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집이 파주입니다.
저는 직장때문에 서울에서 지내고 있고 파주에는 저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고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운 거리임에도 집에 계속 들르지 못 하였다가 지난 주 토요일에
어머니와 동생 용돈이라도 좀 챙겨드리고 얼굴이라도 볼겸 해서 내려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문산역에 내렸습니다. 어머니가 마중나와 주셔서 함께 시내를 향해 걸어나가고 있는데 선거 유세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거리엔 온통 빨간색 뿐입니다. 노란색 초록색도 보일만 한데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빨간 옷의 아저씨가 다가오셔서 1번 후보 뽑아 달라 하십니다.
어머닌 별 말씀 없이 끄덕 끄덕 하시고는 빨간 아저씨를 지나쳐 집으로 향하십니다.
나 : 엄니, 이번에 투표하실거죠?
어머니 : 사람들이 다 1번 뽑으라 그러드라
나 : 뭐라면서 뽑으라 그래요?
어머니 : 2번 뽑는 애들은 간첩놈들이 젊은 애들 현혹시켜서 뽑는거라 그러드라.
저희 어머니 정치에 별 관심없으신 분 이십니다.
IMF에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가족 먹여살리시느라 쉬지도 못하고 일하시다 결국 병까지 얻어 추운날엔 어디 밖에 잘 나가시지도 못 합니다.
그런 어머니 한참 추울 투표날 투표장에 모셔다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였는데
그 말을 들으니 내 눈에 불똥이 튑니다.
파주라는 동네 특성상 저런 멘트 아주 잘 먹힙니다.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임진강, 휴전선이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심심치 않게 돌아다니는 군인들과 군용차들 볼 수 있습니다.
저 어릴 적에는 대낮에도 군탱크의 무한궤도가 아스팔트를 시끄럽게 울리며 돌아다니는 탓에 낮잠을 자다 놀라서 깨어난 기억도 납니다.
고등학교 시절 서해교전이 벌어지던 날엔 선생님들은 모두 교무실에 불려갔고 덕분에 수업은 자율학습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 공포 공작 피해자들의 소굴이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당장이라도 한 마디 하려다가 참습니다.
내가 괜히 흥분이라도 하면 설득하기 힘듭니다.
그냥 조용히 집에 들어왔습니다.
우리집은 IPTV가 있습니다.
그날 저녁 여동생까지 다 모여 함께 식사를 하며 IPTV로 힐링캠프를 보았습니다. 박근혜편과 문재인편.
두 편을 다 보고서 말씀드렸습니다.
2번 찍자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간첩이라고 얘기다는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하다 강제징집으로 끌려간 군대를 특전사로 마치고 나온 사람을 보고 간첩이라고 얘기하는 거라고.
그리고 그 사람 지지하고 있는 나도 간첩이라고 말 하는 거라고.2
"엄니, 내가 간첩 같아요?"
"아니지... 근데 저 박근혜 저 여자는 가만 보고 있으면 제대로 아는게 없는 것 같어."
"문재인은 어떤거 같애요?"
"사람이 참 정직하게는 생겼네"
옆에서 혼자 진지먹고 있는 여동생을 보며 말했습니다.
"너 19일에 엄니 모시고서 같이 투표장에서 투표하고 나 한테 인증샷 보내라, 그럼 내 회사에서 받은 20만원 짜리 상품권 너 줄께"
"너가 그거 안 줘도 투표할 꺼니까 그냥 지금 줘"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서 반박할 수 없었기에 동생에겐 상품권을 주었고 어머니께는 준비했던 현찰을 드리며 말했습니다.
"엄니, 매달 드리는 거지만 대선 끝나고서 내 주머니 사정이 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꼭 투표하세요"
어머니의 반짝이던 눈동자가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전 이렇게 2표를 돈으로 샀습니다....
그 날은 아주 잠이 잘 왔드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