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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와 베충이 껍질을 홀딱 벗기기 시리즈 #7
게시물ID : sisa_4139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추천 : 12
조회수 : 44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7/12 22:10:46
우리는 보통 통념적으로 전체주의 파시스트 지도자가 있으면 자유를 빼았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자유가 거리낌없이 누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전체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빼았긴다는 말은 정확히 정 반대일 것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는 정 반대의 일을 한다.
 
뭔 말이냐고?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을 보셨다면 흥미로운 시퀀스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박정희 시대를 그린 이 영화는, 주먹으로 사업을 하던 깡패의 일대기를 통해서 그 시절(박정희)을 그려내고 있다. 중반즈음에 경찰서 씬이 나오는데, 통금 시간에 걸린 사람들이 경찰서에 잡혀오고, 게 중에 무슨 발언 때문에 잡혀 온 술에 취한 두 명의 교수가 나온다(아마 정권을 비판하는 말이었을 거다). 한 명의 교수가 전화를 걸어 검찰 백을 동원해 자신들의 결백을 입증하려고 한다. 검찰의 전화를 받고 경찰이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걸려 오는 전화. 그 옆에서 만취한 교수는 정부를 까고 있었다. 다시 걸려 온 전화는 검찰이 아니라 안기부였다. 검찰의 전화는 다소 시큰둥하게 받았던 경찰이, 안기부 소속이라는 말이 수화기 넘어 들려오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넷 넷! 을 연발했다. 안기부(남정) 직원은 그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빨갱이 색키들 올려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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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두 교수는 정부를 비판한 명목으로 남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을 것이다. 한번 오늘의 기준에서 생각해 보자. 정부를 비판한다고 빨갱이란 누명을 씌울 수 있나? 그것도 정부 조직이? 그렇다고해도 그렇게 아무런 영장 심사 없이 잡아갈 수 있나? 수많은 규칙을 무시하고? 발언 때문이라면 그걸 법원에서 입증 할 증거라고 할 수 있나? 아마 요즘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냐?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텐데.. 바로 이런 거라는 거.. 그러니까 사소한? 법적 절차나 인권 따위의 것을 모두 무시해도 되는 '자유를 가진 자'들이 나타난다는 거다. 파시스트 사회에선.
 
탈북자 수기를 보면 분명해진다. 파시스트 사회가 어떤 곳인지.북한은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무엇을 해도 가능한 파시스트 사회다. 무한대의 자유, 심지어 길 거리에서 사람을 때려 죽여도 좋다.
 
여러분들은 독재가 가진 모순을 떠올려봐야 한다. 보통 독재를 비판하는 관점은 자유를 억압한다라고 할 수 있지만, 진실은 정 반대이다. 아버지(독재자)는 금기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아버지에 의해서 개색키들의 무정부적 자유가 허용된다. 즉 아버지는 금기의 언어가 아니라, 정 반대로 그들에게 자유를 줄 허용의 대상인 것이다.
 
아버지란 이름아래 행해진 십자군 전쟁이나, 기타 인류의 모든 만행들을 떠올려 보자. 아버지는 억압의 이름인가 방종의 이름인가? 박정희는 여자를 끼고 돔페리뇽을 마시며 향락을 즐기던 아버지로 죽었던 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아버지만 있으면 그를 추종하는 전제하에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것이 바로 독재의 아이러니다.
 
민주주의 사회에 오면서 아버지는 죽고 대신 법이 들어섰다. 절차와 공공선의 개념이 나오고 알튀세르(철학자)가 말하는 시민 의식(훈육)이 강조된다. 법은 명목상 누구의 것도 아닌,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율법이므로, 누구도 그 위에 설 수 없다. 즉 민주주의가 도래 한 것이다.
 
그럼 생각해 보자. 과연 자유란 게 뭘까?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자유는 곳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자유와 의미가 다르다. 계몽 철학들은 대부분 이러한데, 자유는 곧 자기에의 준칙이라고 규정한다. 칸트는 사물자체와 주체의 관계에서 인간 오성이 발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를 이와같이 규정했다. 준칙을 따르는 것. 그것만이 보편 타당한 자유다. 적어도 근대성에선 자유란 방종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선을 향한 무조건적 복종을 의미한다. 그 후 여러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칸트의 논의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현대 철학에 와서는 비판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복잡한 논의들을 걷어 치우고 말하자면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자유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 윤리가 되었다.
 
공공 장소에서 지 맘대로 굴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 상대를 일방적으로 멸시하고 신체적 위해를 가할 수 없는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등등등.... 민주주의 사회에 오면서 이런 것들이 윤리화 되었던 것이다. 지난 20년 간.......
 
그 후 나타난 파시스트들이 바로 베충이들이다. 걔네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억압되는 걸 자유를 억압한다고 말한다. 예를들면 홍어니 뭐니 명백한 파시스트적 사고를 떠들 권리와 김치녀니 뭐니 떠드는 흉흉한 말들을 말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걔네들이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건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들면 베충이들은 선전이니 선동이니 이따위 말을 내뱉지만, 그것을 부정하려면 민주주의하에 정치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한다. 왜? 민주주의란 뭔가? 법이라는 가상적 언어로 묶은 사회다. 즉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세뇌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회에 산다면......
 
즉 베충이들의 진정한 적은 민주주의다.
 
위에서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방종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상식이란 준칙을 윤리로 삼기 때문이다. 그것이 베충이들 눈엔 억압으로 보이고, 족쇄로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유를 한다라는 걸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베를 한다는 것은 숨겨야한다. 왜일까? 여기에 대해서 수많은 철학적 논의들을 끄집어 내 더 흥미로운 주장들, 아예 베충이들의 껍질을 홀라당 다 벗겨버릴 논의를 끄집어 낼 수 있지만 여기서 줄인다. 그건 논문에서나 다룰 주제이다.
 
왜 베충이들이 말하는 자유가 오늘날 상식과 동 떨어진 파시스트의 자유인지 위험한 줄타기인지 아는가? 파시스트 사회에서 자유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와 법 위에 있는 아버지란 존재가 있다면, 그 아버지를 추종하는 세력에겐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 책임이 없는... 나치주의자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후 전범 재판 법정에 서서 하는 말이,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히틀러)가 시킨 일이니까.. 자신은 할 수밖에 없었고, 시키는대로 했을뿐이란 것이다. 과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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