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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 2
게시물ID : lovestory_418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두루
추천 : 3
조회수 : 82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4/06 01:23:15
서울로 돌아온 나는 늘 그렇듯이 이런저런 핑계가 생기는 탓에 제비꽃을 보러갈 시간도, 따라서 할머니를 보러 갈 시간도 없었다. 제비꽃은 벌써 피어서, 얼마간은 처마 밑에서 지내다가 바람으로 지고 말았겠지.

할머니는 오후에는 언제나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조금씩 옅어지고, 조금씩 짙어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계셨으리라. 나는 항상 두어시간이면 닿는 거리에 있었고, 가까워지려면 큰 결심이 필요한 것처럼 머물러있었다. 바보같이.

 

 

 

계절을 몇번 삼키고, 다시 할머니를 만난 곳은 꽃밭이었다.

노랗고, 붉고, 하-얗고, 짙고, 가볍고, 창백한 꽃들이 온 사방에 피어있다. 햇볕도, 바람도 잘 없는데 들숨에 섞이는 향내가 가슴에 켜켜이 쌓일만큼 진하다. 할머니, 어디있어? 이곳에는 흙내나는 꽃이 없고, 풀내나는 꽃이 없다.

 

-할머니는 무슨 화분이 제일 좋아?

-꽃은 다 좋지.

-더 좋은 꽃이 있잖아. 뭐야?

-난 국화가 좋더라.

 

난 화분을 하나 들고있다. 할머니가 좋아할까? 할머니한테 꽃을 안긴적이 없어, 화분에 앉은 국화를 받아들고, 할머니가 어떤 표정일지 가늠할 수 없다. 두리번 거리는데, 들고있는 화분의 국화는 꽃밭과 어울리지 않는다. 진한 향내가 이루는 아수라장 속에서 흙내는, 풀내는 빠르게 마른다. 그리고 난 할머니 앞에 섰다.

 

할머니는 꽃과 같이 도자기 화분속에 있다. 여기선 하늘이 보이지 않을텐데. 할머니 시계가, 할머니 안경이, 할머니 묵주가 곁에 있다. 몇송이인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꽃들 사이에서 할머니도 꽃처럼 있네. 난 바닥에 화분을 내려놓았다.

 

-할머니, 제비꽃이 필 때가 됐지?

-...

-제비꽃이 피었다 지고, 국화철까지 다 보고 갔으면 좋은데. 그치?

-...

-그러다 조금만 더 지나면 다시 제비꽃이 피고. 또 금방 국화꽃이 다시 피고. 그렇게.

-...

-안추워? 여기 좀 으슬하네.

 

 

 

가끔씩 하는 할머니와의 통화에도 제비꽃 얘기는 없었다.

그저 문득, 이맘때면 꽃이 피었겠다. 이쯤이면 꽃이 지겠구나 싶었지. 그러다 그 꽃을 보고있을 할머니 생각도 하고 그랬다. 이제야 보러오다니.

아주 작은 일들 때문에 먹먹하다. 할머니 무릎 베고 누울수가 없고, 할머니 젖가슴을 만질수도 없다. 고향과 같은 위로가 이제는 없다.

 

할머니는 세상 모든 꽃이 시들었다 다시 피는 곳으로 갔다.

난 가끔씩 꽃밭에서, 편지 읽듯 혼잣말이나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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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편 합쳐서 아주 짧은 단편소설 비슷하게 됐네요.
산문시 같기도 하고. 너무 성의없이 쓴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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