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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sports_413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년대표★
추천 : 11
조회수 : 1241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1/03/28 15:47:37
# 09년
기아가 09년도에 우승을 했지만, 실상 '운빨'만은 아니었음.
모든 조합이 맞아 떨어져서 우승했다고 했지만 09년도 기아가 제대로 1군 전력을 갖췄던
때는 시즌 중반을 넘어서 후반기를 달리던 7월 중순 부터였음.
- 이용규 시즌 초 발목 부상으로 100일 결장.
- 김원섭 만성간염 및 모친상으로 40일 결장.
- 윤석민 보직 변경, 부상으로 30일 결장.
- 장성호, 김선빈, 이종범 등의 야수들 부상으로 1-2군 오르락 내리락.
심지어 6월 경에는 한달 내내 거의 2군급 선수들로 경기를 치루다 시피했고 5-8월달 중
가장 승률도 좋지 않았음. 라인업에 주전급 선수가 2-3명;; 더구나 최희섭도 6월 내내
햄스트링과 장염으로 제대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음.
그렇다면 기아가 우승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두가지 이유로 압축 되는데,
1.양구로의 1-2-3 펀치 및 SKY 불펜.
결국에는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점에서 서재응 부진과 윤석민 마무리로 보직 변경으로
선발진에 구멍이 생겼음에도 양현종, 구톰슨, 로페즈가 시즌 내내 믿음직하게 팀의 중심
을 잡아줬음
결국 3연전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는 팀이 1위를 하는 것이 야구. (승률이 0.666)
즉, 야구는 연승이 아니라 연패를 안하는 것이 중요.
부상선수가 많아 전력이 크게 다운 된 기아였지만 양구로의 활약으로 5-8월 간 단 한 번
도 3연패를 당한적이 없었음. 반대로 제대로 1군 전력이 아니었기에 7월 중순까지 단 한
번도 4연승을 한 적이 없음.
시즌 내내 2승 1패, 3승 2패....이런 식으로 진행;.
불펜은 SKY라인이라 불리는 손영민, 곽정철, 유동훈이 핵심이었는데 엄청난 뛰어난 활약
을 해줌. 그래서 뒷목 잡는 경기가 없었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조범현 감독의 철저한 불펜관리가 있었음. 야수들 전력 자체가 1군
이 거의 없어서 잡을 경기는 확실히 잡고, 내줄 경기는 SKY 불펜 가동 자체를 안 함.
즉, SKY 라인은 충분한 휴식을 받으면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함.
2.믿을 수 없는 클러치 능력
타율 8위 팀이 우승을 해버리는 최초의 팀, 바로 기아타이거즈.
하지만, 승리로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타점과 득점 기록은 상위권이었음.
결과적으로 따지면 기아는 득점 찬스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줬음. 한 때 득점권 타율
상위 5명 안에 3명이 기아 선수였던 적도 있었음.
...
결론적으로 09년도에는 확실히 투수빨로 우승함.
'양구로, 손곽유'
이 6명의 선수가 팀을 지켜낸 것인데, 실제로 타격의 경우 전설의 1군이 다 돌아왔던 7-8월
빼고는 제대로 터진 적이 없었음.
부상선수가 많았음에도 저 6명의 투수들로 연패를 당하지 않으며 버티다가 7월달 1군이 다
돌아오면서 풀전력이 되자 폭발하기 시작하며 3위에서 1위로 시즌을 마무리 함.
당시에 조범현 감독이 '칼을 들 때가 올 것이다' 라고 말한 것도 정상적인 전력이 오던 그
시점이었고, 당시 기아팬들은 조범현 감독의 긴 안목에 대해서 큰 칭찬을 많이하며 '조갈량'
이라는 칭호를 내림..-_-;
김상현 효과가 대단하긴 했지만, 확실히 투수빨이었음.
김상현의 경우도 시즌 MVP까지 받았지만 7월 전까지 상상도 못했던 일.
최희섭과 김상현 모두 3할, 30홈런, 100타점 이상을 기록했는데, 6월달 부상 등으로 폼이 무
너져서 한때 타율이 2할 5-6푼대로 동반 하락했음.
그런 악조건에서도 주축 투수들이 끝까지 5할 승률을 만들어줬던 것이 제대로 풀 전력이 돌아
오면서 최희섭과 김상현이 7-8월 두달간 미친듯이 터지기 시작함.
그렇다면 왜 10년도에는 시망했을까?.
이 점은 09년도 우승했을 상황과 비교해보면 쉽게 답이 나옴.
성원이 있으면 다음 글에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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