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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3)
게시물ID : pony_208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9
조회수 : 33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12/19 04:00:05

(2)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20661&s_no=4171373&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271809

 

엥? 이건 무슨 소리야.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그럼 네 이름은 어떻게 아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사실은 이것이 내 이름인지도 확신이 들지 않아. 다만 지금은 레리티라고 불러줘.'

 

난 이 녀석이 장난을 치고 있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글자는 어떻게 쓸 수 있는거지? 기억이 안 난다면서."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아마도 난 이런 글자를 쓰지 않았던 것 같아. 그리고 네가 하는 말도 내가 있던 곳에서 쓰는 말이 아니야.'

 

그야 그러시겠지. 애니메이션에서 툭, 튀어나온 녀석이 우리말을 쓸리가 없다.

 

"그럼 가장 최근에 기억나는건 뭐냐?"

 

'네모난 담배곽이 날아와서 날 꺠웠어. 그 다음에 바로 네가 나타났지.'

 

갑자기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다.

그 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놀란듯 빠르게 글을 썼다.

 

'누가 왔어!'

 

"엄마랑 동생이야."

 

방에서 나가려고하자 녀석이 글을 쓴 종이가 날아와서 내 앞을 가렸다.

 

'날 숨겨줘.'

 

귀찮아서 종이를 툭 쳤다. 그러자 종이는 힘을 잃고 바닥에 휙 떨어졌다. 녀석을 숨겨야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난 이 녀석을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엄청난 돈벌이가 될 이 녀석을 내가 주워왔다는 걸 알게 되면 모두들 기뻐하겠지. 내가 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자, 지금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컴퓨터 본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야..."

 

곧장 종이가 내 앞을 가렸다.

 

'레리티야.'

 

"그래.. 레리티.. 일단 네가 띄우고 있는 것좀 내려줄래? 조심해서."

 

착한녀석. 제자리에 고스란히 잘 내려주었다.

 

"내가 널 왜 숨겨야...."

 

하는데 라고 말하려던 찰라에 덜컥 문이 열릴뻔 했다. 하지만 내가 곧장 몸으로 막아버렸다.

 

"아 깜짝이야!"

 

문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잠시만요~! 지금 옷을 다 벗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고, 엄마는 잠시 동안 묵묵히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하던거 마저 하고 나오렴."

 

엄마가 무슨 의도로 저렇게 말씀한건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나에게 기분 나쁜 누명이 씌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데 종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여기 있는건 비밀이야.'

 

이글 밑에는 컴퓨터처럼 보이는 그림 위에 'X_X 라고'되어 있었다. 참 귀여운 협박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그래. 비밀로 할게."

 

그럼 된건줄 알고 나가려고 하는데 또 종이가 내 앞을 막았다.

 

'핑키 프로미스야.'

 

종이가 뒤쪽을 보라며 가르키길래 돌아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 자기 눈을 앞발로 콕, 쥐어박았다. 저것이 '핑키 프로미스' 인가보다. 내가 묵묵히 쳐다보자 자기도 민망했는지 이렇게 써서 보여주었다.

 

'왠지 이래야 했던 것 같아. 너도 해야 돼.'

 

이게 무슨 짓인지..

인터넷에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포니 확 찢어버린다' . 물론 저 녀석을 찢어버리지 않을 거지만 속으로 '포확찢'이라 외치면서 오른손바닥으로 내 눈을 살짝 쳤다. 그러자 녀석은 만족한듯 했다.

내가 방을 나오자 엄마는 거실 쇼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수연이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쇼파로 다가가자 엄마가 말했다.

 

"하던 건 다 끝냈니?"

 

"네. 소리좀 키워요."

 

이러면서 리모컨을 만지려고하자 엄마는 리모컨을 확 낚아챘다.

 

"일단 손부터 씻어."

 

"아니, 왜 손을 씻어요..?"

 

"씻으라면 씻어."

 

뭔가 묘하게 오해받고 있었다.

손을 씻고 와서 쇼파에 앉아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수연이가 싸웠던 친구가 학교에서 자주 말썽을 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은 혜진이었고 경찰서에는 몇 번 애들과 싸워서 온적이 있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금품갈취, 성폭력 가해자로도 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거 일진이에요 엄마. 수연이가 잘못 건드렸네.'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호되게 혼날 것 같아서 참았다.

하지만 엄마가 하려던 얘기는 따로 있었다.

 

"아빠가 당분간.. 다쳐서 못 나오시잖아? 그런데 우리는 돈이 필요하구."

 

아버지는 철골 샤시를 하셨다. 그래서 자주 지방에 내려가셨다. 몇일 전, 아버지는 부천의 어느 이마트 건물 지상 철골을 세우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셨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다리뼈는 양쪽 모두 골절되었고 골반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대퇴골도 부러져서 수술을 받을 때 철심을 8개나 박았다고 했다. 재활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걷는 것은 힘들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는 실직자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슬펐다. 사채까지 끌어쓰며 무리하게 만들었던 샤시 사업부터가 슬펐다. 물론 잘 안됐으니까 슬픈 것이다. 그 후로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슬펐다. 그건 그냥 그러러니했다. 아빠와 엄마가 힘을 합쳐서 꾸준히 돈을 모으면 어떻게던 빚이 갚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슬펐다. 아버지가 장애인이 됐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실직했다는 것은 두 번째 이유였다. 가장 마지막은 내가 직접 이 집안의 생계를 끌어안아야 하는게 세번 째 이유였다. 그래서 난 '레리티'라는 포니를 봤을 때 무척 신이 났다. 우리집의 암울한 상황을 이 녀석이 호전시켜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근심어린 어머니 표정을 보니, 아까 주워온 포니에 대해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엄청 신기한 걸 주워왔어요! 이걸 팔면 떼돈을 벌 수 있을거에요!'

 

머리 속에 이런 말이 맴돌았지만 그것이 돌고 있는 중심축에는 그 녀석이 있었다.

 

'핑키 프로미스야'

 

이렇게 쓴 걸 보여준뒤 녀석이 앞발로 자기 눈을 치고서 쑥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 일 알아보려고 했어요."

 

"미안하다.. 엄마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엄마를 내가 끌어안자, 엄마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울어서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나까지 울면 엄마에게 눈물 닦을 휴지를 갖다줄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방에 들어오자 녀석은 바로 나에게 종이를 날렸다.

 

'핑키 프로미스?'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래, 지켰어. 핑키 프로미스."

 

그러자 녀석은 어린애처럼 환하게 미소지으며 후후. 웃었다. 어지간히도 좋은 모양이었다.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얼른 자자."

 

'그래. 실례지만, 이 연습장이랑 볼펜 계속 빌릴 수 있을까?'

 

참 빨리도 물어보는구나.

 

"이미 빌리고 있잖아.."

 

녀석은 내 말을 들은척도 안하고 침대에 올라갔다. 그리고 마법으로 이불을 반듯하게 정리했다. 무슨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나올 것처럼 신기한 장면이었는데 더 신기한 것은 이 다음이었다. 녀석은 이불끝자리부터 스르륵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말이다.

 

"그것도 마법이냐?"

 

녀석은 종이에 딱 한마디 썼다.

 

'괜찮다면 불 좀 꺼줄래?.

 

아니, 그것보다..

 

"그거 내 침대인데."

 

녀석은 인상을 찡그렸다. 수연이와 싸운 일진도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숙녀를 바닥에서 자게 할 생각이야?'

 

남의 집에서 참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했다.

 

"대체 누가 숙녀야.. 이 쪼만한 게 보자보자하니까! 워워.. 진정해;"

 

컴퓨터가 둥둥 떠다니는 걸 보고 '녀석은 참 얌전한 숙녀구나'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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