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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의 세계
게시물ID : phil_40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에픽ㅎ
추천 : 13
조회수 : 122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11/21 22:43:33

 

편의상 -이다, 체 로 쓴 다음, 요점을 달겠습니다.

뭔가 필요에 의해 이 글을 올려봅니다. 요점은 맨 아래 있습니다. 읽기 힘드시면 그것만 읽으셔도 대강 알게 되실 겁니다.

 

 

 

타짜꾼(1. 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 (기술이 뛰어난 사람)

 

암묵지[ 暗默知 ]

학습과 경험을 통하여 개인에게 체화(體化)되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말한다. 문서 등에 의하여 표출되는 명시지(明示知, Explicit Knowledge)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물리화학자인 마이클 폴러니(Michael Polanyi)가 구분한 지식의 한 종류이다. 폴러니는 지식을 암묵지(암묵적 지식)와 명시지 또는 형식지(形式知)으로 구분하였는데, 암묵지는 학습과 경험을 통하여 습득함으로써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지만 언어나 문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말한다. 명시지(명시적 지식)는 암묵지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언어나 문자를 통하여 겉으로 표현된 지식으로서 문서화 또는 데이터화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폴러니는 암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암묵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간 행동의 기초가 되는 지식이 바로 암묵지이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이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체득한 지식이나 노하우가 여기에 속한다. 명시지는 이러한 암묵지의 기반 위에서 공유되는 것이며, 암묵지가 형식을 갖추어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쿠지로는 이 뿐만 아니라 4개로 분류를 하는데

이를 기업에 적용하여 지식은 암묵지와 명시지의 사회적 상호작용, 곧 경험을 공유하여 암묵지를 체득하는 공동화(共同化), 구체화된 암묵지를 명시지로 전환하는 표출화(表出化), 표출된 명시지를 체계화하는 연결화(連結化), 표출화와 연결화로 공유된 정신모델이나 기술적 노하우가 개인의 암묵지로 전환하는 내면화(內面化)의 네 가지 과정을 순환하면서 창조된다고 하였다.

 

쉽게 말해,

표출화 - 암묵지가 명시지로 전환

연결화 - 명시지가 체계화되는

공동화 - 암묵지가 공유되어 체득되는 것

내면화 - 표출화/연결화-로 공유된 것, 즉 공동화된 것이 개개인의 암묵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일컬음.

 

여기서 연결화가 무엇인지 명확한지는 않은데, (이는 이쿠지로의 저서에는 있겠지만 제가 읽지 않은 이유로 제 나름의 견해를 써봅니다.)

이는 피아노를 배우는 걸 생각해보면 딘다.

1. 강사가 가르친다. 즉, 강사의 암묵지가 표출화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이 암묵지가 명시지가 될 때, 각각 나타난 것에는 '구조'가 있다.

즉, 왼손은 어떻게 쳐야되고 오른손은 어떻게 쳐야되는지 등등의 조직화가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겐,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 아이는 생전 처음 그것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서, 구조, 조직화 방법에 대해서는 알 길 없다.

그래서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아이는 잘 못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수영도 마찬가지다.

강사는 잘 헤엄치지만 수강생은 손 다리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각기 각기 명시된 것들을 다 연결해보면서 '체계'를 잡을 때, 그제서야 이 암묵지가 제대로 전달되게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냐?

이는 암묵지가 명시지로 변환될 때, 그 뉘앙스 자체가 바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기호'로서 전달된다는 데에 이유가 있다.

그래서 더 세밀한 부분은 직접 체험하면서 채워넣어야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암묵지'가 모든 것에 바탕이며, 우리가 보통 공유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명시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즉, 우리가 '책과 논문 또는 여타의 타자의 견해'를 통해서 접하는 것은 아주 일부분이라는 소리다. (암묵지가 형식을 갖추어 표현된 것에 불과)

 

 

이렇게 글을 쓰면

필시 좌절하는 사람이 생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또는 웬만한 지식을 책으로 섭렵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왜냐?

이 암묵지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바탕이 되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아직 명시되지 않은 지식'이다.

 

 

당신이 광고업계에 종사한다고 하자.

데이비드 오길비가 아주 기가막히게 광고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은 궁금할 것이다. 오길비는 어떻게 일하는지.

하지만 만약 오길비가 책으로 자기 노하우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 오길비의 지식은 절대로 명시되지 않는다.

 

 

세상에 얼마나 이런 암묵지들이 많았겠는가?

대표적으로 시학을 생각해보자. 이 시학이 서구의 문예역사에 끼친 영향은 크다.

근데 당신은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소포클레스가 자신의 '극작법'을 기술했다면 어땠을까?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성을 깨고도 남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극장을 경영했고, 연극을 기획했고, 언어를 조립했는지를, 자기 스스로 노하우를 밝혀놓았다면 어땠을까?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사실 인류 역사에 기여한 사람들은 대개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자신의 노하우를 '명시지'로 전환시켜서, 사람들에게 전달한 사람들이 인류 역사의 큰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자기 생각을 '명시지'로 바꾸지 않았다면 어떘을까? 그는 암묵지만 갖고 살다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 순진한 얘긴 그만하고,

좀 무서운 얘기를 해보자. (또는 황당한)

 

우리는 가끔

'비기'라는 말을 쓰곤 한다.

이 '비기'는 무엇인가?

비밀의 무기. 또는 비장의 도구. 이런 것이다.

 

이 비기는 '공식화'되지 않아야 한다. 비기가 공식화되어 버려, 공용이 되어버리면 더이상 비기가 아니다.

남들은 다 모르는데, 나는 '히트'하는 방법을 안다. 그런데 내가 이를 '까발리'면, 어떻게 될까? 너나 할 것 없이 따라하지 않을까?

학문의 세계에서는 이게 용인되지 않는다. 학문의 세계는 진실의 세계이니, 그 비밀을 모조리 까발려야 한다.

하지만 학문 밖의 세계는 좀 다르다. 내가 저 이성을 꼬리치는 법을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를 모른다. 그러면 나는 밝혀야 될까?

밝혔다가, 다른 사람이 이 지식을 더 잘 활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가 다 가져갈 수도 있다. 쇼유의 문제를 떠나서 이를 어떻게 보는 게 좋을까?

 

 

 

 

타짜가 타짜인 이유는, 타짜의 기술을 호구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마술사가 마술사인 이유도 그렇다. 가수가 존경받는 이유도 그렇다. 모르는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의 발생배경은 '?'에서 출발한다. 이를 풀어말하면 '왜 이렇게 되냐?' '어떤 과정이냐?'라는 질문이다.

즉, 전자는 배후에 뭐가 영향을 주냐에 대한 질문이고, 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로, 기능에 의해서, 이렇게 되는지 묻는 것이다.

사실 '암묵지'라는 것도, 이런 질문에 의해 '분석되고 해명된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을 잘하는 사람이 '분석가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자기 나름의 분석을 끝내면, 그것은 하나의 모형 (또는 이론)이 된다.

 

근데 중요한 건, 이제 이것이 공개되냐 마냐의 문제다.

물론 당신은 의아해할 수도 있다. 특히 학문의 세계에 찌들어버린 상태라면, 당신은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게 맞다. 왜냐? 당신이 맞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공개한 뒤에 반증이 얼마나 되는지 봐야될 것 아닌가?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당신은 피드백을 받아야 하며, 얼마나 실현가능성있는지, 타당한지를 검증해야 하며,

그러니 당신은 '맞다'고 주장해선 안되며, '잠정적으로만 취급하겠다'고 여겨야 한다.

 

 

 

라고 썼지만

과연 그럴까?

타짜의 세계에서는 검증받을 필요가 없다. 즉, 공적으로 내가 맞는지 아닌지를, 남들의 '시선'에 의해서 평가받을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그러면 지금 이 내 말은 막무가내로 이론을 만들어도 된다는 소리인가?

 

그런 게 아니다.

당신이 '암묵지'를 과학적 절차에 의해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당신은 공개만 하지 않는 것이지, 접근법은 스탠더드해야 한다)

즉, 과학적 절차로, 자기 스스로 어느정도 합당성을 가지고 '분석'을 끝냈다고 해보자. 이건 거의 1인 과학자다.

당신은 단지 공개만 하지 않은 상태다.

 

이제 남는 건,

'타자'의 눈에 의해, 적절히 '평가받게 되는' 일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런질문이다.

1. 굳이 받아야 되는가?

2. 굳이 받아야된다면 무엇 때문에 받아야 되는가?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 받을려고?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보기에, 그 이론이 맞는 것 같다 아닌 것 같다, 라는 '평가' 따위가 아니다.

그런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 어차피 그 이론을 읽는 순간의 맥락이 있기 때문에 적절히 평가되기도 어렵다.

 

예를 들자.

당신이 만약 어떤 심리학 실험을 했다고 하자.

당신은 '직접 체험'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술했다.

이제

당신의 동료가 그 논문을 읽었다고 하자.

그는 '기호'를 읽는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만약 그 동료가 이 실험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논문을 토대로, 그가 다시 한번 실험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실험하지 않고서, 그 논문을 평가한다고 해보자.

 

 

지리멸렬하다. 쓸데없는 말들이 넘치게 될 확률이 높다

근본적으로 당신이 이 동료에게 도대체 뭘 평가받아야되는지, 뭘 얘기를 들어야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저 당신의 궁금증 아닌가? 당신의 궁금증이 해결되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당신은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실험한 것이, 과연 당신의 요구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당신은 놓친 게 없을까? 편견이 작동한 것은 아닐까?

더 알아야될 것이 있지 않을까?

 

 

바로 그런 이유로 연구실이 생기고, 모임이 생긴다고 봐야 한다.

 

 

 

 

 

근데,

지금 나는 좀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왜 '타짜의 세계'라는 말을 썼을까? 여기에 힌트가 있다.

타짜들은 엄청나게 연습한다. 하지만 노하우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한다. 적중시킨다.

하지만 왜 그가 성공하는지에 대해선 그 노하우가 공개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다.

 

 

 

사실 공부를 왜 할까?

궁금해서 그렇다.

왜? 뭐가 궁금할까?

당연히 내 눈앞에 펼쳐지는, 이 '문제' (되야하는게 안되는) 바로 그것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바로 이게 인간이 공부하는 이유다.

 

왜 정치가 제대로 안되는걸까?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정치와 관련된 책들과 자료들을 찾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인간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데 왜 안되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곧, 보컬 트레이너를 찾거나, 발성관련 책을 찾게 된다.

 

 

저 남자의 심리가 뭘까?

->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곧바로 연애관련 책을 찾거나, 연애 잘하는 ~ 언니 오빠들한테 상담을 구한다.

 

 

 

자 근데

과연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명시지'로 전환된 게, 반드시 믿을만한가? 생각해보자. 인간은 언제나 지식의 한계를 가진다. 과연 얼마나 믿을만할까?

그 책을 믿을 수 있다면, 그건 이유가 뭔가?

 

당신이 픽업아티스트의 책을 읽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책대로 해야되는가? 왜? 그 사람이 뭔데? 그 사람이 검증한 것과, 당신이 검증하게 되는 것이 일치할 거란 보장은 어딨는가?

그리고, 그 픽업 아티스트에게 붙여진 레테르를 떼어보자. 즉 당신 스스로 '전문가'라고 취급하여 레테르를 붙인 것을 다시 떼어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뭔가?

 

픽업아티스트가 근거를 삼는 게 뭘까? 그는 왜 자부심을 갖는 가? 왜 자기가 맞다고 믿는가?

사실 그도 따지고 보면 전체의 아주 한 부분만을 알고 있을 뿐이고, 그것 역시도 자기만의 환경에 입각해서 얻어낸 이론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으면, 왜 픽업아티스트들 마다, 저마다 의견이 조금씩 달라지는가?

 

그리고 따지고 보면 픽업이라는 것도 (그네들이 보여주는) 진화심리학에 입각한 레토릭에 불과하지 않은가?

 

 

 

지금 내가 분석한 것을 봤다면

당신은 내가 어떤 암묵지를 갖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이번 해에 가장 화제가 된

싸이와 와이지를 생각해보자.

 

와이지는 2010년 9월 공식블로그를 개설했는데, 아마 그전부터도 이런 홈페이지는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와이지는 어느순간 예능 출연 자체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뮤직비디오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뒤, 유튜브에 배급하는 것을 선호했다.

특히 yg on air라는 자사만의 방송을 보이기도 했고, 2ne1 tv를 엠넷과 제작하여 유튜브에 서비스 했다.

 

즉, 이들은 새로운 미디어에 적응하여, 이를 활용하는 것을 보여왔다.

그리고 이게 '싸이'라는 아티스트와 호환을 이룬 뒤,

sns특유의 바이럴이 터졌고, 티페인, 토비윌리엄스, 케이티 페리, 등등의 인사들의 언급이 오고간 후, 미국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을 지켜본 타 기업들이 '유튜브'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사가 종종나온다.)

 

 

근데 의문이다. 과연 싸이만큼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나는 못낸다고 본다.

왜?

근본이 다르다.

왜 다를까?

 

당신은 '팬질'을 해본적 있는가?

당신이 '빠순이'짓거리를 단 한번이라도 해보지 못했다면,

싸이가 왜 성공하는지 당신은 알 수 없다.

 

그러면 와이지는 왜 성공하는가?

물론 이 회사도 지금 성공이 알딸딸한 감이 있겠지만, 크게 추측하지 못할리가 없다.

 

잘 생각해보자.

이 회사 수장이 어떤 사람인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1. 팬덤

2. 사회적 영향력

3. 역사에 획을 긋는

 

이런 것들을 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과연 타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이, '팬덤'을 끌어본 경험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지 수장은 해봤음이 분명하다. (당연한 것이지)

 

팬의 심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더 의미심장한 것은

와이지 수장이 '키덜트'라는 점에 있다.

그의 사장실에 장난감이 즐비하다는 것은 유명하다. 사람들은 이를 그냥 취미 정도로 느낄 수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수집질도 해본 사람이 안다.

어떤 오브제에 애정을 가져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애정-빠순이짓을 유추할 수 있다.

와이지는 왜 앨범 디자인에 하나같이 공을 들이는가?

 

이건 팬질을 안해보면 절대 모른다.

나 역시, 책을 자주 사기 때문에 책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는데, 아주 사소한 흠집이라도 있으면 굉장히 짜증난다.

 

마찬가지다.

어떤 한 가수를 너무 좋아하면 그 가수 앨범 디자인이라고 해도, 후지면 짜증난다.

하지만 애정이 없으면, 뭐가 됐건 무슨 상관이랴?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거다.

하지만 팬은 다르다. 팬은 너무나 아끼고 소중히하고, 자신의 스타가 '예쁘고 멋있길' 바라기 때문에,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갖고, 그의 스타가 욕먹을 짓을 팬들 스스로 경계하며, 스타의 앞 길에 계속 응원을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까,

당연이 '정식으로' 앨범을 사거나, 음원을 사거나, 스트리밍을 돌리는 등의 일을 한다.

 

 

당신이 '바이럴 마케팅'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반드시 '팬심'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바이럴을 '글로'만 이해했다면, 당신은 바이럴을 죽었다깼다 해도 이해못할 것이며,

밑도끝도 없이 카페나 블로그에 '비아그라 24시간' 같은 쓰레기성 카피문구나 남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건 바이럴이 아니다.

 

진짜 바이럴은 '소비자'를 '팬'으로 규정할 때 가능해진다.

결국 싸이의 성공요인이 뭔가? 팬심이다. 너무 팬이 되버려서, 이 사람을 추천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고, 이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게 되는 것,

 

그러니까 계속 소개하고 추천하고 따라하고 패러디하고 난리가 나는 것이다.

 

 

단순히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응원하게끔 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팬심'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근데

이를 와이지에서 '명시지'로 바꾸었는가?

과연?

 

와이지가 책을 냈을까? 논문을 썼을까?

양현석 대표가 자신이 왜 성공하는지, 성공의 법칙을 써서 제출했는가?

 

아니다.

 

 

 

그러면

와이지 전속 작곡가들이 작곡 방법을 악보 하나하나 제시하며 제출했는가?

 

 

아니다.

 

 

근데 이들은 히트를 내고 있다.

왜 그럴까?

 

 

화성악 책을 낸 사람들도 히트곡을 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이들은 히트를 내고 있다.

 

 

 

왜 그럴까?

뭐가 더 중요할까?

(물론 학자를 까는 게 아니다. 학자들의 목적은 저게 당연하고, 저런 작업을 해야함이 분명하다.

 하지만 저것도 따지고 보면 학자들의 '암묵지'가 '명시지'가 된 것에 불과할 뿐이다.)

 

 

 

와이지는 타 기업이 유튜브에 주목하지 않을 때, 유튜브에 주목을 하고,

타 기업들이 우후죽순 똑같은 기획을 할 때, 언제나 역주행을 하고 (휘성, 거미, 빅마마가 2000년대에 나온 이유)

역시나 지금도 마찬가지로 일렉트로닉이 주가 될 떄 '레트로'를 내놓는 특이함을 보인다. (물론 항상 완벽한 성공까지는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에픽하이 역시 레트로 앨범이었지만 복귀했다는 화제성 만큼이나 곡이 아주 확실하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이는 호불호가 너무 심했고, 멜롱1위를 못했다는 것에 입각한 판단이다.)

 

그리고 이하이라는 신인이 나왔는데, 이 역시 지금 23일쨰 1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와이지가, 자사의 전략을 논문으로 제출했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비법은 어디에 있는가?

 

 

 

 

이건 와이지에 있을 것이다.

이게 설령 명시지가 되어있지 않다 해도, 분명 누군가는 암묵적으로 갖고 있는 셈이다.

 

 

 

 

 

이게 타짜의 세계다.

순진하게 생각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에, 어떤 지식이 있을 것 같은 환상을 느낄때도 있다.

물론 사실이다. 세상은 너무 비밀스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서, 어떤 비기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타짜의 세계는 이렇다.

그게 맞는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 같은 입맞춤놀이는 저편으로 두고,

진짜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타짜의 세계다.

 

그리고 때에 따라,

암묵지는 있는데, 명시지가 아직 없을 때도,

그들은 굳이 명시지로 밝히지 않으면서, 이 암묵지를 바탕에 두고 '성과'를 거둬낸다.

 

 

당신이 한번도 누군가에게 이성을 유혹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이제 그 어떤 이성도 유혹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명시하지 않았다고 그 방법이 안통하는 건 아니라는 셈이다.

오히려 당신은 남들이 모르는, 자기만의 노하우로 계속 이성을 유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다가와

'비기'를 물어보는 것이다.

'어떻게 유혹합니까? 방법이 뭡니까?'

 

 

만일 당신이 이 질문을 받고

나름 고민한 다음

당신의 방법을 언급하는 순간, 그것은 명시지가 된다. 그 뿐이다.

이게 깔끔하게 전달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명시지는 암묵지위에서만 명시화되는 것이다.

 

 

 

 

당신이 굳이 막 발표하고, 스스로 공개시켜서 피드백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비밀스럽게, 당신만의 목적을 위해서, 암묵지를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타짜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

충분하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기에 가까운 기행을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무당같은 신기 부리는 게 아니라,

과학적 작업 방식, 심리적 오류를 모두 고려한 채,

스스로 1인 과학자가 되서, 관찰, 연구, 분석, 실증, 등을 기반으로 하여,

단지 그 결실을 공개만 하지 않고, 자기의 행동 및 사고의 '기저'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게 진정한 타짜의 세계다.

그러니 근거있는 '고수'가 되는 것이다.

(물론 분석력이 끝짱으로 좋아야 할 것이다. 관계파악도 뛰어나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확률에 민감해야 할 것이고, 배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을 맞춰야되는 부분에는 배팅을 견뎌낼 정도의 담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

 

 

사실 이는 뻔한 얘기다.

어차피 자기만의 머리를 쓸 수 밖에 없다면, 결국 본인이 알아서 해야된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근데 이를 '타짜'라고 표현한데에는 이유가 있다.

타짜가 되려면 기술력이 경지에 달해야 한다. 또한, 남들에게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고, 시간도 없다.

기술력이 경지에 달할려면 끊임없이 훈련에 돌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 기술이 남에게 들어가면 당연히 당신만 힘들어진다. 타짜는 그래선 안된다.

그러니 공개화시켜야된다는 강박증에 빠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한 당신은 '이게 맞나요? 저게 맞나요?'따위의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 왜? 당신이 확인해보면 되잖은가? 그리고 타짜는 자기 선택을 할 뿐이다.

남에 말 묻지 않고 듣지도 않는다. 상관도 없고 알바도 없고, 먹잇감이 아니면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즉, 인지를 가장 고도로 활용하는 인물 유형으로 '타짜'를 꼽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표출화'시켜달라고 애원한다. 왜냐, 이 사람이 하는 방법이 가장 '적중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짜도 그것을 안다. 그렇지만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타짜들은 공개함으로써 발생하는 '찬반논쟁을 정말로 싫어한다.

 

논쟁할 필요가 없다.

이건 '이념과 입장과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타짜들이 문제삼는것은 '기술이 들어갔고, 기술이 효과를 발휘했냐'하는 문제다. 공학적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어떤 남녀가 사귀다가 심리적으로 트러블이 났을 경우,

니가 옳네 내가 옳네 남자가 잘못 했네, 하면서 싸우는 것은 타짜가 아니다. 비타짜 적이다.

 

타짜들은 이럴 떄 '어떻게 심리를 풀지, 어떻게 꼬와서 비틀지, 어떻게 내 얘기가 맞게끔 상대를 혼란화시킬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다.

타짜들은 '입장'문제에 들어가, 입장을 밝히고 나발이고 따위의 문제에 관심없다. 뭔 상관인가? 니가 맞을수도 있고 내가 맞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한건, 이 순간 어떻게 처리할 거냐는 문제다.

 

즉,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식의 논쟁에는 관심없다는 것이다. 뭔 상관인가 도대체?

하지만 타짜는 이런 것에 관심있다.

"저 문제를 어떻게 활용하면, 내가 이득을 볼까"

"저 문제는 어떤 규칙성을 갖고 있고, 심리적 흐름을 갖고 있는가"

 

왜 이런 것에 관심있을까?

이를 기억해뒀다가 적중시킬 때 참조를 하기 위해서다. 아주 경영학적 마인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일단 여기까지 써보겠습니다.

사실 원래, '와이지, 싸이'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시간에 적중시키는 게 남는거다~, 이론은 항상 후에 나오는 기록들에 불과하다~

 

이런 이야기를 쓰려다,

'타짜'를 언급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인물 유형으로서, 지식을 고도로 활용하는 인물을 써봤습니다.

사실 이게 논술의 폐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입장 밝히거나 도덕적으로 뭐가 옳은지 따지는데 중독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정말 쓸데 없는 일 중 하나라고 보는데요.

 

왜냐하면

니가 맞고 내가 맞고 따위의 문제는

그냥 누가 그 순간 뻐꾸기가 쌨고, 누가 더 '나르시즘'을 강력하게 느끼는가

이런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내가 옳다 라고 하면, 내가 뿌듯해지고 잘나지는 것이 유일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러면,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 '니가 옳아서, 넌 잘됐냐?'라고 물으면, 그 순간 이 논쟁의 허무함이 나오죠. 공기가 되고 연기가 되버리죠.

정말 쓸데없는 토론에 시간 쏟았다는 얘깁니다.

물론 그 토론으로 인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뭐 이러면, 자기 나름의 생각정리의 차원에서는 의미 있을지 몰라도,

이미 한번 정리를 했다면, 그 이후는 이제 중복이죠.

 

그럴 때

정말 남는 건 무엇이냐?

은밀하게 계속 지속적으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맞추는 사람들인 겁니다.

잘 모르지만, 이런 유형에 대표적인 인물로 조지 소로스를 들 수 있겠죠.

이 분이 오류성과 재귀성을 언급할 때,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생각할 때

진짜 타짜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또는 오류에 빠져 버리기도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아직 명시되지 않았지만

그들 스스로 '암묵지'를 갖고 있고, 그것이 효력이 있는 겁니다. 근데 안 밝히죠.

그러면서 자기들이 가진 암묵지로, 앞의 현상을 예상하고 적중시키고 대응해내는 것입니다.

 

 

 

결국 이 글을 쓴 의도도 거기 있습니다.

타자의 권위에 '종속'되거나 '종속하려'하는 행위,를 이젠 좀 떠나서 (이런 문제는 너무 식상하죠)

 

이제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형성하고, 스스로 실증할 모델을 구축했다고 했을 때

자기가 가진 아이디어가 적중되는지 안되는지 알지 못하고 두렵고 무서워서,

그리고, 한편으로,

'내가 만든것보다 쟤가 만든 게 더 좋지 않을까?'같은 불안이 생겨서

 

자기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말고,

자기 아이디어를 남한테 굳이 공개할 필요도 없고, 검증받을 필요도 없고,

그 타자들의 검증으로 인해서 자기 아이디어가 낮게 취급될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필요가 없으니까,

 

좀 더 자기의 방법론을 점검하여,

타짜의 자세로 임해보자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 정말 많습니다.

자기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죠.

 

 

얼마전에 특이한 인물들을 많이 봤는데

남자인데, 털을 기르는 이유로, 배란기에 있는 여자를 꼬시기위해서다, 라고 한 사람도 잇었고 (나름대로 근거가 있긴 합니다.)

왼쪽 눈과, 입술 아랫부분, 다시 오른쪽 눈, 이런식으로 삼각형으로 시선을 두면서 쳐다보게 되면, 섹슈얼 텐스가 올라간다는 얘기를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건 진짜 야매죠. 근데 이게 먹히는 이유는 상대방의 시선을 읽어내면서 추론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시선의 의미를 해석하다가 순간 그 의미에 빠져들어가는 거라고 보면 되는데, 이렇게 까지 설명하면 마이크로해지죠. 요지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는 겁니다.)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뭐 저도 모릅니다.

근데 이런 것을 언급한 이유는, 이게 짭퉁 과학자의 삘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바로 타짜의 세계라는 것이죠.

 

결국 이 암묵지가 얼마나 빈도성이 높아지고 탄탄해지는가에 따라서,

그의 암묵지가 '신뢰성'을 갖게 되죠. 결국 이걸 기호로 표현해내면 그게 표출된 이론이 되는것이죠.

하지만 근본은 이런 암묵지라는 것. 이것이 핵심인 것입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도

나름의 타짜들이 있을 것인데,

이 타짜는 종속되고 이런 존재가 아닙니다. 이들은 1인 기업가, 분석가, 과학자, 예술가, 기술자나 마찬가집니다.

 

즉, 누구가 멋있어서 따라야해야겠다, 따위의 수준이 아니라,

내가 볼 때 쟤 좀 멋있는데, 분석이나 좀 해봐야겠다, 아예 해체해서 조립하고 좋은 건 가져가야지, 이렇게 접근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단순 코스프레는 사라지는 것이죠. (이게 사실 플라톤이 경계한 것이죠. 단순한 코스프레)

 

 

 

그리고 타짜들은 쫄지 않습니다.

자기가 설정한 모형이 적중률이 떨어진다 해서

"아 ㅅㅂ... 역시 망이었어. 정말 창피하다." 라고 하는 등, 곧바로 자기 아이디어를 폐기처분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프로그래머들처럼 분석에 들어갑니다. "왜 문제지? 왜 안되? 왜 확률이 떨어져? 어디가 잘못되었냐? 아예 첨부터 잘못되었으면 아예 다 바꿔"

 

 

그러면서,

다시 새롭게 모형을 구축하고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론 무너지면 하늘이 무너지는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진정한 타짜는 담력이 쌔죠. 그래서 언제든 다시 모형을 만들죠. 그러니 죽을 일은 없는 겁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만약에 여기 어떤 분이 굉장히 뛰어난 참모를 구해서, 그 참모의 말에 의존하고 있다면

질문을 해봅시다. 그 참모는 도대체 어떻게 '조언'을 하고있는가? 당연히 그는 분석을 했을 것이죠. 바로 이겁니다. 타짜가 이런 존재인 것이죠.

 

 

우리가 지성인들, 석학들의 책을 읽듯이

그는 참모의 조언을 구하는 겁니다.

근데, 그러면, 지성인들과 석학들은 도대체 그 책을 어떻게 썼냐는 것이죠.

 

암묵지가 명시지가 된 것입니다.

즉 그들도 타짜인 것이죠.

 

 

 

 

 

일단 여기까지만 써놓겠습니다.

이 내용은 좀 단순한 내용인데, 용어를 좀 달리하고, 비유를 달리해보았습니다.

 

 

요점

1. 지식의 바탕은 '암묵지'

2. 책이나 강연 등등으로 공유되거나 발표되는 것은 단순히 말해 '암묵지의 표출화'일 뿐 (그마저도 얼마나 되는지 희박함)

3. 그럼에도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내면화' 과정.

즉 '암묵지'수준으로 바꿔야 된다는 소리.

 

4. 암묵지의 튼튼함이 신뢰성의 기준.

5. 암묵지를 갖추는 과정은 무당짓이 아닌 '과학적이며 테크니컬함'

(즉, 관찰/연구/실험/실증/오류제거/빡센연습 등등 다 해야함, 1인 과학자라고 보면 된다.)

6. 암묵지가 탄탄하며 성과가 있을 수록, 사람들은 그의 '노하우'를 궁금해한다.

7. 이를 밝히면 '공개'가 되는 것이고, 안밝히면 '비기'가 되는 것이다.

 

8. 이렇게 상위 1% 분석력/종합력을 가지고 암묵지를 만들어내고 실증하고 개선해가는 사람을 타짜라고 부른다.

9. 이들은 논쟁하는 것에 관심없다. 자신의 암묵지가 '적중되고 있는가'하는, 과학적 활동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10. 세계적 석학/지성인들은 전부 타짜들이다.

11. 당신도 가급적 타짜가 되어야 한다.

12. 타짜는 타인의 코스프레를 하는 게 아니라, (이는 타짜가 아님을 증명할 뿐이다.)

타인을 분석/해체/조립 등을 해서 아예 추출을 하거나, 인공지능로봇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13. 타짜는 담대하며, 자존심 강하며, 분석력에 있어서 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

14. 타짜는 자신의 암묵지의 탄탄함을 위해선, 언제든지 배우려 한다.

15. 타짜는 암묵지를 굳이 명시지로 전환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

16. 타짜의 작업 방식은 상위1% 과학자 및 예술가에 가까워야 한다.

 

17. 타짜는 암묵지를 공개하지도 않는다.

18. 그렇다고 공개안한다는 이유가 암묵지의 탄탄함을 훼손하는 건 아니다.

19. 즉, 암묵지의 탄탄함과 암묵지의 공개는 별도의 문제.

 

20. 타짜는 분열을 겪었어야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마저도 대상화시켜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존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암묵지의 탄탄함이 중요.

21. 존재하는 모든 비판은 각각의 비판자의 전제와 판단기준을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 (비추어서 평가내리는 것에 불과하다. - 판의 주인이 누구냐?) 

22. 타짜들의 판단 기준은 '실전' '필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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