 한시간도 안됐습니다.

당직사관 : 그런데 이렇게 많이 쌓인거야?

나 : 네


그리고 지금 빨리 애들 깨워서 눈을 치워야 한다는 나와

애들이 자고 있으니 조금 더 있다가 차라리 평소보다 일찍 깨워서 치우자는 당직사관 실랑이 함.

결국 지금 애들 깨워서 치우고 대신 아침에 조금 더 재우고

함장님 출근하시면 보고 드려서 오전일과를 건너 뛰는 걸로 합의를 봄.


방송으로 애들 깨웠음.

그제서야 군항내에 있던 다른 배들도 부랴부랴 방송하고 난리 남.

잠시후 잠이 덜 깬 애들이 눈을 비비며 나오는데 정말 많이 미안했음.


해군에서는 눈 치울 때 빗자루로 쓸지 않음.

육상부대야 빗자루질을 하겠지만 함정에서는 구조물 때문에 빗자루로 쓸어내기 힘듬.

소화호스 가져다가 물로 눈을 밀어냈음.

우리의 신임소위 깜짝 놀람.


일 잘하는 갑판선임수병한테 소화호스 사수 맡겨놓으니

완전 빠르고 깔끔하게 잘 밀어냄.

그리고 얼기 전에 따신물 뿌리고 걸레로 물기 밀어냄.

불과 30분도 안 걸렸음.


아침이 됐음.

다행히 눈이 그쳤음.

조별과업 없이 애들 더 재우려고 했는데,

갑판선임수병놈이 지가 먼저 애들 선동해서 눈 치우러 나옴.

기특한 색히. ^------^

육상까지 아주 말끔하게 다 치웠음.


갑판장과 갑판선임하사가 이 눈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음.

완전 깨끗하게 다 치워져 있는 거 보고 놀람.


갑판장 : 눈 누가 다 치웠냐?

나 : 애들이 치웠습니다.

갑판장 : 언제?

나 : 새벽에 한창 많이 내릴 때 한 번 치우고 아까 아침에 또 치웠습니다.

갑판장 : 니가 애들 깨웠냐?

나 : 네. 당직사관한테 보고하고 깨웠습니다. 아침엔 지들이 자진해서 일찍 일어나던데요.

갑판장 : 당직 잘 서네 ^______^

나 : 애들이 고생했죠. 특히 갑판선임수병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생했습니다.


갑판장 입 찢어짐.

그리고 함장님께 보고하고 말 것도 없이 함장님께서 먼저 오전일과 휴무 지시 내림.

그날 애들 완전 푹 잤음.

덕분에 나도 좀 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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