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9290
회의록 이관·폐기 여부 관계없이 기소 불가능... MB정부에 수사 방향 쏠릴지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태가 결국 사법기관의 수사로 귀결될 예정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24일 회의록 실종 사태와 관련, "여야 합의에 따라 엄정한 수사에 맡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의록 '실종' 결론 후 검찰 수사 의뢰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새누리당도 "전적으로 찬성한다"며 화답하고 나섰다. 이제 여야는 검찰에 수사를 맡길지, 특검을 새로 구성할지 여부를 놓고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회의록 실종 사태에 대한 사법기관 수사 의뢰가 새누리당의 자충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복수의 법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록을 이관하지 않았거나, 폐기를 지시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기초한 기소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회의록 이관·폐기 여부 관계 없이 '공소권 없음' 처분 가능성 높아 회의록 '실종' 사태에 대한 수사 의뢰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여야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판단,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을 거쳐 열람을 진행했다.
특히, 이 법 14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무단으로 대통령기록물을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새누리당도 이에 근거, "중범죄에 대한 작금의 사태는 검찰 수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홍지만 원내대변인)"고 주장해왔다. 특히 회의록 실종 사태의 원인으로, 노 전 대통령이 애초에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을 이관하지 않았거나, 폐기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회의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는 주체가 노 전 대통령이다. 해당 법 17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 군사·외교·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 ▲ 대내외 경제정책이나 무역거래 및 재정에 관한 기록물 ▲ 정무직공무원 등의 인사에 관한 기록물 ▲ 개인 사생활 관한 기록물 ▲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 등에 대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따로 지정하도록 돼 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에게 회의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거나 해제할 권한이 있는 이상, 법리상 해석 논쟁이 붙을 소지가 다분하다. 가까운 예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대통령지정기록물 24만건을 이관했지만 다음 대통령이 볼 수 있는 비밀기록은 단 한 건도 남기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지정기록물 34만 건을 이관했고 비밀기록은 9700건 남겼다.
즉,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및 해제, 이관 등을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본다면 국가기록원 이관 여부를 사법 처리 대상으로 확정짓기는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회의록을 폐기하라는 '위법' 지시를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뜬 고인이다. 사법당국은 "피의자의 사망이나 피의자가 사면을 받은 경우 등 소송을 위한 조건이 준비되지 않았을 경우"로 판단,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문 의원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자 당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묶으며 회의록 '실종' 사태의 책임을 묻고 나선 것도 사실 무의미하다.
노 전 대통령이 이관 불이행 혹은 폐기 지시의 주체인 이상, 문 의원은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앞서 문 의원이 국가기록원의 회의록 열람 등을 주장한 점을 감안하면, 회의록 '실종' 사실을 사전 인지하고 있다고도 볼 수 없어 '정치적 책임'에서도 한 발 비켜서게 된다.
"검찰 기소는 범죄 전제로 하는데 이명박 정부 시기에만 범죄 여부 성립" 이 때문에 사법당국의 수사가 새누리당의 발등을 찍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법조 관계자는 "국가기록원에 이관됐는데 임의로 파기했다면 법 위반인데 원래 이관되지 않았다는 건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청와대에서 (대통령기록물의) 이관 여부와 지정 해지 여부를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또 "검찰이 기소를 하려면 범죄를 전제로 해야 한다"며 "정치적 의혹을 밝히는 차원이면 이관 시기를 수사 대상에 넣을 수 있겠지만 범죄 여부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기에만 성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검찰 수사로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된 '이명박 정부 폐기설'이 재부각될 수 있단 얘기다. 앞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기록원의 대통령기록관 직제까지 변경하며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을 내쫓은 거나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 무단 접속 흔적 등을 근거로 '이명박 정부 폐기설'에 힘을 실은 바 있다.
법학자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회의록 이관 여부는) 대통령의 재량권에 달린 문제"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비밀기록'을 한 건도 넘기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즉,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국가기록원에 이관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없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만약 이관한 다음에 무단으로 폐기했다면 위법인데 본인(노 전 대통령)이 없으니 공소 유지가 안 된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법을 위반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순 있겠지만 검찰도 부담스러울 것"이라고도 짚었다.
검찰 쪽도 이 같은 관측에 일부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을 국정원에서 관리하라고 지시하고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도 범죄행위로 보긴 어렵다"며 "어쨌든 회의록이 국정원에 있었던 만큼 노 전 대통령이 그를 은폐하거나 폐기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대통령기록물 관련법이 아니라 다른 관련법으로 걸어 기소할 수도 있다"면서도 "이 문제는 정치적 논란만 있는 상황인데 검찰로 끌고 오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그는 "검찰에서 수사를 한다면 국가기록원과 국정원도 압수수색해야 하고 참여정부 인사나 MB정부 인사도 소환 조사해야 한다, 그 자체가 또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결국 여야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도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