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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람이 있다.
게시물ID : freeboard_6399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릴라99
추천 : 2
조회수 : 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6 23:10:02
안녕하세요. 영국에서 디자인 하고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래 작업은 제가 2009년에 용산참사에 대해 작업 했던 기록 입니다. 이런 참사가 반복 되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정권 교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5년 이 땅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http://jhkwon.egloos.com/2592571



사진: 노순택 그날의 남일당 중에서 

용산 참사 유족 증언 (출처: 여기 사람이 있다. 삶이 보이는 창)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사람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일수가 없다. 난도질을 해 놨다. 불에 타서 죽은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잘라져있고 이가 부러져 있고 머리 두개골이 쪼개져 있고 유가족한테 상의 한마디 없이 부검을 했고, 30년을 같이 산 나도 알아 볼 수가 없다. '돈없이 사는것이 죄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꼭 올라가서 성공하고 돌아 오겠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올라 갔다. 
마지막으로 된장국을 해서 먹였다. 바뻐서 못먹는다는 걸 억지로 먹였다. 그래도 밥먹으니까 속이 풀려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걸 먹여서 보냈으니 다행이지, 안 먹였으면 얼마나 후회가 됐을까. 지금 너무 너무 힘들다. "
- 양희성씨의 부인, 김영덕씨 

"1월 29일에 아버지와 빙어 낚시를 가기로 했었다. 친구들도 같이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나와 동생은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받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버지는 내 또래 깡패들에게 얼굴을 얻어 맞은날 혼자 술을 드셨다. 아버지가 용역들에게 맞고 있을때 경찰은 신고를 받고도 멀리서 지켜 보기만 했다. 그해 겨울에 살던 집이 갑자기 없어졌다. 기르던 강아지도 없어졌고 모든것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돌아 가시기 전날 5일정도 못들어 온다고 했다. 
밥 잘 챙겨 먹고 어머니를 잘 돌보라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줄 몰랐다. 많이 야윈 어머니를 보는것이 너무 힘들다. 8살짜리 동생이 무너져 버릴까봐 무섭다. 사랑한다는 말한마디 못하고 보낸것이 너무 죄송해서, 너무나 억울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
- 윤용현씨의 아들, 윤현구씨 

"철거 깡패들이 시아버지의 급소를 때렸다. 70대 노인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말이 안나온다. 주먹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옷이 찢기고, 그 광경을 본 시민들도 어처구니 없어 했다. 백주대낮에 30대 남자가 70대 노인을 때리고 끌고 갔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다가와서 카메라를 부셔버렸다. 경찰을 불러도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도망가 버렸고, 깡패한명이 대걸레자루에 갈고리를 들고 나타나 가게 간판을 다 부셔 버렸다. 아버지가 깡패들을 고소하자 그 깡패가 맞고소 했다. 경찰은 우리를 잡으러 왔다. 말이 안된다. 시아버지는 한 자리에서 30년 동안 장사를 하셨다. 이사도 한번 안가셨다. 가게는 작고 우리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살만했다.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아버지가 불속에서 타 죽고, 우리 막내동생이 무릎뼈가 다 으스러진 채 감옥에 갇히게 될줄 정말 몰랐다.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이었다. 
아버지와 남편이 대모하러 옥상에 올라 가자 신고해도 오지 않던 경찰 수천명이 몰려왔다. 아버지와 남편이 엄청나게 맞을 거라는 생각에 어쩔 줄을 몰랐다.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도 죽을 줄은 몰랐다. 살려고 대모한거지 죽으려고 대모한게 아니다. 손이 없고 발이 없고 목이 잘려 나갔다. 가족들 동의 없이 어떻게 이렇게 시체를 훼손할 수가 있나. 이젠 뭐가 진실인지 뭐가 현실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대통령도 장로고 조합장도 교회 장로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할까 너무 궁금하다."
- 이상림씨의 며느리,  정영신

"갑자기 아이들 생각이 나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이 과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 애들이 난도질당한 아버지를 봤을때,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데.. 우리한테 설명도 안하고 부검한거 결과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일년이 가까이 지나도록 알려주지를 않는다. 
뼈만 남은 시신을 가지고 청와대로 갔다. 내 남편인지 알아 보지 못할만큼 훼손 됐지만 그게 마지막 선택이었다. 이렇게 진실을 알려 달라고 구걸하는게 너무 비참해서 미칠거 같다. 우리한테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권력이 이렇게 무섭다는걸 처음 알았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

"우리가족에게 겨울은 항상 추웠습니다. 하지만 좁은 냉동실 안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때 마저 그립습니다. 이제..겨울도 다시 오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아빠가 진짜 죽긴 죽었나보다 싶어요. '상현아 아버지는 평생을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다. 정직한게 죄라면 우리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 잘 보살펴 드려라. 몇일 걸리지 않을거야.' 난 어떻게 대답했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빠와 엄마와 나는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 이성수씨 아들,  이상현

"죽으려고 거길 누가 올라가겠어요. 다 살려고 가는거 아니에요. 일년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해 병원비가 3억원이 넘는다. 이제 물러날 곳이 없다. 하지만 병원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무섭고 힘들다. 지친다. 이 일이 잘 해결된다고 해도 다시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이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 
갑작스러운 일을 당해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섯 가족 모두 너무 힘이 듭니다.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는데 정부는 꿈쩍도 안 하고 사람들이 지친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남편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로 마음 맞는 사람들과 결정해서 한 일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진상이 밝혀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못 하는 일이고 같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 한대성씨의 부인, 신숙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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