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개월 전이다.
내가 연애를 포기한 지 얼마 안 돼서 오유에 가입할 때다.
베스트 베오베도 다 보고 볼 게 없으면, 연예게시판에 들어가곤 했다.
최애 이름을 닉네임에 넣고 영업하는 노인이 있었다.
배경화면 바꾸려고 적당한 짤 부탁을 했다.
댓글에 짤을 굉장히 많이 올리는 것 같았다.
"좀 골라서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짤 하나 가지고 뭘 하겠소? 필요한 게 없으면, 구글링 해서 받아 가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댓글 폭탄을 막진 못하고 예쁜 짤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짤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올리는 것 같더니,
뒷모습에 옆모습에 움짤까지 올리기 시작하더니,
100개가 넘어서 댓글더보기 버튼까지 눌러야 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올리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만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이번달 데이터가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올리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모을만큼 모아야 덕후가 되지, 머글이 움짤 몇 개 본다고 입덕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작성자가 이미 입덕 했다는데 무얼 더 올린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데이터가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구글에서 찾아보우. 난 댓삭 하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스크롤 내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데이터 남기기는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올려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퀄도 낮아지고, 움짤 업로드도 늦어진다니까.
덕후는 제대로 만들어야지, 잡덕만들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대용량 움짤들을 외부링크로 올리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와이파이존을 찾아다녔다.
얼마 후에야 '폰에는 짤이 몇개 없다'면서, 다 됐다고 댓글을 단다.
댓글 300개는 아까부터 넘어 가 있는 게시물이 되었다.
데이터를 다 쓰고, 월말까진 와이파이를 찾아 다녀야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영업을 해 가지고 영업이 될 턱이 없다.
예비덕후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짤만 되게 올린다.
입덕짤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디시앱 켜고 갤러리 념글을 보고 섰다.
그 때, 념글을 보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덕후다워 보였다.
재밌는 고닉과 디시콘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아는 덕후 앞에서 배경화면을 내놨더니
레전드 짤을 받았다고 야단이다.
제 pc 배경화면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뉴스기사 사진들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덕후의 설명을 들어 보니,
얼굴이 너무 가까이 찍혔으면, 붙덕일 가능성이 있고,
보정이 과하면, 머리색과 눈동자색이 내 최애의 머리색, 눈동자색이 아니거나,
가부키 사진이 되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짤들은 좀체로 줍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