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노래를 꽤 불러 가수를 시켜주겠다는 사람을 몇몇 만났었다. 친구가 배우는 기타교실에 우연히 갔다가 밤무대에 서던 기타리스트에게 제안을 받기도 하고 노래방 옆방에서 듣고 건너온 연예기획사 직원도 있었다. 지금생각해보면 내 노래실력이 가수를 할만큼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순진한 학생을 꼬시려던 검은손이 아니었나 싶다. 암튼 이리저리 다 뿌리치긴했지만 노래를 워낙 좋아해 취미정도로는 하고 싶었다. 그러다 친구와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전봇대에 붙은 "음악서클"모집 광고를 보았다. 서클회장이라는 한 오빠를 만나 연습실로 향하였다. 이름만 서클이었고 회원이라고는 회장인 오빠 하나 뿐이었다. 연습실이라고 불리는 곳은 그냥 오빠가 가족들이랑 사는 쪽방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가난한 집을 본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집에 커피를 살 돈이 없어 연습이 끝나면 프림에 따뜻한 물을 부어 우리에게 건내주고는 했다. 우리도 한 달에 용돈 3만원씩 받던 때라 커피를 사들고 갈 여유가 없었다. 친구와 나는 일주일에 2-3번씩 오빠집으로 가 오빠 반주에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오빠가 평소와 다르게 매우 들뜬 목소리로 우리를 맞았다. 80년대말인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대한민국 락계의 거물로 불리는 락밴드에서 오빠가 직접 작곡한 곡을 듣고싶다고 연락이 온것이다. 친구와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본인이 가수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오직 작곡에만 매달렸고 한우물만 파온 가난한 오빠에게 기회가 온것이다. 오빠는 그 밴드를 만났고 작곡한 곡을 들려줬다. 그들은 만족해 했고 그 곡들을 사겠다고 했다. 500만원을 제안했고... 그 당시 500만원이란 적은 돈이 아니었다. 무명작곡가에게 지급하는 금액치고는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오빠는 고민끝에 거절했다. 그 밴드에서 내건 조건이란게... 곡들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앨범에 올리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오빠가 작곡한 곡이 그 밴드 멤버들이 작곡한 곡으로 둔갑이 되는 거지... 500만원이라면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매일 시장에 나가시는 홀어머니의 힘겨움을 덜어드릴 수 있는 큰 돈이었다. 인간으로서 왜 고민이 없었을까... 하지만 그 오빠는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택했다. 이후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진학으로 서클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그로부터 약 3년후. 살을 에는 추위에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오빠를 볼 수 있었다. 시장입구에서 오빠는 초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초에 둘러 쌓여 기타를 치는 오빠의 손이 더욱더 앙상해 보였다. 차마 아는 척을 할 수 없어 그냥 뒤돌아 섰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오빠가 곡을 팔았더라면...대리 작곡가로 그나마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본인이 만든 곡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불려지는게 빛을 보지 못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오빠라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오빠는 자신의 곡들일 지켰다. 작곡가 명단에 오빠의 이름이 없는것을 보면 오빠는 작곡가로 성공하지 못했나 보다. 그때 곡을 사려던 그 밴드가 발표한 곡은 과연 자신들이 작곡한 곳들이 맞을까? 대중들이 사랑하는 노래들이 과연 알려진 대로 천재적인(?) 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곡들일까? 세상을 살아감에 얼마나 많은 거짓과 비리들이 우리 주위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