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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작자미상][브금] 죽는다
게시물ID : panic_411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한소수
추천 : 17
조회수 : 180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1/17 17: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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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말 안들으면 죽는다."



형이다.

나와 형은 촌동네에 한 구석에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작고 초라한집에서 단둘이 살고있다.

매달 생활비가 조금씩 생기는데, 형이 나라에서 주는 돈이라고 하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동네 이웃들의 말로는 내가 어렸을적 부모님이 도망갔다고 한다. 

형과 나는 2살 차이로, 18살먹은 형은 가장노릇을 해야했다.

하지만 아이가 아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청소년에겐 

가장노릇이란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였다.

형은 모든 면에서 뛰어났지만, 유독 공부와 집안을 돌보는 일에는 너무나도 허접했다.

설거지나 빨래 청소등 모든 집안일은 내가 다해야했다.

형은 항상 새벽 일찍 일어나 친구들과 놀러나가 다음날 새벽에 돌아온다.

깜빡하고 빨래나 설거지를 안했을때, 형은 날 노려보며 항상 하는말이 있다.

"너 내가 집안일 해놓으랬지? 내일까지 안하면 죽는다."

짜증났다. 맨날 놀고 하는일도 없으면서 저렇게 당당한 형이.














이상하게 난 어렸을적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없고, 부모님과 형에대한 애정을 받아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난 항상 어두웠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는 무시당하고 맞기만하는 '왕따'가 되었다.

그런데, 나의 개같은 형은 고등학교에서 잘나가는 양아치였다.

그럴만도 한것이 형은 훤칠한 미남인데다 쾌활한 성격에 싸움도 잘해서

주변인에게 항상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난 키도작고, 못생긴데다 성격까지 어두웠으니

누가보면 형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 상반된 것이다.

난 그런 형을 질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형도 가끔 나를 신경써주긴 하였다.

작년 여름 난 여느때와 다름없이 학교근처 골목에서 몇몇의 반 아이들에게

재수없다는 이유로 괴롭힘 당하고 있었다. 물론 난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책만 보고 있었을뿐...

그때 형이 우연히 지나가다 내가 괴롭힘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형에겐 맞고 다닌다거나 왕따라는 이야기를 한적이 없었기 때문에,(오히려 잘다닌다고 하였다)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줄 알았던 형은 쏜살같이 달려와선 날 괴롭히던 아이들을

정말 '반죽을때까지'라는 표현이 딱맞을 정도로 두들겨팼다.

"앞으로 괴롭히는 놈 있으면 형한테 말해. 또 이렇게 맞고다니면 죽는다."

이게 날 신경써준 처음이자 마지막인 형의 모습인 것 같다.











하지만 난 아직도 따돌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형 때문에 오히려 나와 가까워지려는 사람은 커녕 평소에 괴롭히지 않던 아이들 마저

내가 형을 믿고 나댄다는 소문을 듣고, 날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난 형이 미웠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형은 이제 고3 하지만 철이 들지 않은 것 같은 형은 공부는 커녕 매일 밖에 싸돌아 다니기만 했다.

어느날은 집으로 전화까지 왔었다. 형이 학교를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담임선생님의 전화였었다.

'그래, 모든게 뛰어난 형은 매일 친구들과 여자끼고 놀겠지..'

뜬금없이 눈물이 났다. 

같은 형제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것일까, 정말 같은 형제가 맞는것일까

그날, 난 낡아빠진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흐느끼며 잠들었다.








꿈을 꿨다.

너무 어두워서 내 모습조차 잘 보이지 않았지만,

촌구석에 박혀있는 낡은 집에 들어가는걸 보아하니 나인것 같았다.

어깨는 축 쳐져있었고 몸은 무슨일을 한것인지 매우 피로하였다.

옷을 대충 집어던지곤 온수가 나오지 않는 차디찬물로 샤워를 하였다.

그때였다 옆구리가 시려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뭔가가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도둑인가?.. 하지만 이런 낡은집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때, 자그마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 죽는다."

'!!!'

형이다. 형이 날 찌른것이다. 난 저항할 힘이 있었지만 차마 형의 칼을 뺏거나 밀쳐내는등의

저항은 하지 못하였다. 왜일까 분명 저항할 힘은 있었는데, 덤벼봤자 가능성이 없단걸

알았기 때문일까? 꿈속에서의 난 그렇게 쓰러졌다. 꿈속인데도 이상하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화장실에 있는 커다란 전신거울이 날 비웃는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곤 괴기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멍청한놈! 히히히.."











눈을 떳다.

나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엇다.

그런 재수없는 꿈을 꾸다니, 짜증이 났다.

꿈에서 조차 난 행복하지 못한것일까.













그 꿈을 꾸고난지 몇일 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역시 형은 없었다. 

'또 어딜나간건지.. 공부나 할것이지..'

널부러져있는 빨랫감들과 더러운 바닥을보고 절로 욕이나왔다.

"이..개새끼.."

늘 그래왔던것처럼 빨랫감들을 이웃집 아주머니가 준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하였다.

형이 시킨 집안일들을 모두 다 마친후면 항상 방에 들어가 구석에 쪼그려앉아

멍하니 있었다. 매우 심심했지만 괴롭힘 당하는것보단 차라리 심심한게 좋았다. 

아, 왜 학교를 가지 않냐고 묻는다면,

난 고등학교 입학식 후엔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고등학교에 입학식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학교를 다니려고 하였다.

여러 학생들이 모이고 학부모들도 모였다. 난 혹시나 형이 왔을까 하고 둘러보았지만

역시 형은 없었다. 뭐 없는게 더 좋지만..

그렇게 이번엔 마음잡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공부도 열심히해서 꼭 돈을 많이버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형보다 잘하는게 하나라도 생기기 때문이다.

부푼 마음으로 학생들을 둘러보던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날 괴롭히던 반 아이들도 같은 고등학교 였던 것이다.

게다가 반배정도 같은반.

난 모든걸 잃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꿈은 처참히 무너졌다. 짖밟히고 찢겨졌다.

저 아이들때문에..

그 이후로 학교는 나가지 않았다. 날 괴롭힐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멍하니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에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형이 벌써 온건가?'

항상 새벽에 오던 형이었기 때문에 무슨일이라도 있는건가 하며 서둘러 문을 열었다.

문앞에 있던사람은 형이 아닌 날 괴롭히던 아이들이었다.

순간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 이 좁은 집엔 나밖에 없는데

그렇게 미워하던 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수십,수백번 들었다.

"너, 왜 학교안나오냐? 우리때문이야? 내가 얼마나 보고싶었는데"

녀석들이 다가왔다. 그리곤 날 마구 때리고 짖밟았다.

아마 내가 학교에 나가지 않고 전화도 받지않자

선생님이 주소를 알려줄테니 학교좀 나오라고 설득좀 하라고 보낸 것 같다.

하필 왜 이녀석들일까.. 되는일이 하나도 없다. 이게 내 인생이다. 쓰레기인생

그렇게 한차례 두들긴후 녀석들은 학교 꼭 나오라는 설득을 아니 협박을 하곤 가버렸다.

난 다시 방구석에 박혀 웅크렸다. 온몸이 쑤셔왔다. 눈에선 뜨거운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한참 그러고 있다, 더이상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딴 쓰레기인생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부엌으로 가서 날이 시퍼렇게 든, 단 하나뿐인 부엌칼을 들고왔다.

막 손목을 그어버리려던 참에, 문득 스치는 한사람이 생각났다.

빌어먹을 형.

날 이렇게 만든 장본인, 날 절망으로 빠뜨린 장본인..

'형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거야.. 내가 이렇게 어두워진건 다 형때문이야..'

짧은 생각을 한후 난 결심했다.

형을 죽이고 나도 죽기로.

난 방에 구부리고 앉아 형을 기다렸다.

밤이지나고 새벽이 다가왔다. 하지만 전혀 졸립거나 하지않았다.

그저 형을 죽여야겠단 생각외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침내 형이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새벽에 형이 들어오는 모습은 처음보는 것 같다.

짙게 깔린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형은 축처진 어깨를 하고 옷을 집어던지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물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형이 수건좀 가져다 놓으라고 말하였다.

난 헐어빠진, 수건이라고 말하기도 창피한 천쪼가리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엔 칼을 쥔 후 화장실 문앞으로 갔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곤 형의 옆구리에 칼을 깊히 쑤셔 박았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울분을 터뜨리듯이 미친듯이 괴성을 지르며 계속 옆구리를 쑤셔댔다.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게 뭐하는짓..쿨럭.. 죽는다."

그 소리를 들은 난 칼질을 멈췄다. 형이 금방이라도 날 때려눕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형의 옆구리는 이미 심하게 훼손되어있었고 붉은피가 폭포수 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형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며 날 쳐다보다가 쓰러졌다.

이상하다. 형을 죽이면 모든 분이 사라질줄 알았는데.. 시원할줄 알았는데..



왜.. 왜....




형이 날 쳐다볼때, 난 힘이 쭉 빠졌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슬픈표정을 지으며 날쳐다보던 형. 그 순간 형은 분명 울고있었다.

그러고보니 형은 날 단한번도 손찌검 한적이 없었다.

항상 말로만 겁주었지 직접 손을 댄적은 없던것이다. 물론 형이 무서워 대든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여러가지 오묘한 감정들을 가진체, 그 자리에서 나의 손목을 그어버렸다.

그렇게 눈이 서서히 감겨갔다.


-



"최씨 아주머니 그 소리 들었어?"

"뭔 소리?"

"아 거 있잖아 옆동네 살던 고아 형제"

"아~ 그 고아 형제?"

"그랴~ 그 형제 어젯밤 다 죽었댜!"

"뭐?? 아이고 세상 참 흉흉해서 살수 있겠나 왜죽었댜? 강도라도 든겨?"

"잘 모르겄어 경찰이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더만?"

"어쩜 쯧쯧쯧..매일 새벽같이 일하러 다니면서 동생 먹여살리던 그착한놈이 죽고말야..
동생 걱정할까봐 몰래 공사판일하고 했잖여~죽어야될 놈들은 멀쩡히 돌아댕기고 세상참 불공평혀.."

"그러게 말이여... 갸들 어렸을때 사이 엄청 좋았잖여~ 맨날 둘이 손잡고 다니고말여"

"작은애가 그렇게 악동이었지 정말 갸 하는짓보면 동네 아줌니들도 다 고개를 돌렸었는디
지나가던 꼬마애들 눈만 마주쳐도 막 괴롭히고 때렸잖여 심지어 지 형한태도 그랬다니깬
그런데 큰애가 그거 다받아주면서 얼마나 잘해줬어~ 참 안타깝구먼.."

"작은애 사고났을때도 얼마나 지극정성이었어~ 학교도 내팽게치고 병간호만 했다니께?
작은애 그 사고로 기억도 잃어버렸대잖여.."

"근디 그게 차라리 나았지 갸들 어렸을때 대낮에 강도들어서 애미애비 다 죽었잖여..
애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참.."




-




"이야!! 받아라 괴물아!!"

작은 꼬마가 조그만 나무막대기를 쥐고 친구로 보이는 아이를 때리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그 작은 꼬마보다 더 작은 꼬마가 달려왔다.

"형이 남 괴롭히지 말랬지!"

"아왜!! 재밌단말야 형아도 해봐!"

"안돼 형이 항상 말하잖아 남을 때리는건 안좋은거야! 너 커서 대통령되고 싶댔잖아"

"다른애 때리면 대통령못해?"

"그래! 그러니까 앞으론 그러지마, 한번만 더그러면 형한테 죽는다!"

"치..알겠어 형아"

"아이구 착하다 우리동생, 우리동생이 제일 착해!"

"우히히 기분좋아"

"형말 잘들으면 맨날 칭찬해줄게, 형말 잘듣고 나중에 커서 나랑 같이 훌륭한 대통령되야지?!"




"응,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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