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대략 길군 쩝 난 길글 기피증이 있어서 안읽는데 밑에 어떤님이 제국일보열독자식비판을 한다길레 황당해서 읽었소 읽으면서 죽는줄알았소 난 노회찬이란사람을 안지가 별로안되오 안다고도할수없지요 민노당에 그만큼관심이없었다고해야 옳을것이오 노회찬 당선자가 tv에 나와서 한마디한마디하는것에 난 시원함을느꼈소 팬수준은 아니지만 호감을 가졌단말이오 그런데 제국일보에가서 강연을 했다는글을보고 내눈을 의심했소 내용을 읽어보니 학생때부터 구독을했다고하네요 이해합니다 저도 처음접한신문이 제국일보였으니까요 물론 안티제국을 한이후로는 제국닷껌에도 접속을 잘않하지만..... 선생님이 사설보면 문장실력도좋아진다고하니 학생은 선생님 말씀을 잘들어야쥐요 그런데 대통령재하에서는 국회를해산할수없는데 국회에와보니 국회는 해산되있더라 제국일보가 압력을받아서 가판내용과 실제 집으로 배달된내용이 틀리더라 그래서 제국일보에의해서 인생의전환점이 바겼다는건 영 코메디갔더군요 제국일보가그랬다면 다른 매체에서도 더했으면 더했지 제국보다 덜하지않았다는건 제 추측이지만 ..... 그리고제국일보가 신문에질면에서 가장좋아서 제국일보를 30년간 구독하고있다고하는데는 제가 넘어가는줄알았습돠 그라고 좋은말도많아했더만요 분배,성장,언론개혁,등등등.... 그러나 저는 전문을 읽으면서 "소귀에 경읽기"라고 생각이드는데 님들생각은 어때요 제국일보기자가 질문을 했슴니다 북한이 급속해게붕괴하면 어떻하실거냐구 김정일이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중국이 지배를하면 어떡하실거냐구...... 노회찬당선자께서 답변을 잘하셨지만 이런 식의사고를 가진 제국일보의기자들앞에서강연을 하셨으니...... 민노당지지하시는분중에제국일보에 호감을가진사람은100%없다고 믿기때문에 이글을 씀니다 그리고 분명히 집구넘어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노회찬 민노당 국회의원 당선자 강연 전문 조선일보사 노동조합에서 저를 불러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김희섭 위원장께 감사드린다. 실은 제가 여기 온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일부는 좀 걱정을 하셨다. 말 많은 사회에서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을까, 어떤 분은 본전을 건지기 힘들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욱더 가고 싶었다. 사실 저는 조선일보와 나름대로의 인연을 갖고 있다. 조선일보 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인연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을 것이다. 제 기억으로는 중학교 2학년때인 1970년 부터 조선일보를 구독했다. 구독 이유는 학교 선생님께서 신문 사설을 공부하면 국어 실력이 는다고 많은 학생들에게 사설 읽기를 독려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읽어왔다. 감옥 안에서도 조선일보를 봤다. 집에서 조선일보와 한겨레 두 가지 신문을 보고 있다. 저는 조선일보 보면 안된다는 운동을 할 때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조선일보를 봐왔다. 왜냐면 저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보는 이유를 말하면 일단은 기사 품질때문에 보고 있다. 그리고 논조 때문에 조선일보를 본다. 조선일보 논조는 제가 동의하든 안하든 제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보고있다. 두 신문을 아침에 보고 난 뒤에 출근을 한다. 저는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다. 학생운동 10년, 노동운동 10년, 진보정당운동 10년 도합 30년. 제가 이런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런데 이런 일을 걷는 데 조선일보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제가 이 길을 걷게 된 것은 10월 유신 때문이다. 1972년 10월 17일 제 기억으로는 오후 5시에 국회를 해산하고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계엄도 선포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제가 만 16살때인데 상당한 충격이었다. 왜냐면 제가 중학교 때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중심제의 차이점에 대해 배웠고, 대통령중심제에는 국회 해산권이 없고 의원내각제에서는 있다는 게 시험 문제로 자주 출제되던 때였다. 집에 가서 제가 잘못 알고 있나 교과서를 뒤져보니까 역시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고 나와있었다. 라디오가 잘못됐는가 했는데, 제가 잘못들었나 해서 다시 광화문 네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요즘)서울시 별관인 당시 국회 앞에는 장갑차가 한 대 있었고, 광화문 자리 경복궁 당시 중앙청 앞에는 탱크가 두 대 있었다. 그걸 보고 정말 국회는 해산됐구나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교과서에 나오면 진리이자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소년이었기 때문에 교과서와 다른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스스로 소화해낼 수 없었다. 누가 곁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지도 않았고. 그래서 몇 시간을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저녁 9시 경에 집에 가야겠다 생각해서 조선일보사 앞을 지나는데, 거기서 18일자 가판을 팔고 있었다. 당시에 제가 집에서 조선일보를 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신문을 사서, 그 다음날자 신문을 그날 저녁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집에 갔다. 제 기억으로는 가판 신문의 1면 탑이 “국회 해산”이었다. 아주 큰 글자로.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집에 배달된 신문 1면에는 좀더 온건하게 “10월 유신 선포”라고 써있다. 저는 신문이 판갈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여기에 대단히 의혹을 가졌었다. 뭔가 압력이 들어와서 제목이 바뀌지 않았나 오해를 했던 것. 당시 1972년 10월 18일 가판과 집에 배달된 신문 두개 모두 지금도 집에 갖고 있다. 저희 집을 방문한 모 방송 프로그램 촬영에서도 보여준 적이 있다. 신문을 간직한 이유는 이날부로 제 인생이 달라졌기 때문에, 나름대로 개인사이긴 하나 기념하고자 늘 갖고 있다. 또 한가지 기억은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던 고 선우휘 선생과의 만남이다. 저는 스스로 나중에 이렇게 표현했다. “전쟁을 겪은 소년은 이미 소년이 아니다”. 이날부터 저는 그 전과 다르게 모든 사물들을 보기 시작했고 해가 갈수록 그런 방향으로 계속 갔다. 고등학교 때 10월 유신을 반대하는, 10월 유신 1주년 때 유신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살포를 하고 데모를 2번 했다. 이때문에 조기 방학을 만들어 내서 학우들을 기쁘게 하기도 했다.(웃음) 고등학교 내내 그와 연관된 서적들을 많이 읽으면서 고등학교(경기고)를 마쳤는데.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즐겨보던 잡지가 몇 가지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월간 ‘다리’ 또 하나가 ‘씨알의 소리’였다. 제 기억에 월간 다리는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선거 한 해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 심복인 김상현 현 의원을 주간으로 해서 만든 대단히 급진적인 월간지. 그 잡지를 제가 거의 다, 그 잡지는 중간에 강제로 폐간됐다가 복간됐다가 나중에 완전히 없어졌는데, 판매 금지됐을 때 몰래 사는 재미를 느끼다가, 김지하씨의 시, 국회 속기록 등이 당시로선 드물게 거기에 실렸다. 당시 발간되던 다른 잡지들 예를 들어 신동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급진적 잡지였다. 고등학교 때 ‘다리’에 심취하다 발간하는 사람인 김상현이 어떤 사람인지 꼭 만나고 싶어서 교복을 입고 사무실을 찾아갔었다. 김상현씨가 왜 왔냐고 해서 “다리지에 실린 글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싶다’고 했더니 “집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가고 그런뒤 찾아오라”고 일언지하에 면박을 당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본 것이 씨알의 소리였다. 당시 1974년 남북 공동선언이 있었고, 대단히 들뜬 분위기였는데. 씨알의 소리는 당시 함석헌 옹이 발행하던 아주 얇은, 제대로 월간을 지키지도 못하는 잡지였다. 거기에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선우휘 선생과 동아일보 천관호 선생 대담이 실렸는데, 그 어린 나이에 읽기에는 그 두 사람 중에 선우휘의 견해가 훨씬 더 급진적이고 저에게 많은 감동을 준 걸로 기억한다. 그 다음엔 선우휘씨를 만나기 위해서 지금 업무국이 있는 자리에 학교 마치고 가방을 들고 가서 수위에게 이야기 하니까, “누구 만나러 왔냐”고 해서 “선우휘 편집국장 만나러 왔다”고 했더니, 더이상 물어보지도 않고 집에 가라고 해서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다. 집에 가서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다가 며칠 후에 또 갔다. 이번에는 전화를 하고 가니까 확인해보더니 올라오라고 했다. 그래서 2층인가 3층인가 기억은 안나는데 올라갔더니 마침 점심 때였는데, 아주 덩치도 좋은 고 선우휘 편집국장께서 책상에 앉아서 혼자 뚝배기 설렁탕을 드시고 있었다. 그걸 보고 굉장히 감탄했다. 저렇게 높은 사람이 뚝배기에 밥을 먹고 있다. 역시 훌륭한 사람은 다르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서 이야길 했는데 제가 한 이야기는 기억이 나는데 제가 들은 이야기는 기억이 잘 안난다.(웃음) 그리고 제가 그분에게 당돌하게 “선생님을 꼭 모시고 싶다. 우리 학교에 와달라”고 했다.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일년에 한번씩 외부인을 강사로 모셔서 한시간 정도 특별강의를 듣는 게 있었는데. 누굴 모실까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우리반에서 그걸로 토론을 했는데 두 패가 갈렸다. 저는 학교내 비주류 자임, 중학교를 지방에서 다신 사람들 편에 서있었고 당시 테니스도 치고 별 네개짜리 장관 아들 등 주류들은 서울 출신이 많았다. 주류 학생들은 김찬삼씨라고 세계 일주로 유명한 여행가를 부르자고 했고, 저는 학우들에게 “너희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지 아느냐.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모셔야 한다”고 해서 전혀 주장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이 개입해서 특별히 두 사람을 다 부르게 됐다. 제가 선우휘 편집국장께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와서 이야기를 해주겠다 해서 굉장히 마음이 들떠 기다렸던 상황이 기억이 난다. 선우휘 선생이 학교에 오셨는데 막상 강의를 하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떤 주제로 말해달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어린 나이니까 그런걸 잘 몰라서 그런 게 없었다, 저는 씨알의 소리에서 제가 본 남북 공동 성명과 남북 관계 변화에 대한 학생들이 잘 모르는 상황 설명을 해주길 기대하고 모신 것이었는데 강의 주제를 제가 말씀 안드리는 바람에 선우휘 국장님은 ‘어린 아이들이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보낼 것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굉장히 곤혹스러웠고, 제가 학우들에게 ‘너희들은 세상을 모른다. 남북 공동 선언을 아느냐’하고 모셔왔는데 이분이 인생의 낙이 어떻고 결론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하여튼 훌륭한 강의를 하고 돌아가셨는데 저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저는 아직도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들이 만 30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제 기억에 남는다. 그 후로도 조선일보는 저에게 있어서는 매일 아침마다 만나는 친구처럼 오늘까지 지내고 있다. 언젠가는 조선일보사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구두로 하든 글을 쓰든 이 이야기를 한번 드리고 싶었는데 이런 좋은 기회에 이 말씀을 드리게 되서 저도 큰 숙제를 하나 해결한 것 같다. 나머지 시간은 제 소감과 외람되지만 당부의 말씀도 드리고 싶다. 민노당이 이번에 국회에 들어가면서 많이 실제 민노당이 차지한 객관적인 지지율이나 의석 점유율에 비해서 훨씬 많은 관심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선거의 가장 인상적인 사건으로 민노당의 원내 진입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속한 당에서 저를 포함해서 10명이나 되는 사람이 원내 진출해 기쁘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 문제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 그것은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세력 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세력 교체가 민노당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됐다. 과반수가 됐다. 오랫만에 여대야소가 실현됐다. 그러나 지금 열거한 측면 보다도 저는 1961년 5·16쿠데타 제 3공화국의 출범 이래로 40여년이 지났는데 지난 40여년간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은 초기에는 군사 쿠데타에 의해 정권을 잡았고 그 후에는 개발 독재를 추진한 당이고, 1997년까지 집권한 당이다. 이 당이 바로 민주 공화당이자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이 당의 주역과 외양도 변했고 중간에 몇 차례 세력 규합도 있었지만 이것은 하나의 당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생각한다. 바로 이 당 영남에 지역적 기반을 두로 보수 진영 내에서는 강경한 보수 정치 세력으로서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이 세력이, 정당이 1961년 이래 제1당의 지위를 놓친 것은 이번 총선이 처음이다. 이런 저런 일이 다 있어도 제1당의 지위는 놓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놓쳤다. 이것은 이 당이 지난 두 번 대권 도전했다 실패한 것까지 포함해 일시적 우연이 아니라 완고한 흐름을 갖고 있는 추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바로 이 대목은 저에게는 한국의 범 보수진영 내에 주류 세력과 비주류 세력이 있는데 주류가 영남에 기반을 둔 세력이라면 비주류는 자유주의적 온건 보수 세력으로 민주당이나 평민당 열린우리당까지 포함한 세력이라고 볼 때 범보수진영을 주도 대표해온 당이 한나라당이었는데, 강경보수정당이 온건보수진영으로 세력 교체가 됐다. 이번 총선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상당기간 갈 완고한 흐름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한나라당은 이번 탄핵 역풍 속에서도 120석을 넘는 막강한 실적을 냈다. 그러나 그것은 영남의 인구가 많거나 지역 의석이 많거나 하는 요인이 더 많이 작용한 것이고, 한나라당 자체는 여전히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있어서도 뭔가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자꾸 뒤쳐지는, 뒤쳐지다 보니까 오히려 기사 회생하기 위해서 더 뒷걸음질 치는 낡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그런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온 게 아닌가, 그런 것이 이 경쟁에서 계속 뒤로 밀리고 대선에서 두 번 밀렸을 뿐 아니라 2007년에는 한나라당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도 주지 못하는 이런 현재의 상황 당분간 이런 상호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 생각에 열린우리당이 개혁적인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이런 세력 교체가 이번 총선에서 나타났고, 그와 함께 볼만한 지점은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집권 여당은 시간이 갈수록 오른쪽으로 가지 않겠느냐, 임기내에 계속 오른쪽으로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뉴욕타임지가 최근 한국 사회가 총선 이후에 왼쪽으로 간다는 보도는 민노당같은 진보 정당이 처음으로 10석이나 얻었다는 점에서 적절한 지적일 수도 있지만 열린우리당의 득세가 한국 정치권이 좌경·좌편향으로 간다는 것으로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내에는 두 개의 세력이 갈등과 대립 거듭하고, 앞으로도 거듭할 것으로 본다. 그 하나는 당의 규모에 연연하지 않고 훨씬 더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노선을 견지하려는 세력이고 또 한 세력은 집권 여당으로서의 안정성, 그리고 정권 재창출에 더 무게를 두는 세력이 있는데, 이 후자가 훨씬 더 압도적이라고 보고 있다. 예컨데 문성근과 명계남씨 경우 총선 중 “열린우리당은 잡탕이다. 분당 필요가 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었다. 이때 조선일보 정치면에서 굉장히 키우고 다르면서 읽는 독자들에게 마치 분당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는 것 처럼, 저 당은 미래가 불안정한 당이라는 인상을 주게 면 배치고 크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 분당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열우당은 이미 출범할 때 부터 많은 이물질이 있었다. 문성근씨 등은 좀 더 개혁적인 비주류로서 점점 오른쪽으로 가는 열우당의 현실에 대한 저항이자 경고를 했다고 읽어냈다. 최근 유시민의원이 중앙 당 안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 한나라당은 약간 왼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제가 볼 때 한나라당은 현존하는 당 중에 정체가 가장 불명확한 당이 아닌가. 열린우리당은 정체성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당이 아닌가. 한나라당의 맨 오른쪽에 있는 분들 좀 떼내고, 영남 지역주의 결별하고 남는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남북문제에 대한 정책은 대개 정쟁의 과정에서 여당과 야당의 위치에서 정쟁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산물이라서, 집권했을 때와 야당일 때 입장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 그 세력의 이념적 본질은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두 당이 점점 수렴되어 가는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어느 당이 어느 쪽을 먹느냐, 어느 당이 더 주도하는 거대한 보수정당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물론 현재로선 이 두 당이 통폐합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것. 민노당이 보기에 두개의 전선이 있다. 하나의 전선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전선과, 또 하나의 전선은 민노당과 전체 보수 정당들 사이에 있는 전선이다. 물론 열우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전선이 뜨거운 전선이고 강하고 큰 전선이다. 신문 뉴스의 80%는 주로 이 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만큼 지배적인 전선이란 걸 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민노당과 다른 보수 정당들 사이의 전선은 실존하는데 이 전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고, 민노당이 억지로 금을 그어 놓는 것이라고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민노당 입장에서는 민노당과 나머지 보수 정당 사이의 전선을 훨씬 더 키우고 더 강하고 지배적인 전선으로 만들어 내고, 한나라당과 열우당 사이의 전선을 점점 약화 소멸시키는 것이 민노당 앞으로 활동의 방향이고 바람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변화는 특히나 수십년 동안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동안 변화 자체가 불허되었고, 변화가 지체되어 왔기 때문에 길게 일제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70~80년 이상 변화가 허용되지 않은 특수한 역사적 과정을 밟아봤기 때문에 지금은 이 변화를 막을만한 힘이 거의 다 해체되어 있다. 여전히 휴전선이 있고 북한이 있고 국가 보안법이 있고 여전히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보수적인 성향과 투표에 있어서 지역주의를 가장 큰 요인으로 투표 행태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이러한 변화를 지체시키는 장애물들은 거의 다 제거 되었다고 본다. 마지막 장애물이 제거되는 게 1987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1987년을 한국 정치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1987년 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물러나는 2002년까지 상황을 제 나름대로 ‘87년 체제’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는데, 87년 이후로 흔히 말하는 부르조아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하에서 변화와 발전 진전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100년전, 150년 전에 있었던 일이 우리는 20세기 막바지에 일어났고 그로 인해서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감히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가 역사를 본 때 미시적으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숲을 보고 변화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보고 성찰하는 것이 어떤 일을 하고 있더라고 중요한 일이 아닌가한다. 우리 사회는 실제로 이런걸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때 넌센스를 스스로 많이 겪고 행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예컨데 전교조 문제만 봐도 처음에는 정부가 전교조를 금지했었다. 학교 선생이 스스로 노동자 자처하고 노동조합 만들고, 애들 잘 가르치지 않는 행태도 못마땅했지만 국민 다수가 원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금지시켰다. 그러나 10년 만에 허용했다. 이는 연착륙을 위해서 10년 끈 것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고. 이는 반드시 전교조 조합원들의 투쟁의 힘에 밀려서만 허용한 게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도 있었고 스스로 10년간 막으면서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는 정리가 되버린 것. 대표적인 국력의 낭비같다. 지금 벌어지는 똑같은 일들은 공무원 노조. 저는 장담컨데 이것도 10년 안걸린다. 아무리 길어도 5년 안에 전교조 경우처럼 될 것이다. 실제로 공무원 노조가 우리나라에서 요구하는 것은 현재 프랑스에서 허용되는 공무원 노조보다 훨씬 더 수준 낮은 조직을 요구하고있는 것. 유럽처럼 경찰까지 노조 만드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아무도 이야기 꺼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강하게 부정하고 노동3권 부정하고 정치적 선언했다고 지금 2명이나 구속시키고 있는데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해도 별 탈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조금 더 내나 보고 다른 경우와 비교해 보면 굉장히 넌센스다. 우리 사회가 워낙 오래 지체되어 왔던 것을 뒤늦게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잘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와 관련해 국력의 낭비나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불필요한 대립 갈등을 유발하는 일들을 슬기롭게 해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민노당이 이번에 이렇게 된 것은 10석일 수도 13석일 수도 있었고 민노당의 대응에 따라서 3~4석으로 그쳤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몇 석이 되든 여하튼 민노당이 몇 석을 얻었다. 분명한 것은 2007년 대선 정도 되면 민노당이 얻을 표는 1등과 2등이 되는 정당과 후보 측에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대단히 신경쓸 수 밖에 없는 득표를 할 것으로 본다. 300만에서 500만 예상하고 있다. 역대 15년간 대선에서 1과 2등이 100만표 이상 표차가 벌어진 적 없었다. 과거 백기완 권영길 1%2% 득표하던 30만표 득표하던 후보가 아니라 300만 500만표 득표하는 의원 한 명 없이 진보정당이라고 빨강 머리띠 매고 나타난 정당에서 300만표 내지 500만 표 얻는 상황이 2007년에 벌어질 것. 그리고 제 18대 총선에서는 50석 이상 얻을 수 있다고 낙관하는 사람이다. 이런 변화는 과연 어디서 나타나는가. 이런 변화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생각하면 거의 우연적인 요소 보다는 필연적인 측면이 훨씬 강한 게 아닌가.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좀더 개방적으로 이해하고 변화에서 좋은 측면을, 자연스럽게 이런 변화가 더 좋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노력을 하려면 변화의 흐름을 정화하게 읽어내는 게 중요하고 필요하지 않느냐. 조선일보에 와서 이런 이야기 안할 수 없는데, 제가 조선일보 모든 기사에 평가를 할 만큼 열독하지는 못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 할애하면서 읽는 신문이 조선일보인데, 예컨데 4월 15일 이전, 4월 2일 이전 민노당 관련 기사와 그 이후 민노당 관련 기사가 대비가 된다고 본다. 최근의 기사에 대해서는 기사의 양 자체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다. 이런 불만을 안가진 것은 얼마되지 않은 최근의 일이다.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4월 15일 이전 더 거슬러 올라가 4월 2일 이전을 보면, 제가 조선일보 독자로서가 아니라 사람이 자기에 대해 해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보는데, 조선일보가 스스로 어떻게 해명할 것이냐는 것. 4월 2일 이전에도 이정도의 면 배치나 양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오는데 그 사이에 자연스러운 과정이 있었어야 하는데. 예컨데 조선일보의 논조가 있을 수 있다. 민노당의 논조가 있는 것처럼. 필요하면 서로 논쟁하고 비판하고 심하면 비난할 수 있는데. 조선일보의 논조로 볼 때 민노당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신문으로서 비판을 넘어서서 ‘민노당과 같은 당은 더 크면 안된다. 조선일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민노당이 덜 자라도록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한 게 아닌가 느껴왔다. ○○일보 보면 제가 답답한데. 2000년 6월 13일 지방 선거가 있었는데 서울시장 후보로 전 감사관 이문옥 후보가 출마를 했는데 출마 한달 전에 민노당 특유의 방식대로 서울시 모든 당원이 투표해서 이문옥씨를 서울 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한겨레는 좀 크게 사진을 다뤄준다거나, 다른 신문은 두 세줄이라도 스트레이트로 다뤘는데. ○○는 안다뤘다. 이문옥씨는 꽤 알려진 유명했던 분이 서울 시장 후보에 도전했다는 것은 사실 기사 정도로 짧게라도 다뤄줘야 하는 게 아니냐, 안다뤘다는 것은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서 너희같은 데는 크면 안되라는 의지까지 읽힌다는 것. 4월 15일 이전에 조선일보가 민노당의 활동에 대해서 다루는 것을 보면 비판적으로도 안다루는, 비판적이라도 다루면 민노당이 클지 몰라, 왜곡 보도도 적을 만큼 안다뤘다. 제가 보기엔 정말 기사 가치가 없어서 일까. 저는 신문마다 논조가 다 있는 것이고 이른바 노선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신문들이 노선을 분명히 하는 걸 바람직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미국처럼 특정 정당 후보를 아예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신문들이 사실상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안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게 아니냐고 생각한다. 따라서 민노당에 대해서 비판하는 신문이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민노당이 어떻게 성장해나갈 당인지 정확한 예측을 하고 있다면 기사의 방향과는 상관 없이 어느 정도 다뤘어야 했던 게 아닌가. 결국 조선일보 정치면에 있어서는 변화를 못읽어낸 것이 아닌가. 읽어냈다면 이렇게 급진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 이처럼 재벌, 복지, 군사비, 북한 문제, 남북 관계 문제 같은 것들 많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언론과 정치권은 이런 변화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어떤 방향과 속도로 할 것인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집단 아니냐. 좋은 방향으로 물꼬를 터주는 것이 필요하다. 민노당은 최근에 정당 지지율이 불쑥 올라갔지만 민노당의 정책과 이미지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민노당에 대한 여전히 부정적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반면 민노당의 정책에 대해서는 저희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반응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예를 들면 민노당 후보와 당이 지지률 4~5%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민노당의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선거 기간 중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순으로 3등이었는데 1등과의 차이가 10%이내였다. 민주노동당의 정책 지지도가 22%였고 민주당은 30%를 넘지 않았다. 민노당이 나아갈 바가 바로 이런 것. 현대 정당에 대한 이미지 잘못된 선입견 관념을 빨리 제거하면서 민노당의 정책에 대한 지지율만큼 올려내는 것. 그러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면 스스로 하겠다. 민노당 정책은 우리의 진심어린 목소리가 담긴 것이기 때문에. 21세기의 정치권의 가장 히트 상품은 민주노동당이 될 것 같다. 집권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힘들지만 분명한 건 전혀 새로운 질과 성격의 정당이 주요 정당 중 하나로, 아직은 아니지만 향후 5년 이내로 다시 등장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 정치의 일상사처럼 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보면서 살아왔고 독특한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 볼 때 우리 사회에는 큰 변화가 왔다. 나는 지금까지 골목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가로등이 커진 뒤 보니까 다만 어두워서 보지 못했을 뿐 신작로가 아니었나 싶다. ■ 참석자들과의 일문일답 =강연 주제가 나와 조선일보로 알고 있는데, 소년 노회찬과 조선일보의 기억은 구체적이었고 사건도 구체적이었는데 소년 이후에 청년 장년 이후에 노회찬과 조선일보의 기억은 민노당의 정책에 가려서 잘 안보인다. 최근의 기사도 좋고 이전의 기사도 좋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으십니까. “최근에 인터넷 chosun.com 김재은 기자가 인터뷰를 하자는데 제가 당의 방침에 따라서 인터뷰에 응하지 못하니 이해해 달라고 이야기 했더니, 일종의 프로필 기사같은 제 신상기사를 썼는데 저를 인터뷰한 어떤 기자보다 더 풍부하게 기사가 쓰여진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또 민노당 출입하는 정우상 기자는 저희 집에 쳐들어온 유일한 기자다.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조선일보 기사 관련에서 여러가지 이야기할 수 있다. 기사 품질에 대해서는 너무 호평하면 오해받을까봐 자제하겠다. 상당히 품질은 상대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가 어떤걸 느끼는가 하면, 이게 신문사인지 조선일보 당인지 특정한 입장을 표출할 때 언론으로서의 입장을 넘어서서 그 주장을 정말 이 사회에 관철시키려는 엄청난 의지와 공력이 담긴 예도 참 많이 본다. 주로 정치적 쟁점이 됐을 때 보면. 예를 들면 방송에서 신문 다룰 때 보면, 그냥 방송이 아니라 완전히 물리적인 뭔가를 하는 듯한 일전을 불사하는 듯한 방송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그런걸 방송 프로그램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저로서는 조선일보를 볼 때도 가끔 느껴진다. 우리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너무 주장이 센 게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는다. 제가 어릴 때 공부하려고 조선일보를 보던 30년 전과 신문의 지위와 역할이 다르지 않은가. 방송은 예전에 없던, ‘세상의 아침’같은 뉴스 시간이 아닌 곳에서도 정보를 많이 내보내고. 무엇보다 인터넷이 있다. 저만해도 페이퍼 세대인데, 비쥬얼 방송에 훨씬 더 친화적이다. 촛불 세대, 붉은 악마들 모두 신문 보다 방송쪽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조금 후 IMT2000이 현실화 되면 책상 앞에 앉아서만이 아니라 24시간 허리에서 차고 다니면서 동영상을 볼 것이다. 그때 가서 과연 신문이 하루 12번 배달하지는 못할 것이고, 신문의 지위와 역할이 계속 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것과 신문의 논조와 연관지어 지금보다 심층적으로 고급화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주요 사안들에 관해서 주장들이 너무 과하다. 사회적 캠페인에 나서는 것도 긍정적으로 안본다. 수해가 났다고 돈을 모으는데 신문이 앞서고, 아름다운 가게 하는데 신문사들이 나서고, 제가 볼 땐 후진적인 모습을 아직 못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신문사가 그걸 왜합니까. 신문사는 좋은 기사 써서 공급하면 되지. 신문이 사회를 계도하고 계몽하고. 예전 같으면 ‘오늘은 쥐 잡는 날’ 그런 게 아니냐. 빈곤문제 다루는 것에 대해서 그런 걸 많이 느낀다. 느닷없이 빈곤 문제를 다루는 데 그것을 신문의 영역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예리하고 깊게 다루는 게 아니라 넘쳐 흐른다. 어떤 때는 민노당이 해야할 일인데 여기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 주장도 강하고 활동력도 너무 강하다.” =민노당 경우에도 언론 개혁에 동참하는 것으로 한다. 열린우리당이나 다른 시민 언론단체들 경우 구체적인 언론개혁의 방법 내놓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민노당이 생각하는 언론 개혁의 방법이 어떤 게 있는가. “17대 국회에서 언론개혁 중요한 과제라고 민노당 선거 공약에 설정되어 있다. 어느 정도 원칙적 입장 정리돼 있다. 다만, 세부적인 숫자까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당론이 세세하게 확정돼 있진 않다. 앞으로 필요하면 확장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KBS가 조선일보와 MBC의 전쟁을 다뤘다는데 그런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고있진 않다. 소유과 경영의 분리, 결국 편집권 독립 문제 이런 것은 언론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한 게 아닌가. 다른 나라의 실험들 지켜보더라도 이것은 사회적으로 강제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소유 지분에 관련된 문제도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왜냐하면 금융기관 은행의 경우에도 소유지분 제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 프로로 제한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긴 하지만, 이것은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영향력에 비춰볼 때 필요한 게 아닌가. 자본주의 정신에 배치되는 것으로도 보지 않고 이런 노선도 필요하고, 예컨대 그런 문제 의식 속에서 조선일보사도 주식을 상장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 상장이란 결국에 소유 지분을 다원화 하자는 얘기. 너무 절대적 지배적 주주가 있는 게 과연 언론사의 기능과 발전에 바람직 하지 않다는 문제 의식도 있는 것. 그 다음 아직 확신이 안서는 부분은 시장 문제다. 시장에서의 과다 경쟁, 신문 배급 체계 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 시장 문제 점유율을 과연 몇 프로 몇 프로 구획을 정할 수 있는 것이냐, 올바른 것이냐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오히려 시장 점유율 이야기 하기 이전에 먼저 선행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지 않느냐.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민노당이 총선 공약 중 언론 개혁의 기조인데 더 이상 진도는 안나가 있다. 소유지분 몇 프로 해야 한다거나 시장 관련해서도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 관련해서는 앞으로 더 조사나 연구나 토론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주민소환문제 문제. 탄핵 때 나온 얘기가 ‘어떻게 선출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느냐 .선출된 국회 의원에 대한 주민 소환제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민노당의 주민 소환제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다. “민노당은 주민 소환제와 더불어 국민 소환제, 그 개념에 차이가 있다면 주민 소환제는 지방 자치단체 지방 의회 지방 자치 차원에서 발생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민노당은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많이 가미한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안하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신문에선가 보니까 직접 민주주의 보안하는 것은 굉장히 파퓰리즘으로 보는 데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국민 발안제, 지금 지방 자치 차원에서는 주민들이 일정수 이상 동의하면 지방 의원들 의사와 무관하게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다. 조례 청구권이라고. 현재 국회에서는 청원만 하게 돼있는데 직접 국회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 국민 발안제, 국민 소환제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민노당의 국민 소환제가 열린 우리당과의 차이가 있다면 대통령까지를 소환 대상으로 집어넣는다는 데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도 16대 공약에 주민 소환제를 공약으로 내건 적 있었다. 이런 소환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소환 요건이 굉장히 엄격하게 돼 있다. 만인의 지탄을 받는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사람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지 악용될 소지를 적게 하는 요건을 설정해 놓고 있다. 700만명이 발의….국민 소환제는 각당들이 당 대표를 통해서 말을 뱉어놨기 때문에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길 어느 정도 낙관하고 있다. 지금 열린우리당 당론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언급을 했기 때문에 17대 국회에서 다뤄질 것이고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에 다니는 제 후배가 이야기 하던데, 총선 기간 중 신문이나 TV프로그램에 노회찬씨를 보고 매력적이라고 느껴 팬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원내(院內)에 들어간뒤 경제가 안좋아지고 또 정치하다 보면 분배쪽에 치우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우려하더라. 혹시 내가 하는 일이 한국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주려고 한건데 아예 일자리를 더 없애버릴 우려도 있지 않는댜는 고민을 해본 적 없는지. “그런 고민을 하는 편이다.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민노당의 주장이나 정책이 이상적일 순 있어도 현실성은 없다’라는 얘기를 하는 분이 많은데, 저희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하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저희도 ‘혹시 그렇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편이다. 이번 공약에서 한국정책학회와 경실련으로 부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 중 하나가 각 공약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돈과 어떤 방식으로 돈을 만들 수 있는지까지 다 공약에 붙여놨다. 그것은 민노당의 컴플렉스 때문이다. 하도 민노당 공약에 대해 앞으로 듣기 참 좋은데 다 하려면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느냐, 다 세금 많이 걷어서 하려면 누가 못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다 붙였던 것. 같은 맥락에서 우리 공약이 현실성이 있느냐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지 않을지에 대해서도 늘 의심하고 따지는 편이다. 경제와 관련해서 많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민노당은 분배를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반성장론은 아니다. 성장 중심론, 우선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성장론이 분배 구조를 악화시켰고 빈부 격차를 지난 수년간 계속해서 격차를 크게 만든 것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조금 더 성장하면 성장 지표는 올라가더라도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질 걸로 예견되는 상황. 분배를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고, 학설에 의해서도 입증된 바 있고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경제 주체 중 하나인 가계를 중심으로 한 경제 정책 부분이 굉장히 취약하다. 거의 다 기업, 그 중에서도 대기업으로 보고 있다. 전경련 부회장을 만났을 때도 듣고 놀란 게 5대 재벌은 지금 돈이 남아돈다. 돈을 안풀고 있다. 제가 ‘화나서 안풀고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화나서 안푸는 게 아니라 하도 불안정 요소가 많아서 어디다 풀지 몰라서 아직 결정을 못내려서 안풀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 결국 한국 경제가 이렇게 몇개의 기업에 업혀서 가야하는가. 나라 정책 경제 문제는 불확실성의 여지를 좁혀내는 게 정책의 기본 방향인데 너무 크다고 본다. 한국 경제가 과거와 사이즈가 달라졌기 때문에 지금 수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진 것도 문제라고 본다. 내수 시장의 잠재력, 내수 활성화를 통한 경제 성장 활성화에 대해서 계속해서 과소 평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신문 경제면 읽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이 그런 것이다. 가계를 중심으로 가계 신용 불량, 가계 구매력 떨어져 있고 가계 수입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가계를 중심으로 놓고 가계를 살리는 방향으로 경제 문제를 풀어 나가는. 민노당의 경우 중소기업 서민 경제에서 나오는 것은 중소기업에서 나오는 게 대부분. 수출이 먹여살리지만 수출도 몇 개 품목으로 지표만 높지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데. 반도체 값 하나가 폭락하면 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리 수 있는, 또 투기 자본 일시에 빠져 나가면 IMF 제체 하에 들어가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 민노당이 성장은 안중에 없고 있는 것 빨리 나눠 가지자, 많이 가진 놈 빨리 많이 내놔라, 그렇게 단순하게 이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민노당이 집권하더라도 나라가 살아야 집권할 수 있는 것이고. 분배를 통한 성장, 가계를 중심으로 한 경제 활성화 정책을 민노당이 17대 국회에서 각종 정책을 입안하고 문제제기하는 데 베이스가 될 것이다.”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가 일상적으로 쓰긴 하지만 헷갈리는 경우 많다. 일반 서구에서는 경제 환경 마이너리티 문제로 좌우가 나뉜다고 치면 우리 나라의 경우 공교롭게도 북한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다. 대학생 시절 북한 바로 알기 책도 많이 보면서 지내왔는데 최근 용천역 참사 이후에 북한의 오랫만에 드러나는 실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북한도 사회주의 정당이라는 점에서 민노당도 크게 보자면 같은 계보에서 나온 것인데 과거 유럽에서도 그렇고. 유럽 좌파는 소비에트 체제의 스탈린 독재에 대해서는 더 목소리를 내서 비판했었는데 우리 나라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을 해오고 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수구 냉전 세력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직도 서구에서 진보의 중요한 논리 중 하나가 인권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듣고 싶다.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긴 하지만 이 시대의 한국에서의 진보는 세가지 정도로 생각한다. 평화와 기회의 균등으로서의 평등, 그리고 인권 등 민주주의 문제인데. 이런 핵심적 진보의 지향들끼리 충돌과 모순이 있다. 평화 관점에선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 현실화 시켜야 한다, 국가로 본다. 평화적으로 통일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반도에서 평화가 깨지면 최대 피해자는 남쪽이다. 남북 중에서도 더 큰 피해자는 남쪽이다. 이뤄놓은 게 더 많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방식으로 풀어야하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공격적인 방식에는 반대한다. 제가 2000년 10월에 조선 노동당 창당 50년 기념 행사 한다고 최초로 고려항공 민항기를 타고 평양까지 직항으로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왜 남쪽 사회를 알지도 못하면서 개입하려고 드느냐. 그것은 남쪽 운동권을 도와주는 게 아니다. 남한 자본주의를 잘 모르고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왜 남한의 모순에 대해 간섭하고 지시하기도 하느냐. 관계에도 도움 안되고 남쪽의 운동권에게도 도움 안된다고 명백하게 말했다. 마찬가지로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북한에 대해서 간섭을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갖고 있다. 이 문제가 평화 때문에 생긴 발상인데 진보의 또 다른 가치인 인권 문제와는 부딪혀서 갈등이 있고 고민도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북한 인권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 것은 민노당같은 세력이 아닌가.예를 들어 전두환 같은 사람이 북한의 인권을 말하면 진지하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우리가 필요하다면 거론해야 하는 게 아닌가. 민노당은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거론한 적은 없지만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적도 없다. 민노당 강령에는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대안이 아니란 걸 명백히 밝히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 정부를 없애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북한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다.” =조선일보 인터뷰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 상당수 지식인이 취재 응하지 않는. 옥석이 섞여 있는데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 악으로 규정해서 인터뷰를 안하겠다.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교정을 요구하고 또 그것이 담보 된다면 조선일보와의 관계는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인가. “민노당은 인터뷰를 하지 않는 내부 방침 되어있다. 창당 초기에 정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어떤 곳은 출입 금지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취재까지는 불허할 필요는 없다, 정당으로서 취할 도리가 아니다. 다만 인터뷰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나고 그 당론이 유지되고 있다. 사실 선거 때 마다 조심스럽다. 당론을 확인하는 사람도 있고, 당론을 확인하지 않고 인터뷰에 응했다가 주의를 받은 사람도 있다. 현재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정도다. 저는 이것이 비 정상적인 상황이고 부자연스러운 관계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관계로 넘어가길, 변화가 있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민노당이 공식적으로 그럼 이 부자연스러운 관계가 자연스러운 관계로 변하려고 무엇 무엇이 달라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정한 바는 없다. 제 생각으론 부자연스런 관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자연스러운 관계로 가야할 것인지는 적극적으로 고민을 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어차피 당인이고 그래서 당론에 의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관계로 가기를 바란다.” =취재는 응하는데 인터뷰 응하지 않는 것이 뭔지. 맺힌 부분 풀고 싶은데, 어떻게 할 것인가. “앞뒤 안맞는다는 것을 안다. 문제 의식의 뿌리에는 조중동의 문제 제기가 함께 있는데 왜 하필이면 중앙과 동아는 나두고 조선일보만 거부하냐, 그게 모순이란걸 잘 알고 있는데. 제가 해명을 하자면, 조중동의 관점과 보도 태도에 대한 불만의 표시고 저항이다. 보도 태도와 논조에 대한 강한 반대 그런 것들이 인터뷰 거부 안티로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주변에 보면 피해 의식이 강한 것도 있다. 제가 여기 온다고 했을 때 ‘잘해야 본전이다’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어떤 분은 다섯 가지점에서 걱정이 된다고 해서 놀랐었다. 어차피 정치적인 행위고 그런 내적 모순이 있기도 한 것이다. 쌍방이 더 적극적이고 좋은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고, 그 지적에 대해서는 특별히 변명할 것이 없다. 사실 여기 와서 이야기 하면서 그런 적극적인 모색을 이제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절감하고 있다.” =민노당이 조선일보의 노조 권익 증진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또 80년대 운동권에서 민노당이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떤것인지. “나는 노동운동가로 불려지길 희망한다. 그동안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해왔다기 때문에 사측이 꼼짝 못하고, 해줄 수 밖에 없는 법을 안다. 제가 10년 전에 KBS에 새로운 노조 집행부 들어섰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6개월 동안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임금협상에서 코치를 해달라고 했는데, 임금 테이블을 보고 코치 안하겠다고 했다. 과도하게 돈을 많이 받는 노동자는 극히 드물다. 현대 자동차는 억울한 경우다. 연봉 5000만원이라고 한 번 보도되니까 다들 분노 어린 눈빛으로 사실이냐고 묻는다. 현대차 사람 직접 만나서 물어봤는데 실제로는 20년 근속에 1년에 쉬는 날이 없이 야간. 연장 근무까지 다 했을 때 나온 액수다. 정상적으로 하루에 8시간씩 일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도움이 안될 것이다. 민노당이 운동권에서 얼마나 탈피했느냐, 저는 운동권에서 멀어질수록 민노당은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80년대 운동과 다른 것 민노당을 만든 것 자체가 80년대 운동은 끝났다는 것. 노동 운동 하면서 87년 이후로 현장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이유는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들에게 맡겨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한국 노동 운동은 연구거리다. 아주 독특한 사례. 노선 문제가 많고 견제할 경우 많은 어려움 겪을 것이라 보고 노동 운동 방향 달라질 것. 한국 노총이랑 합쳐져야 한다. 노동운동 내의 기득권 때문에 산별 노조로 나가고 있지 못하다. 진보 정당의 활동을 통해서 권력에 접근하고 이를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NL PD에 대해서. 암울했던 시기 당시 수준에서 나온 운동 노선이다. 민노당은 전혀 설정돼있지 않다. 21세기고. 이 두 노선은 우리 운동권의 일종의 인맥, 동창회다. 당시는 어느 정도 유의미했다 하더라고 지금은 이라크 파병 문제과 신용 불량자 문제에 전혀 상관이 없다. 두 노선 여전히 현존하고 있다. 인맥을 재생산하는 게 상도동·동교동 뭐가 다르냐. 민노당이 발전 성공하려면 민노당 내에서 NLPD에 입각해 움직이는 사람 적어져야한다. 민노당 내 건강한 상식을 가진 당원들이 늘어날 수록 민노당도 발전이 담보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는 80년대 운동의 헌신과 기여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버려야할 것도 많다. 실사구시의 정신이 부족하다. 80년대 운동권들은 대한민국 경제는 망한다고 그랬다. 80년대 초에 차관 망국론이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도 나라 망친다 그랬지만 안 망했다. 그때부터 발전했다. 무조건적인 반대는 극복되어야 한다. 굉장히 고무적이다. 학벌을 굉장히 따지는 곳이 그런 동네다. 어르신이 생활 용어가 아니라 정치적 용어로 남아있는 곳. 삼성그룹은 30대가 이사될 수 있어도 여기선 나이어린 학번 적은 후배가 선배를 제치고 큰 권한을 갖지 못한다. 그런면에서는 자본주의 기업 보다 더 수구적으로 볼 수도 있다.” =국회의원은 구청장과 다르다. 의원이 됐다는 것은 국가 집권자가 될 수 있는 것을 전제한다. 가정적인 질문이지만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 김정일이 사망하고 중국이 북한 점령했을 때 우리가 과연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난감한 상황이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중국이 북한에 함부로 진격할 만큼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힘의 균형이 쉽게 깨지겠느냐. 중국 정부가 그렇게 균형을 잃은 판단을 할 것인가 의문도 있고. 남북 관련해서 남한 정부 경우에 남북의 주도성이 지금보다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개인의 견해인데 나름의 지론은, 북한 정부가 계속해서 한국이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 아니냐는 식으로 힘의 절대적인 결정권이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미국을 상대로 하는, 남한을 제쳐놓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 남쪽도 미국에 위임하는 식의 방식에서 탈피해 남측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를 훨씬 더 긴밀히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를 위해서 중국과의 관계에 비중을 많이 옮겨야 한다. 어차피 가장 가까운 나라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함부로 개입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될 때 그 어떤 다양한 시나리오도 갑자기 붕괴되지 않을 때 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 상황을 원해서도 안되고 유도해서도 안된다.” =요즘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신문에서 읽고 싶은 내용은? “다른 매체가 늘어났다. 인터넷도 있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젊은 세대일 수록 방송과 동영상에 의존적이다. 붉은 악마와 촛불 시위 세대, 이번 탄핵 때도 그런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여파를 중요하게 봐왔다. 일단 경쟁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신문 외에 볼 게 많아졌다. 매력적인 볼 게 많다. 과거 같으면 신문을 봐야 할 독자들인데. 탄핵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평소에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그 사안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여성들만 들어가는 드라마 미주알 고주알 사이트에서 조차 게시판에 누구누구 죽이고 살리고로 가득했다. 그런 트렌드를 봐야한다. 그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문을 봐야만 충족되는 것들을 늘여가야 하는 게 아닌가. 예를 들면 유럽에서 주말판 하나를 보기 위해서 그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이 많듯이, 그런 식으로 지금 신문 보는 독자들이 옮아갈 수 있다. 심층 보도와 고급화된 기사가 요구된다. 요즘에 나는 토요일에 책 소개하는 섹션을 상당히 많이 보고 있다. 이한우 기자의 칼럼도 많이 보고 있고. 문갑식 차장의 기사를 볼 때마다 ‘이건 2시간 이야기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개인사에 있어서 조선일보 선우휘 편집국장을 존경한 적도 있었는데 초청한 데 감사드린다. 기자는 지금도 제가 선망하는 직업이다. 자부심을 갖고 사회를 위해서 열심히 활동해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