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녀와 카톡을 하고 있다.
그는 그녀의 수많은 한때 연인이었던 친구이고 그녀는 그의 첫사랑이자 첫키스의 대상이자 하루에 두어번씩 생각나는 사람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보내지 않는다.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을 여러 봐왔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오늘은 다르다. 그와 그녀가 있는 6명의 그룹톡에서 그녀가 친구와 키스를 했다고 올렸던것이다. 한단어로 정의될수 없는 그 마음의 느낌에 그는 듣고있던 노래의 가수가 서너번 바뀔때까지 고민을 한후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 니가 키스예기하니까 잠이안오네
시시껄렁한 이모티콘을 추가한 추잡한, 누가보면 껄떡대는것처럼 보이는 한문장이었다. 그나마 그가 이렇게 카톡을 먼저 보내는데는 한때 연인이었을때나 과거와 지금의 친구일때 그의 참을성으로 그리고 그녀의 여전한 도화살로 경계라는 것이 허물어 져서일것이다.
그녀는 마침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는지 저 추잡한 문장 맨 앞의 1을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ㅋㅋㅋㅋ 나도 잠이 안와 ㅋㅋ 야 나 키스했는데 예가 나 첫키스래 ㅋㅋㅋㅋ
그는 여전히 그녀가 ㅋ을 과도하게 많이 쓰는것과 여전히 그녀는 자기 말을 하는것을 보며 이때까지 했던 수많은 카톡들을 회상이라도 하듯 이전 카톡들을 한번식 휙 내려다보고는 예전처럼 그녀에게 먼저 물음표를 보낸다.
ㅋㅋㅋ또 저번처럼 니가 꼬셨냐? ㅋㅋㅋ
그는 은근히 자신과의 옛 추억을 되새기길 바라며 카톡를 보낸다. 그리고 그가 그녀가 자신과 하는 카톡에 재미, 아니 재미보다 더한것을 느 낄수도 있다는착각을 할만큼 빠른 답장이 온다.
ㅋㅋㅋ 내가? 내가언재 뭘고셔? 기억이안나네? ㅋㅋㅋㅋ
그녀 특유의 애교석인 말투가 스며들어 있는 문자를 보는 그는 재빨리 다음 말을 타이핑하고있다. 그런데 그녀의 타이핑은 그보다 빨랐다.
ㅋㅋㅋ야 이친구 키스할때 막 혀랑 입술이랑 이빨이랑 같이사용해 처음이라는데 완전잘해 ㅋㅋㅋㅋㅋ
그는 그녀의 빠른 카톡에 뭔지모를 대단함을 느끼며 그녀에게 맞추기 위해 자신이 쓰고있던 내용을 모두 지우고 다시 쓰기시작한다. 그의 태도로 보아 이런적이 한두번이 아니리라. 그는 이 대화가 잔잔한 마음에 파도를 치게 할 것이란것을 알고있으면서도 계속 카톡을 이어가려고 한다.
ㅋㅋㅋㅋㅋ언재는 서투른게 좋다더만 ㅋㅋㅋ
그는 그녀와 둘만의 추억을 자꾸 들추어 내려고 한다. 마치 체스를 하듯 그는 자신이 유리한 상황이 오도록 자신의 추억이 계속 들어나도록 그와 그녀밖에 모르는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키보드를 배치시킨다.
그것도좋은데 이것도 좋아 ㅋㅋㅋㅋ 이친구 키가 180넘고 노래는 못하지만 목소리가 이쁘고 얼굴은 별로인데 웃을때 이뻐
그의 의도대로 될리가 만무하다. 항상 그래왔다. 그가 조금 유리한 수를 두었다 싶으면 그녀의 나이트는 체크를 외치는것같았다.
그렇다고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킹을 살짝 뺄 뿐이다.
우와 그런 남자가 널 좋다고 하디?ㅋㅋㅋㅋ
그의 웃기지 않는 웃자는 말에 그녀가 받아주는것에 그는 조금은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살짝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척을 하기 위해 그와 그녀가 있는 단톡방에서 시간을 약간 때운후 그녀의 카톡을 확인한다. 스스로 치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에게 너무관심을 둔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들켜서도 안되었다.
개새끼 ㅡㅡ
당연한듯이 쌍욕이 날아왔지만 그는 여의치 않는다. 그녀는 입이 살짝 험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ㅋㅋㅋㅋ 새삼스럽게 ㅋㅋㅋ
그는 여기서 이야기가 끊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만약 답장이 없을시에 어떤말을 할지 고민을 하며 답장을 기다릴 뿐이다.
ㅋㅋㅋㅋㅋㅋㅋ야 계가 막 이빨로 내 입술 깨물고 그런다?
답장이 와 다행이라는 생각과 다음에 어떤말을 써야할지 생각과 그남자 이야기는 더이상 듣기 싫다는 생각과 그녀에게 키스할때 입술을 깨물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머릿속에서 섞여 손가락으로 전해진다. 그결과는
아이고 립글루즈 발라야겠네
시원치않은 답장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니가 다른남자 이야기는 안했으면 좋겠다던가 매일 니생각이 난다던가 저번에 술먹고 전화해줘서 고맙다던가 말을 하고 싶지만 참는다. 그의 유일한 장기는 참기이다. 그렇게 참은것의 보답일지 그녀와 그는 립글루즈에 대해 이야기한다. 코카콜라 바닐라맛 립글루즈를 쓰느니 스프라이트맛 립글루즈를 쓰느니 하는 시시걸렁한 새벽 2시에 할만한 그런 대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기쁨을 느낀다. 그러면서 속의 파도를 진정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녀와 그친구가 사귀는지 궁금함에 속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는 직접적으로 물어보고싶지만 상황이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그렇지 못하다고 계속 이야기하고있다.
야 그런데 이친구랑 사귀고 싶은데 사귀고 싶지는 않아
그는 속의 파도가 갑자기 얼어버리는것 같은 느낌을 든다. 속은 고요하고 평온하다.하지만 높은 파도가 얼어붙는다고 위험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얼음이 깨진다.
아 아니야 갓만에 몸보신좀해야겠어
그는 그녀의 저 몸보신이라는 단어가 자신에게 쓰일때와 다른사람에게 쓰일때 전혀 다른 단어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는 심장이 빨리뛰는지 확인하려고 손을 가슴에 가져다본다. 그는 가슴에 까만 물이 차서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야... 내가 남자가 고파서 이러는 걸수도 있어...
그는 짜증이 날법도 하지만 기분이 좋아짐을 느낀다.
아니야아니야 아아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
그는 그녀에게 그친구를 멀리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또한번 참은 그의 시덥지않은 말때문에 이야기는 학교시험을 물어뜯고 교수를 밟고 되도않는 정치를 찢어발긴다. 그녀와 그는 다음날이 시험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만 자야겠다고 카톡을 서로 보내지만 잘자라는 이야기만 너댓번 오간다.그렇게 그는 잘자라는 이모티콘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답장이 와도 휴대폰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노래가 나오고있는 휴대폰을 뒤집어놓고 천장을 보며 눕는다. 그의 휴대폰에서는 몃시간전부터 잔잔한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leeSA의 혹시라도 들릴까봐 라는 노래이다. 그는 그 노래가 나오는 드라마와 그 노래와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뒤섞는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소설을 서볼까도 생각하지만 그의 필력으로는 사람들이 거들더 조차 보지 않을걸 알기에 생각을 접고 노래에 집중한다. 마음속의 파도는 다시 잔잔한 물결로 변한다. 하지만 뜨겁고도 차가운 바람은 그 위를 자꾸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