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 라는 밴드가 있다. 보컬 보노, 기타 디 엣지, 베이스 아담, 드럼 래리. 1980년 아일랜드에서 등장한 이 4인조는, 탁월한 연주력은 둘째치고 보노가 작사하는 빈곤, 종교, 국가 등의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가사가 큰 반향을 불러 순식간에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다. 그러던 중 1984년「Pride (In the Name of Love)」라는 곡이 발표된다. 이 곡은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바치는 곡이며, 그의 공적을 칭송한 곡이었다. 그때도 이미 여러 단체에게 압력이나 협박을 받던 U2였지만, 특히 전미 투어가 결정된 이후부터는 KKK를 필두로 인종차별단체로부터 대량의 협박장이 도착했다. 그 내용은 미국에 입국하면 죽이겠다, 특히 Pride를 연주할 경우 보노를 사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투어 중지도 검토되었지만 멤버들은 「길거리 골목 안 창고에서 연습하던 시절부터, 우리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다」 라며 투어 실시를 결정했다. 미국에 들어서자, 공항에서 기다리던 현지 경찰로부터 만약 총격을 받는 다면 L.A에서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를 받는다. 투어가 시작되었고 U2는 많은 방해 속에서도 전미 투어를 계속 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L.A. 내일의 라이브가 가장 위험하다는 첩보까지 받는다. 라이브 당일, 멤버의 곁으로 스타디움 경비로부터 수상한 사람을 확보했다는 연락이 들어온다. 총을 반입하려고 한 사람이 여럿 붙잡혔다는 것. 이미 스타디움 내에 총기가 반입됐을 가능성도 지적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멤버나 스탭들도 질렸고 라이브 중지나 최소한 Pride를 공연 리스트에서 빼는 것이 어떻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보노는 어떻게 해서든지 Pride를 노래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스테이지에 올라 열광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U2. 문제의 Pride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멤버 4명은 전에 없는 긴장을 느꼈다. 보노는 힘껏 노래했다. One man come in the name of love One man come and go One man come, he to justify One man to overthrow In the name of love What more in the name of love In the name of love What more in the name of love 스타디움에는 수만명의 관객이 있었고 전망은 아주 좋았다. 자신은 스테이지 중앙에 있었다. 공격한다면 바로 이 곡, 죽이고자 하면 아주 간단하다. 보노는 죽음을 의식하자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 때, 손님 중에 몇 명의 남자가 의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이자 보노는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주저앉고 말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고 그대로 노래만 계속했다. 그리고 곡도 후반부에 접어들고, 보노가 조심조심 얼굴을 들어올리자 눈 앞에 한 남자가 등을 보이며 서 있었다. 아담이었다. 그는 베이스를 연주하며 보노의 방패막이가 되어 서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무대에서 본 녀석의 등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2006년, 3번째로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된 보노는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