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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감동 ( 꽁트입니다. )
게시물ID : humorbest_412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선희남친
추천 : 30
조회수 : 2864회
댓글수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05/21 14:20:41
원본글 작성시간 : 2004/05/04 12:13:41
http://www.malbang.com 좋은글 모음 말방 “쳇, 빌어먹을. 뭐가 고객감동이란 말이야.” 뿌연 담배연기가 흡연실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 걸걸한 가래침을 끌어올려 내뱉었다. 벌써 재떨이에는 대략 네다섯 개피의 담패 꽁초가 아무렇게나 짓눌려저 있었다. 흡연실 유리창 밖으로 사무실 현관 위에 걸려있는 ‘고객감동’ 이라는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고객감동’ 이제는 그 글만 봐도 역겨웠다. 위선자처럼 날 향해 미소짓고 있는 그 글이 너무도 지겨웠다. 뭐. 고객감동? 고객 불만족만 아니어도 다행이다. “야! 이 새꺄. 네가 책임져야 할 것 아냐! 물건은 누가 팔고 소비자한테 이 지랄이야.” 겨우 지워버렸던 방금 전 고객과의 통화내용이 불현듯 다시금 떠올랐다. ‘참, 내 더러워서 그만 때려치던가 해야지. 이짓도 지겨워서 못해먹겠네.’ 나는 가슴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가라앉히며, 가래침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그럴수록 핏대까지 세우며 끊임없이 욕을 해대던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예리한 칼날처럼 솟구쳐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있는가. 억울한 건 바로 우리 같은 힘없는 직원들인데…. “노군! 자네 찾는 전화 왔네.” “나원참. 이젠 담배도 제대로 못 피게 하고. 아 그놈의 민원은 쉬는 시간도 없나?” 갑작스레 들려온 이대리의 말에 난 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내동댕이치고, 몹시 짜증난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흡연실 밖으로 나갔다. 그나마 흡연실은 나의 유일한 휴식공간인데…. 아니 어쩌면 나의 유일한 도피처 일런지도 모른다. 휴게실을 뒤로한 채 나를 향해 거만하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수화기로 다가갔다. ‘저 조용한 전화기의 내면에는 또 어떤 악마의 소리가 도사리고 있을런지?’ 방금 전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듯 했다. “감사합니다. 친절한 서울 컴퓨터 민원 담당 노영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지만 심호흡을 깊게 가다듬고, 언제나처럼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땐 정말 고마웠어요.” “예? 무슨…말씀이신지… 혹시 저를 아시나요?” “예. 그럼요. 제 목소리 기억 못하시겠어요? 그땐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었죠?” “저어… 누구신지? 죄송합니다만 잘 기억을 못하겠군요.” “며칠 전 할머니 기억나시죠? 있잖아요. 컴퓨터가 안된다고 학동에서 전화하신 할머니 말이에요. 그 할머니 딸이에요.” “아하!” 그 한마디에 며칠 전, 할머니와 관련된 일들이 뚜렸이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친절한 서울 컴퓨터 민원 담당 노영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거~뭐시냐. 컴퓨턴가 뭔가가 시방 안돼서 말이제…. 딸래미가 며칠전에 컴퓨턴가 뭔가 하는 걸 하나 가져왔는디…,그게 안된당께!” 그 할머니는 딸 자랑하듯이 행복한 말소리로 시작 하더니만, 금방 짜증난듯한 소리로 끝을 맺었다. “예. 무엇이 안되십니까?”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여쭈었다. “아~그랑께…, 난 잘 모르겄는디 엊그제꺼정 화면에 허연 불이 들어오드만 오널 보니께 그것도 안되는구만.” “네에. 혹시 전원은 잘 연결되어 있구요?” “전원? 그게 뭐다요? 난 잘 모른께. 빨랑 쫌 고쳐주쑈~잉.” 그 할머니는 그게 몹시 다급했는지 막무가내로 재촉했다. “그러시면 혹시 옆에 다른 분이 계시나요? 먼저 확인해 볼 사항이 있거든요.” “지금은 나 혼자 있는디…” “혹 컴퓨터를 구입하신 날이 언제인 줄 아시나요? 네모난 박스 옆면을 보시면 제조일자가 나와있거든요. 확인 좀 해 주시겠습니까?” “글씨, 어디보자…. 1997년 3월이라고 적혔는디…, 이게 맞다요?” “예. 구입하신지가 3년이 지났군요. 저희 제품은 무상 A/S 기간이 3년입니다. 거기까지 나가게 되면. 출장비를 주셔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희 회사로 제품을 가져오시면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 “뭐요? 거기가 어딘디요? 내가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노인네가 뭔 힘이 있겠소. 그라고 또 출장비는 뭐다요? 말도 안되구만. 거기서 샀으믄 고쳐줘야제. 안 그라요 젊은이?” “아, 그렇더라도…. 그럼, 사시는 곳이 어디신가요?” 업무로인해 바쁜데도 불구하고, 몇분간 계속되는 전화에 몹시 짜증이 났다. 그러나 시골에 계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꾹 참고, 더욱 친절하게 말씀드렸다. “여기? 여긴 학동인디?” 학동이면 내가 사는 동네인데…. 나는 마음속으로 한참을 망설였다. “할머니! 전 A/S 직원은 아니구요. 민원 접수 상담원이예요. 그러니까 제가 직접 나가서 고쳐드릴 순 없거든요. 수리를 하실려면 출장비를 주셔야 합니다.” “아~어쨌거나. 여기 학동 삼성맨션 101동 101호인께 빨랑 와서 봐 주쇼.”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하나 나는 차마 할머니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야 하는건가? “그럼 오후에 저라도 가서 고쳐드릴게요.” 나는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 그리고 오후에 집에 가는 길에 들러 컴퓨터를 손 봐 드렸다. 원인은 모니터와 본체의 연결 잭이 빠져있었던 데 있었다. 간단히 전화 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을 방문까지 해서야만 처리해야 했던 데 대해 할머니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할머니의 좋아하시는 모습에 짜증스런 마음은 금방 사라지고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이제 다 고쳤습니다. 컴퓨터 잘 쓰시구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끝내고 막 현관을 나서려 했을때였다. “띵동띵동” 벨소리가 나더니 아주머니 한분이 들어오셨다. “어머니 저 다녀왔어요. 헌데 이분은 누구신가요?” 그 아주머니는 처음보를 나를 보고는 의아한듯 할머니에게 물었다. “네. 전 서울 컴퓨터에서 민원 상담을 하고 있는 노영렬 이라고 합니다. A/S 때문에 잠시 들렀구요. 지금 다 고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그때 나가시기 전에 잠깐 뵈었었죠? 이제 생각이 나시죠? 그땐 정말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서비스 업종에 근무하거든요, 저희 집 컴퓨터는 3년이 넘었기 때문에 서비스가 안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A/S 기사 분도 아닌 민원 상담원께서 직접 와 주셨으니…. 게다가 정말 친절하시더군요. 잭 연결뿐만 아니라 어머님께 사용법까지 가르쳐 주시구요. 언제 시간이 나시면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전후 사정을 들으시고는 정말 고마워 하시더라구요.” 그때 일을 회상하고 있는데 상냥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아무쪼록 잘 쓰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저도 서비스 업종에 근무하다 보면 매일 들어오는 민원에 시달려서 항상 고객에게 친절하기가 힘들더라구요. 나 자신도 모르게 회피하고 싶어지구요. 하지만 노대리님은 다르신 것 같아요. 고객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 같거든요.” “하하~ 그게 바로 고객감동이 아닌가요? 어찌 보면 고객감동이란 저희 서비스업 직원들과 고객간의 확실하고 믿음직한 업무적 인연이 닿아 만들어진 작은 사랑이 아닐까 싶군요. 한쪽의 배려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아주 조그만 사랑 말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저희 직원들만 친절하면 고객감동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요구를 한다거나, 저희들의 말을 무시하고 욕을 한다면 서로의 사이에 벽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나아가서는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되지요. 즉, 진정한 고객감동이란 받아들일 준비가 된 고객과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직원들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나는 새삼 일하는 보람을 느낄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기쁨에 차 말했다. “호호~맞아요. 지금 말씀하신 걸 들으니 저도 앞으론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입장을 바꾸어 보면 다른 곳에서는 저희들도 고객일 테니까요. 아, 참! 그건 그렇고 정말 식사대접이라도 하고 싶은데 퇴근후에 시간을 내실수가 있나요?” 아주머니는 내 친절함에 꼭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나와 만나기를 간청했다. “정말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퇴근후에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거든요. 그래서 시간을 내기가 힘듭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이미 식사대접을 받은 것 이상으로 고맙습니다.” 나는 정중히 사양을 했다. 그리고는 어느새 내 눈길은 책상 아래에 있는 책가방에 멎어 있었다. “그럼, 온라인으로 출장비라도 보내드릴께요. 이거 정말 감사해서….” 그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도중에 나는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를 끊는 내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흠뻑 베어있었다. 직원들이 나를 힐끔 보고는 ‘저 친구 왜 저래?’ 라는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는 한통의 전화. 그리고 이 한통의 전화로 이루어지는 감동. 고객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상담해서 문제를 해결 해주는 게 우리가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이라면, 이 한통의 전화야말로 고객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 아닐까! 유난히도 붉으레한 저녁 노을 사이로, 빠꼼히 고개를 내민 황홀한 햇살이, 나의 책갈피 속에 스미는 엷은 미소를 더욱 밝게 비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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