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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정치개입과 NLL 논란 - 기호화된 정치?
게시물ID : sisa_4140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2
조회수 : 39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7/13 03:39:06
Written by 무명논객
 
정치란 무엇인가? - 우리가 익히 접하고 던져봤을만한 이 간단한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에는 그 영역이 너무나도 광범위하기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곤 한다.
 
예컨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한 학자가 있는 반면, 정치를 단순한 권력의 문제로 치환해버린 경우도 있다. 여하간 정치에 대하여 우리는 나름의 규범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를 부분적으로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성공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건 명백하다.
 
제도 안에서 몸부림 치는 정치 다시 말하면 현대 사회에 흔히 접할 수 있는 제도 정치는 두 가지 변속적 흐름을 지니고 있다. - 느리지만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담론 주도의 정치가 그 첫 번째이며, 빠르게 변화하지만 불연속적으로 소비되는 상징의 정치가 두 번째다. 이 두 흐름은 서로 다른 판에 위치해 있으며, 때문에 우리에게 정치가 정치로써 인식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 사실 대중은 이러한 정치의 다층구조를 경험하고 이해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
 
무엇이 정치인가? 정치를 가장 큰 범주로써 이해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 이전에, 미디어의 발달은 이데올로기를 쉽게 은폐하였으며 대신 이데올로기의 빈 자리를 상징과 기호로 메우려는 시도를 했다. - 물론 그것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오늘날 사회는 상징으로 도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상징의 홍수에 살고 있음은 틀림 없다.
 
여기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는 대중으로부터 동의를 구하는 제스쳐를 취한다. - 명백히 상징의 홍수 속에 자본의 헤게모니는 그 위력을 가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 대형마트의 존재는 이제 우리에겐 당연한 것이 되었다. - 나아가 정치 그 자신도 기호로 치환되었다.
 
사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유효한 윤리적 질문은 그 어떤 것도 효력을 상실하고 기각되고 만다. - 일베와 같은 파시스트들에게 윤리가 존재하는가?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기호화된 정치를 소비할 뿐이다. 노무현을 조롱하는 그들의 태도와 패악질적 테러리즘, 혹은 탈레바니즘은 그것이 심오한 비판적 텍스트를 담은 것이 아니라 그저 한 가지 유희거리에 불과한 기호식품일 뿐이다. - 불행하게도, 이는 현대 정치에 있어서 매우 징후적인 모습이라고 보여진다.
 
보통 우리가 정치적사건을 접할 때, 사실 그 사건이 지니는 실질적 맥락과 의미를 바라보며 반응하기보다는 그것을 즉흥적으로 수용하고 때로는 열광을, 때로는 비난을 퍼붓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 연유한다. 그것은 정치가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은(인터넷과 매스미디어의 발달) 것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 이제 정치는 철저히 기호로서 기능하며, 상징은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라는 천인공노할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새누리당이 NLL 논란을 재점화시킨 시점을 두고 단순히 정치적 사건을 덮기 위한 꼼수 정도로 읽는다면 한 편의 웃지 못할 희극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이 두 사건은 명백히 상징의 대립이다. - 이는 프레임의 문제를 넘어 선, 구체적인 현대 정치의 증상이다.
 
가장 단적으로, NLL 논란에서 중요한 지점이 NLL 자체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어떠한 효력을 지니고, 어떤 것이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인지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 어쩌면 이러한 접근법은 이미 저 쪽에선 폐기되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피와 죽음으로 지킨” NLL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박 모 씨의 말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듯이, NLL은 오히려 상징적 도구다. - 다시 말해 NLL에 투영되는 것은 구체적인 이성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만 하는 정념에 더욱 가깝다. - “NLL을 포기했는가, 아닌가라는 의제가 설정된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국정원 사건은? - 국정원 사건의 본질적 측면이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훼손이라는 점은 단순한 규범적 질문에 던져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나, 최근 터져 나오는 일련의 행동들은 민주주의의 근본화와는 사실 거리가 있다. - 민주주의에 대하여 보다 성찰적인 텍스트가 인용되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으나, 실상은 기존에 존재하던 얇은 껍데기에 밴드를 붙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 우리는 그저 미완의 텍스트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로부터 민주주의라는 텍스트가 훼손되었다는 것이 자명한 이상 이는 보편적 준칙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기호화된 정치 안에서 두 상징체계는 이젠 그 어떤 윤리적 물음도 기각한 채 소모전만을 펼칠 뿐이다. -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준칙으로서의 개념은 애국이라는 기호 앞에 한 마리 발끈한 양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 보편성이 우선인가? 기호가 우선인가? 확실한건, NLL을 물고 늘어지며 피와 죽음을 부르짖는 저들에게서 발견되는 정념은 하나의 준칙으로써 작동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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