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현대차그룹 산하 ‘형제 기업’이다. 두 업체의 국내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자연스레 두 업체의 가격과 서비스 정책이 전체 내수시장을 쥐락펴락한다.
매년 차값이 오르고 출시모델도 제한적이지만 소비자들은 별다른 대안 없이 현대·기아차의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기아와 합병 후 점유율 80% 육박 가격·서비스 정책 등 ‘쥐락펴락’
▲ 수출·내수용차 품질 시비도 계속 혁신 방해…‘미래의 독배’ 우려
■ 1998년 이후 ‘시장 지배’ 이어져
현대차그룹이 내수시장을 장악한 것은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은 기아차를 현대차가 인수한 1998년부터다. 현대·기아차의 승용차 내수시장 판매점유율 합계는 1998년 합병 전 56%였다. 그러나 합병 직후인 1999년 67%로 뛰어올랐고 2006년부터는 7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12년엔 80%를 넘기기도 했지만 77~78%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적 사업자’ 기준을 한참 초과하는 수치다. 현행법상 한 사업자 매출 기준 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상위 3개사 점유율이 75% 이상이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보고 규제를 한다.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인 도요타도 일본 내 점유율이 50%를 넘지 않고, 혼다와 닛산 등 경쟁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30%가량 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미국의 3대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는 각각 10%대이고, 모두 합쳐도 40% 안팎이다.
■ 지속적인 가격·품질 시비
현대·기아차의 독점은 경쟁이라는 시장의 기본 기능 상실로 소비자 이익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매년 오르는 차값이다. 현대차 쏘나타 2.0 모델 평균 가격은 2004년 1800만원대에서 10년 사이에 700만원 이상 올랐다. 액센트와 아반떼, 그랜저 등 다른 주력 차종 역시 국내시장 독점 체제가 형성된 이후 가격이 오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자동차 경기 활성화를 위한 노후차량 교체에 지원한 예산 6000억원 대부분을 가져갔지만 이 기간에도 차값을 올려받았다.
특히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인 현대·기아차가 가격을 올리면 한국지엠과 르노삼성, 쌍용자동차 등 경쟁업체들이 뒤따르는 현상이 되풀이됐다. 품질이나 고객 만족도와 관계없이 독점업체가 결정한 가격이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수출용과 내수용 차량의 품질·서비스가 다르다는 불만도 끊이지 않고 있다. 동일 차종의 국내와 해외시장 가격 및 보증기간이 다르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기아차의 차체 부식에 대한 무상 보증기간은 유럽에선 12년이지만 한국은 7년으로 차이가 크다.
소비자 선택권도 제한돼 있다. 대표적 수입차 브랜드인 BMW가 국내 판매 중인 차량은 111종이다. 지난해 국내시장에서 3만3066대를 팔았다. 현대차는 국내에서 47만9433대를 팔았지만 전체 차종은 38개에 불과하다. 40만3219대를 판 기아차도 차종은 44개에 그친다. 소비자 입맛보다는 현대차가 주는 선택지에 자신의 취향을 맞춰야 하는 처지다.
■ 독점은 축배 아닌 독배
경쟁이 없는 시장의 폐해는 연구·개발(R&D) 비용 차이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동차 산업이 첨단화하며 글로벌 업체들은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2조1900억원을 R&D 투자에 쏟았다.
그러나 유럽위원회(EC)의 ‘산업별 R&D 투자 보고서 2013’을 보면 폭스바겐은 13조6058억원, 도요타는 10조1129억원, 다임러·벤츠는 8조650억원, GM은 7조9869억원을 투자했다. 이어 혼다, 포드, 닛산, BMW가 뒤를 따랐다. 글로벌 5~6위를 오르내리는 현대·기아차는 13위를 기록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국내시장 독점 구조가 공고하다보니 기술 개발 유인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가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 없이 이익을 올리며 독주하는 현상은 장기적 자기 혁신이나 개발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경고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전기차가 대중화돼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중소 자동차 메이커들이 생겨나면 기존 현대·기아차 독점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개발하고 소비자를 만족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결국엔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