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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 할아버지가 친일파라길래 누구길래 그렇게 난리인가
게시물ID : humorbest_4194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owKoy
추천 : 72
조회수 : 12355회
댓글수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12/21 17:13:59
원본글 작성시간 : 2011/12/21 16:04:10
싶어서 찾아봤더니 헉, 김순흥이였군요 ㅡ.ㅡ
아니 이지아는 이씨아닌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예명, 
본명찾아보니 김상은,김지아로 개명, 딱걸렸네 
뭐. 이지아가 친일파후손이라고 해서 이지아도 친일파다! 이런 욕할맘도없지만
역시나 친일파 후손들이 잘먹고 잘사는걸 보니 씁쓸하네요. 
그리고 사촌이라는놈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실드치다 자폭하고있고 
밑은 이지아의 조부 김순흥의 친일행각입니다.

1933년 8월 조선나예방협회 기금으로 1000원을 냈다.
1934년 6월 29일 조선중앙일보사 감사역을 맡았다. (사장 여운형)
1936년 2월부터 합자회사 구정상회 사장으로 있었다. 이때 교하간역교(校河簡易校)를 지을 땅을 
1,500평을 기부하였다.
1936년 7월부터 금융신탁회사인 우익상사 취체역으로 있었다.
1937년 7월 22일 국방헌금 1만원을 종로경찰서에 헌납했다. 그는 "나라에 대한 봉사의 뜻을 표하고자 적은 돈이나마 바치오니 받아주십시오"하고 돌아갔다. (내자정 162-2 김순흥, 내자정은 이후 내자동)
1937년 조선군사후원연맹 사업비로 2500원을 냈으며, 같은해 9월 5일 결성된 '경기도내 군기헌납기성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비행기 대금 500원을 냈다.(당시 군용기 1대 75,000원)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일선융화'를 내걸고 결성된 동민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가 전시체제 강화와 유도황민화를 위해 전 조선 유림을 동원하여 조직한 조선유도연합회에서 참사를 맡았다.
1939년 9월 주식회사 쇼와직물을 설립하여 사장을 역임.
1940년 9월 중앙연료주식회사 취체역을 맡았다.
1943년 8월 징병제 실시에 감격하여 국방헌금 3000원을 헌납했다.
1944년 4월 일본 정부가 주는 감수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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