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가면 자신을 못 알아볼까봐 가시는 날까지 긴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셨던 로맨틱한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돌이 될 쯤에 이혼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7살 때 쯤 재혼을 하셨고 난 그 즈음 새엄마에게 오게 되었다.
하지만 수없이 읽었던 백설공주와 같은 동화에서의 계모에 대한 편견의 선행학습.
바깥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난 화장실을 간다고 몰래 나와 7살 때 세시간을 걸어서 다시 할머니가 있던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고 새엄마는 그 때 당시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어쩔 수 없으니 당신이 키워라는 말과 함께 쭉 나는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물론 그때는 국민학교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은 없을 지 모르지만 부모님들이 써야 할 글들이 너무 많았고 자존심이 강한 나는 거의 대부분을 자필로 적었다. 할머니는 글조차 모르셨고 그런 할머니를 대신해서 난 어린 나이에 혼자 도장을 파기도 했고 별별일을 다 한 거 같다. 덕분에 글씨는 어린 나이에도 궁서체로 적었었고..
사실 내가 고등학교 내내 가출을 안한 이유도 그 이유에서였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싸우기 전에 미리 머릿속으로 상황을 예측하고 그리는 것처럼 내가 가출하고 나서의 상황을 그려보니 글조차 모르는 할머니가 대체 무얼 어떻게 할 것이며 날 찾아서 헤멜지를 상상하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자라던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정확치는 않지만 아마 그 정도였던 거 같다.
학교문방구 앞을 서성이다 3000원짜리 슈퍼태권브이를 봤다.
뽀빠이과학....
며칠을 서성거렸다
정말 갖고 싶었고 이것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을 거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난 옷 속에 그 슈퍼태권브이를 감췄고.. 겨우 한 두 발자국 밖으로 나갔을까?
" 아저씨, 여기 이 형 로보트 훔쳐요!!!"
1년 아래로 기억하는 남자아이가 크게 소리쳤다.
그 순간 난 아무 말도 못했고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어? 아저씨가 쟤 아는데 그럴 애가 아니야 ㅎㅎ"
문방구 주인 아저씨는 웃으면서 말했고 난 그 말을 듣자 마자 집까지 뒤도 보지 않고 뛰어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날 하루는 일년만큼 길게 느껴졌다.
어린 나이지만 그 순간 수많은 생각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많아야 초등학교3학년인 어린아이가 배에다가 로보트 박스를 넣는데 그 걸 몰랐을까?
이 질문을 그날 하루내내 한 것 같다....
그리고 난 그 날 이후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그 아저씨가 살려준 거라 평생 생각하면서....
여담이지만 그 이후 자란 난 대학교를 다니다 재수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 고시원형 독서실에 지낸 적이 있다. 거기서 내게 장난감을 훔친다고 외쳤던 아이를 다시 만났고 그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고시원 전체의 노트북을 훔쳐서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선 세상일은 참 모르는 거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